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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브엄마 Sep 11. 2024

너의 이름은 팡풍이

"엄마 엄마 학교 끝나고 오는데 팡풍이랑 닮은 애가 죽어서 있었어"

"그래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사슴벌레들이 많이 죽는데..."

8살 아이가 자기 방에서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멈추어 서서 무슨 생각을 하며 서있다


"팡풍이가 어제 자꾸 뒤집어지면서 못 일어났어"

"어... 팡풍이는 괜찮을까?"

난 아이가 팡풍이에게 가보기를 바라며 다시 말을 건넸다


"응 어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며 다녀서 괜찮았어"

"그래도 좀 봐바 팡풍이가 괜찮나 너무 더워서 혹시 모르잖아"

나에 말에 이끌려 빨리 팡풍이의 안부를 봐주기를 바라며 다시 건넨말이다


"그럴까 물 좀 뿌려줘 볼까?

냉큼 본인의 아지트에 커튼을 들추며 들어가 본다

난 다시 한 번 더 

"어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말이야"..

말하는 중에 아이가 아무 말이 없다

"엄마 물 안 줘도 되게ㅆㅇ....."

말끝이 흐려진다

사실 난 팡풍이가 이미 죽은 걸 알고 있었다

팡풍이는 몇 주 전에 아는 지인이 선물로 준 사슴벌레의 이름이다

아들이 한참 전부터 사슴벌레를 키우고 싶다 하였는데

우리는 아이들 3명도 돌보기 힘들어 

계속 미루고 핑계를 대고 하던 참이었다

아들은 팡풍이를 기쁘게 받아서 이름을 지어주고

아침저녁으로 인사하며 놀이도 하고 잘 지냈다


사슴벌레의 먹이인 젤리가 떨어져 못 사주고

바나나와 사과등으로 먹이를 주고

인간이 먹는 젤리도 놔주었다


그렇게 지내며 엊그제 5일간의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난 며칠뒤에  팡풍이는 기운도 없고

픽픽 쓰러지며 아이가 학교 갔을 때

내가 꿀물을 주려할 때 몸이 움츠려 들어 죽어 있었다


곤충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나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떨려서 

사람이 죽은 것만큼은 아니지만

슬픔이 몰아쳤는데

8살 아이가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싶어서

차마 말을 못 하고 모른 체 했던 거였다


이미 엊저녁에 팡풍이가 이상하단걸 알아차린 아이는

팡풍이에게 인공호흡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하교 후 팡풍이에게 시원을 물을 뿌려 주겠다던 아이는

아지트의 커튼 아래에서 팡풍이와 같은 자세로 움츠려 울고 있었다


내 아이가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모습은 어느 엄마가 보아도

정말 슬프고 또 슬프고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소리 없이 움츠려서 흐느끼는 아이는 울음을 참으며

우리가 약속이 있어 볼일이 있다 하니 얼른 가보라며 얼굴을 피했다


아들을 불러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한 후

"울어도 돼 슬퍼해도 돼 너에겐 슬픈 일이니 표현해도 돼"

2년 전 친오빠가 죽은 후 내 조카 중 막내아들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올케 언니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어도 돼 울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아이는 아빠가 죽었다는 슬픔이 정도인지 감히 감당하기 힘든 그 어떤 것인지

몰라서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거 같다


길가에 오며 가며 죽어있는 수많은 곤충 사체들을 보며

징그럽고 혐오스럽기까지 하고 기겁을 했건만

그중 어느 하나가 우리와 인연이 되었고

이름을 지어 주었고 

우리가 사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사이가 되어서 더욱 슬프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너무 많은 생각이 났다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똑같이 아이에게 행했다


아이에게 사실을 알리고  충분히 슬퍼하게 하고 

장례까지 치러주라고


외출한 사이 큰아이에게 아들이 어떤지 상태를 물었다

더위에 죽었다는 걸 알고 팡풍이에게 선풍기 바람을 쒜어주며 

혹시 모를 다시 살아날 기대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외출 후 다시 맞이한 아들은 티브이를 보고는 있지만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애써 웃음도 지었다


팡풍이를 어디에 묻어둘지 얘기한 후

함께 바람이 잘 드는 아파트 단지 1층으로 향했다


일회용 스푼으로 땅을 파고 

내가 일회용 플라스틱 스푼으로 떠서 묻으라고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자기와 함께  체온과 감정이 오갔던 손으로 살포시

집어서 그 구덩이에 넣어주었다

그리곤 십자가를 꽂아준 후 

마지막으로 팡풍이게게 써온 마지막 편지를 읽어 주었다

그렇게 눈물을 쏙 뺀 후

함께 있었던 톳밥까지 다 뿌려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등교 준비를 하고

뛰어 나가는 아이


"엄마 나 1층으로 들렸다 갈게"

아이 얼굴은 한층 밝아보였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모두 다 내 것이 아니고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나에게 온 후에는 비로소 특별한 가치를 갖게 된다

내가 선택한 남편과

내가 낳은 아이들

나를 낳아준 부모님

내 책상

내 핸드폰

내 시계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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