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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힘이랄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4

by 태화강고래

2학기 개강을 했다. 사이버대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학기를 시작했다. 두려움반 설렘반으로 어떻게 하다 보니 중년의 공부치고는 할 만했다. 7과목 A+를 받으며 장학금 수혜의 장밋빛 미래를 품기까지 했다. 장학금을 받아 외벌이 남편의 짐과 내 마음의 짐을 동시에 덜고 싶었다. 어찌나 크게 부풀었던지, 터질 때의 실망감은 몇 배로 컸다. 20대에 이 정도였으면 과 톱을 놓치지 않았을 것 같아 새삼 웃기면서도 슬펐다.


온라인 수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바쁜 현대인들에게 학업을 통한 성장의 기회를 준다. 녹화된 강의를 듣고, 정해진 때에 온라인 동시 시험을 보거나 리포트를 제출하면 된다. 언제든지 이메일과 게시판이라는 통로를 통해 교수진과 학생회와 소통할 수 있다.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개설되어 있다. 화상회의에서 특강을 열고, 종강 모임도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에는 앙금처럼 아쉬움이 있었다.


한 과목에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250여 명이 수강을 하지만 시쳇말로 전우애를 느끼고 나눌 사람이 없다. 온라인상에서 나서서 말을 걸진 못했다. 그냥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공부만 해서 자격증 따는 게 목표 아니냐고 하겠지만 난 아날로그적 인간이다. 마음을 주고받으며 상처도 같이 주고받느라 피하고 싶을 법도 한데 사람냄새를 좋아한다. MBTI의 I 형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 없이 살기가 어렵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함께 걷는 사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학기때 개강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2학기에는 참석하겠다고 몇 주전부터 결심을 했고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비가 오락가락한 토요일 오전, 20대 대학생으로 회귀한 듯 사이버대 캠퍼스를 걸어 개강모임에 참석했다. 낯선 오프라인 모임이라 긴장되었지만 어느새 사뭇 달라진 내가 느껴졌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온라인 강의에서 본 교수님들은 연예인 같은 거리감과 신비감이 느껴지면서도 반가웠다. 옆자리에 앉은 학우에게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모임을 마치고 식사시간에도 열심히 듣고 말도 했다. 자기소개를 하는 어색한 순간은 피할 수 없었지만 처음 보는 동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었다. 나처럼 처음 참석한 학생이라고 밝힌 분도 사회적 경험과 나이는 나보다 많았어도 새로운 공부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은 같았다. 졸업을 앞둔 선배들은 수강했던 과목들, 성적이야기 등을 하며 현실적인 조언까지도 던져 주었다. 그래, 이거였다. 공부는 각자하고 개인의 현실과 목표는 상이하나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갈 때 오래 멀리 간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들과의 인연이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날수도 있다. 2025년 9월의 어느 날, 2시간가량 같은 공간에 머문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될지라도 괜찮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같은 주제로 흥분했다가 차분해지고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개론 위주의 첫 학기보다 이번 학기는 수업의 난이도가 살짝 올라간 듯하다. 잠깐이었지만 학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참 좋다. 노트북 화면 속 열강하시는 교수님의 강의를 혼자 들을지라도 어딘가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있을 그들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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