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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14. 2024

나에게 잘해주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5

수십 수백 가지 생각과 감정이 섞여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고작 한 사람 때문에 한 사람 덕분에 그리고 나 때문에 나 덕분에... 잠시 그 진동에 흔들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는 미약한 존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가지 생각에 끝없이 빠져들지는 않는다.


장장 6개월간의 성형외과 진료가 끝났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아물었으니 이제 안 와도 됩니다. 물 닿아도 되고요."


그렇게 기다리던 말을 들었음에도 쾌제를 부르지 못했다.

날지 못하는 새? 가 된 느낌이랄까.

날아가라고 새장을 열어줬는데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으면 좋으련만, 내 머리와 입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눈앞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오랜 아픔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없애고 싶은 헛된 욕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돌아올 답은 이미 예상했으면서도. 항상 그렇듯, 차분한 성격의 담당의의 설명에 다시 한번 현실을 직시했다.


"아... 그렇군요. 그러네요."


를 연발하며 허탈한 헛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끝이지만, 끝이라기엔 부족하다고 느꼈다. 의사가 말하는 끝과 내가 예상한 끝지점은 달랐다. 살면서 만족스러운 끝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아쉬운 때가 실제로는 더 많았다. 내가 죽을힘을 다하지 못해서, 내가 운이 없어서, 내 기준과 상대방의 기준이 달라서 등등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은 흔적이라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하게, 멋있게 끝나는 완성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데 혼자만의 욕심이었다. 암의 흔적이 남긴 채워질 수 없는 빈 공간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매일 눈으로 볼 것이다. 아팠던 시간을 되돌려본다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아프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도, 기록적인 폭염으로 더운 여름, 흐르고 끈적이는 땀을 시원하게 씻어낼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감격할 만한데 그게 생각만큼 그 자리에서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병원문밖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마을버스 창으로 작열하는 태양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나를 다독였다. 럭키비키까지는 도달할 수 없지만 메멘토 모리몸에 새긴 것이라고. 채워지지 않는 공간은 내 힘으로 내적인 풍성함으로 채워보자고 다짐했다.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답고 당당한 사람으로 살면 된다고 다독거리며 힘을 불어넣어 줬다. 


마침 관심 있던 책을 선물로 받았다. 필사책이었다. 스스로 좋아하는 문장을 골라 적어 왔는데 이번엔 작가가 세심하게 골라놓은 문장을 천천히 따라 쓰며 생각의 확장을 경험해 볼 좋은 기회가 생겼다. 어휘력 향상에 일조하고 싶다는 남편의 관심에 금세 어정쩡하게 밝아지고 있던 마음이 순간 쨍쨍해졌다.


나를 괴롭히는 건 결국 나다. 

아픔도 슬픔도 오래 지속되지 않고 계속 잊히는 덕분에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상처와 아픔이 살아갈 힘이 될 수 있게 나에게 잘해주기로 했다. 내 기분을 좌우하는 최종 결정자는 나임을 잊지 않기로. 살다 보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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