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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다가온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9

by 태화강고래

부쩍 서늘해진 바람과 길바닥에 밟히는 낙엽이 분명하게 알려준다. 결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가을하면 추석, 풍성한 한가위라는 그날이 며칠 안 남았다. 공휴일과 대체 휴일까지 붙여 최장 열흘의 휴가를 쓸 수 있는 황금연휴를 앞두고, 솔직히 즐겁고 설레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다. 꿈꾸던 해외여행을 떠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저 주말 같은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 같아 미리부터 살짝 답답해진다.


병원침대에 누워계시던 엄마의 상태가 호전되어 추석 외박이 가능해졌다. 그늘졌던 얼굴은 다시 화색이 돌았다. 혹시 외박이 불가하면 어쩌나 가슴 졸이던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그 말은 이번에도 보란 듯이 맞았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의사만 바라보며 두 손 놓고 고통스러웠을 엄마는 4주라는 시간을 견디고 다시 휠체어에 앉으셨다. 올 추석에도 우리 삼 남매는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빠를 위한 차례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회복된 엄마를 보며 올해도 별 탈 없이 함께 할 수 있어 감사 또 감사했다. 동시에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함께 하지 못했던 추석이 떠올랐다. 결혼 후 지금껏 딱 세 번 있었다. 추석 전날 제왕절개로 딸아이를 출산하느라 병원에서 지냈다. 어린 아들과 남편이 매일 찾아오고 추석 당일에 남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왔었다. 아파서 추석인지 아닌지 별생각 없이 보냈다.


두 번째는 울산에 살며 항암치료가 막 끝났을 즈음 추석이었다. 집에서 쉬라고 특별히 배려해 주신 시부모님 덕분에 처음으로 우리 식구끼리 추석을 보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과감하게 1박 2일 거제도 여행을 하며 명절 여행을 처음으로 해봤다. 명절에 여행이라니, 티브이에서나 봤던 그 행위를 나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실실 웃음도 나고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자식으로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집밥만 먹다 처음으로 외식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은, 추석직전 성형외과에서 유방 보형물 수술을 하고 혼자 병원에 있던 때였다. 심각한 질병 수술이 아닌 터라 며칠간 지속되던 통증이 사라지고 나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호텔방 대신 5인 병실의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삼시세끼 갖다 주는 병원밥을 먹으며 책장을 넘기고 미드를 보았다. 불편한 듯 편했다.


요새 지쳐서 잠시 이런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묵묵히 자식과 부모로서 할 일을 하는 게 힘에 부친 데다 가을까지 타는 것 같다. 1년에 한 번뿐인 추석인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잡아본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엄마를 잠시라도 흐뭇하게 해 드리는 일에 항상 그렇듯 마음을 다할 것이다. 연휴 동안 먹을 식료품을 쇼핑하고 돌밥이 될 식단을 계획해 본다. 긴 연휴를 앞두고 살짝 들뜬 남편, 아이들과 따로 또 같이 편안하게 보내도록 할 것이다. 결론은, 연휴가 끝나는 날 저녁 "우리 모두 잘 쉬었다!"라는 말을 내가 먼저 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챙기는 일에 소홀히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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