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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07. 2024

 나도 샀는데...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2

몇 달 전, 내년이면 여든이신 시어머니는 머리가 자꾸 빠진다고 우울해하셨다. 두 손 놓고 우수수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느니 뭐라도 해야지 그냥은 살 수 없다고 하셨다. 비오틴 영양제를 챙겨드시고 맥주효모로 만든 샴푸를 쓰시면서 내게도 권하셨다.


"큰 효과가 있겠어요? 전 나중에 할게요."

웃으면서 그냥 지나갔다.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있으면 탈모로 속앓이 하는 사람이 다 사라졌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고맙게도 남편은 정 안되면 모발이식을 하면 된다고 했다. 같이 튀르키예에 가자고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항암치료를 했다 해도 5년이 지났는데 정수리 머리카락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얼마나 독하면 모낭세포의 씨도 말려버렸나 보다. 항호르몬제 복용이 끝나면 탈모치료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피부과 전문의의 말을 따라 가만히 앉아 이냥저냥 시간흘러갔다. 갑자기 거울을 보다 시어머니의 샴푸가 생각나서 시누이에게 물어봤다. 남들도 쓰는데, 기대 말고 헛일 삼아 써보자고 구매 클릭 버튼을 눌렀다.


퇴근길에 남편이 문 앞에 있던 택배를 들고 왔다.

"이게 뭐지?"

"탈모샴푸 샀어. 어머니가 쓰시는 건데 나도 한번 써보려고."

"나도 샀는데."

"그래?"

"내가 산 거에는 맥주효모에 마이크로바이옴이 들어간 거래.

"더 좋은 건가? 말이나 하고 살걸. 둘 다 같은 날 탈모샴푸를 주문했네! 텔레파시인가? 비밀작전인가?

 어떤 게 더 효과적일까?!"


각자 주문한 탈모샴푸




원래도 우리 부부는 샴푸를 따로 쓴다. 지성두피인 남편의 샴푸와 건성두피인 내 샴푸는 결혼 첫날부터 쭉 달랐다. 다른 건 몰라도 본인의 샴푸는 스스로 인터넷 검색을 거친 후 사는 사람이다. 한동안 신경을 안 쓰는가 싶었는데, 엊그제 남편이 앉은 의자 뒤에 서서 모니터를 같이 쳐다보다 남편의 정수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을 찍어 보여줬던 게 자극이 됐나 보다.


"정수리가 휑해졌어! 나보다는 낫지만 어떻게! 곧 나랑 비슷해지겠어!"

"사진 좀 찍어봐. 음... 언제 이렇게 많이 빠졌지???."


우린 그렇게 탈모샴푸를 쓰는 탈모부부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닮아간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닮아가는 건 쫌... 피할 수 없는 노화현상이기에 이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나, 마음으로는 참, 슬프다.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늦게 낳은 죄로 미안하기까지 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둘 중 아무 샴푸나 효과가 1이라도 있기를 바라며 훈훈하게 샴푸이야기를 끝냈다. 검색하면 수십 가지 나오는 탈모샴푸 중 어느 하나라도 효과가 진짜 있을까? 어쩌면 이제 시작이다. 한동안 계속 탈모샴푸를 탐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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