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단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두 자릿수 나이가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 세 가지를 고르라면,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글 쓰기라고 당당히 말한다. (물론 이 세 가지의 '하기'보다 '보기'가 요즘은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기억나지 않던 그 나이 때부터 뭔가를 그리고 만들며 놀았다. 조금 더 확장해 보자면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대단한 즐거움과 애착을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셈이다. 그림 그리는 엄마의 아이답게 집에는 온갖 그림 그리기 재료와 도구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했다. 그리하여 미술학원을 굳이 다니지 않아도 나는 매일매일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 시절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그랬듯, 나도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손에 억지로 피아노 학원에 끌려와, 어두컴컴한 피아노 학원의 연습실에서 벌을 서는 심정으로 연습하던 시절이었다. 적극적으로 부모님께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고, 가르쳐 달라고 당당히 요구한 나는 업라이트 피아노와 피아노 학원 등록을 쟁취하였는데, 이 부분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시작이었다.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들은 나를 참 예뻐했다. 한번 연주에 한 칸씩 지워야 하는 동그라미 다섯 개를 내주면, 나는 그 개수에 곱하기 세 번, 네 번씩 연습을 하며 아예 악보를 외워 버렸다. 컴컴한 형광등 아래 조그만 피아노 연습실에는 바흐부터 쇼팽, 리스트 같은 작곡가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나는 매일매일 언젠가 쇼팽과 리스트의 곡들을 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기쁘게 연습을 했다. 그리고 참 이상한 것이 그렇게 지루하다는 하농과 체르니, 바흐 인벤션이 나는 너무 좋았다.
지금은 더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무렵에도 이미 선행학습의 바람은 불고 있었다. 나중에 엄마의 고백에 의하면,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 중에 우리 반에 한글을 배우지 않고 입학한 아이는 나를 포함하여 겨우 세명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학급당 학생수가 육십 명이 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나는 한글을 모르는 5프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직도 첫째 주 받아쓰기 날들이 생각난다. 유치원 하원 후에 그네를 타거나, 집에서 그림 그리기나 하고 동화책 전집의 테이프만 줄곧 들으며 놀았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내가 받아쓰기를 했으니, 내 받아쓰기표는 비가 죽죽 내렸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짝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아이들이 100점이나 90점을 받았는데, 나는 50점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도 별로 상처도 받지 않고, 부끄러워 하지 않아 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놀랍다. 오히려 그때는 그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글을 배우지 않았으니 그림일기 속 글자들은 저마다가 전위적인 춤을 두고 있었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의 단정하고 가지런한 글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연필을 바로 쥐고, 글씨를 더 또박또박 쓴다면, 아주 훌륭한 일기가 되겠어요." 매우 순응적인 아이였던 나는, 바로 글씨를 또박또박 쓰면서, 그야말로 한글이 일취월장으로 늘어 여름 방학을 맞이하기 이전에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아이가 아니라, 매우 준수하고 우수한 모범생으로 담임 선생님의 칭찬과 예쁨을 한 몸에 받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특히 나의 그림일기를 선생님은 아주 좋아하셨다. 이따금 나의 그림일기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시며,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또박또박 잘 썼는데, 내용도 지어내지 않고 솔직하게 잘 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림이야 내가 말도 못 하던 시절부터 칭찬받던 영역이었지만, 글 쓰기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1학년이었던 내'가 한글도 모르고 입학한 '당시의 나'를 매우 기특하게 여기며 인생 첫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별것도 아닌 이 경험은, 그 이후로 내가 남들보다 뭔가가 뒤처진다거나 늦었다고 느낄 때마다 소환되어 나의 자존감을 지켜 주었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사실 써봐야 얼마나 잘 썼겠나? 지금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ㄱ도 몰랐던 꼬맹이가 글이라고 써 왔으니 선생님은 그 성실함과 발전을 보고 격려해 주신 것일 테니까...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뇌를 한번 거쳐 손을 통해 하는 것들이다. 생각해 보니, 베이킹, 스크랩북킹, 뜨개질, 도자공예 등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 한 번씩은 빠져들어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었다. 그래도 가장 오랜 시간 내 곁에 남은 것은 결국 또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글 쓰기인 셈이다. 베이킹이란 취미는 빵과 쿠키가 늘 똑같이 일정 수준으로 만들어지면서부터, 흥미를 잃었다. 1년 전 단팥빵이나 오늘의 단팥빵이 다를 이유가 없으니... 그나마 각종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나의 흥미를 꽤 오래 붙들어 두었는데, 그 이유는 기본 형태의 케이크만 만들 줄 알면, 그 외의 온갖 데코레이션과 재료의 배합은 비교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같은 결과물을 일정 수준으로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에서는 비교적 마음이 금방 식어 버리는 지구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림은 아무리 똑같이 그리고 싶어도 다시 그리면 달라진다. 피아노로 같은 곡을 쳐보면, 5분 전에 친 것과 지금 방금 친 것은 다르다. 레퍼토리가 너무 방대해 내 수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곡만 추려도 죽을 때까지 다 치지 못할 정도다. 글쓰기는 어떤가? 지난번 내가 쓴 글과 비슷한 느낌으로 쓰고 싶어, 죽도록 노력해도 되지 않는 참으로 신기한 녀석이다. 이렇게 반복 재생할 수 없는 이 특징 때문에 이 세 가지는 참 어렵지만 끊을 수 없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친해졌다 싶으면 멀어져 있는, 쉽지 않은 시크한 친구들이다.
나는 그림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내 인생의 절반 정도는 이 그림 그리기 영역에서는 늘 칭찬과 인정을 받아 왔던 것 같다. 피아노는 인정받을 순 없었다. 그래도 '그림 그리는 아이가, 미술을 전공한 학생이, 피아노도 좋아하고 칠 줄 안다니' 정도의 반응은 내게는 큰 인정이었다. 나 스스로도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그림일기를 졸업하고 나서는, 학교 대표로 글쓰기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 경험은 중학교 때까지 지속되었고, 당시 학교 교지 편집부 국어 선생님의 예쁨을 받던 터라 낙하산으로 편집부에 들어가는 특권을 얻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에게 '글쓰기' 영역으로 인정받았다고 느끼면서 크게 만족하는 정도였다. 내가 특별한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세계 고전 문학 전집과 윤대녕, 김민숙, 은희경, 신경숙 같은 당시 뜨고 있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에 잠시 빠졌던 것이 백일장 입상의 연료였던 것 같다. 이후에는 미국 로맨스 소설에 급격하게 빠져 정상적인 문학은 읽지도 않았던, 흔하고 흔한 사춘기 소녀였다. 스스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에, 누가 글을 쓰라 하면 줄줄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던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미술학도'이지 '국문학도'가 아니고, 내가 글을 못 쓴들 그것이 욕먹을만한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이 없었기에,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면 거절하지 않고 쓰곤 했다.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정리되지 않은 표현과 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내 글의 특징이 되었다. 작법을 모르기에, 말하듯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tv예능에서 배우 류승수가 한 이 말은, 나를 퍽 공감시켰다. 성공하고 싶지만,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을 대변한달까? 이 말을 조금 변형하여 내게 적용한다면,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나를 표현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요."라는 문장이 될 것이다.
최근에 미술관 도슨트 활동을 몇 년 만에 다시 재개하면서,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필요를 느꼈다. 거기에 공적인 도슨트 해설 시간에서는 충분히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사적 공간에서 풀어내고 싶다는 욕구도 함께...
그런 이유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피드에 사진, 릴스와 함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로 미술 전시장에 다녀온 후기와 미술관 도슨트 활동을 위주로 포스팅을 하고 있는데, 각각의 소회와 소감을 쓰다 보니 글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스타그램 글쓰기에 글자수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남들처럼 비싼 카메라를 들고 초고화질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요, 릴스를 기가 막히게 감각적으로 뽑아내는 것도 아니요, 인플루언서라 남들 가지 못하는 프리뷰 전시나 VIP 행사를 가서 발 빠른 후기를 올리는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계정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진과 릴스에 나의 소감과 소회까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전시를 통해 소환된 경험과 기억에 나의 느낀 점까지 나열하다 보니, 글이 계속 길어지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팔로워가 본다는 생각에, 의식의 흐름대로만 적을 수는 없으니, 나름 기승전결을 생각해서 글을 쓰다 보면, 금방 글자수 제한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나는 아직 해시태그도 달지 못했단 말이야!
이런 나의 행태를 관찰하던, 내게 늘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날개 달린 천사 지인들은 "인스타의 글을 좀 줄이고, 브런치나 블로그를 하는 건 어때?"라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브런치의 작가로서 글도 제법 많이 발행한 그야말로 '작가'들이자, 영문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글쟁이'들이다.
처음에는, "나는 쓸게 없어, 내가 쓰는 건 그냥 일기에 가까운걸?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 그 글을 쓴 사람이 너무 드러나잖아. 난 그게 너무 무서워."라며 손사래를 쳤다. 남들보다 특별한 지식, 신선한 시선, 비범한 경험, 깊이 있는 사고도 혜안도 없는 내가 무슨 '일기'도 아니고, 남들 보라고 만든 플랫폼에 글을 쓴담... '작가'라는 단어의 무게가 내게는 남들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라는 단어의 동의어는 '생각의 깊이'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노출되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글을 쓰면 분명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내 지인들도 읽을 것이며, 그럼 내 밑천이 금방 드러날 텐데,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갈걸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것이 제일 무섭다. 인정은 받고 싶지만,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내 바닥이 어디인지를...
인스타의 글은 더 길어졌다. 어떤 날은 쓰려고 했던 본론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해시태그를 달고 끝내 버린다. 역시 나는 서론과 설명이 너무 장황한 사람이라며 자책하면서, 내가 쓴 게시글을 다시 쭉 읽어본다. 누가 읽을까 싶은 긴 글임에도 가끔씩 댓글이 달리는데, 그 댓글들이 참 사람 마음을 간지럽힌다. 세상에는 날개 달린 천사들이 몇 명 더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인정받으면 마음이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진다.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잠 좀 자려다 유튜브 세상으로 넘어왔더니, 일급 도청장치를 달고 있는 아이폰이 새 알고리즘을 가동해, 글쓰기에 관한 동영상 좌판을 내 앞에 쫙 깔아 놓는다. 골라, 골라 소리에 한 개, 두 개, 몇 개 보다 보니 얼마나 열심히 모객활동들을 하는 유튜브 상인들이 있는지 모른다. 다들 글을 써야 한다면서, 그리고 그 글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보여 주어야 함을 설파하고 있다. 누가 내 글을 본다고 이렇게 자꾸 보여주래 하며, 다음 거 다음 거 살 마음도 없으면서 좌판 위를 뒤적거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등장하신당. 두둥.
여러분 그동안 독서나 영화 감상 같은 것들 하며, 자기 계발하셨나요?
자기 계발의 완성은 내가 읽은 것, 본 것, 느낀 것을
다시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보지 말고, 남들이 읽을 수 있도록 보여 주어야 해요.
그래야 생각과 정보, 느낌을 체계화해서 정리할 수 있어요.
이것만이 결국 여러분의 가슴속 깊은 곳에 느낌과 감정을 각인하고,
여러분의 머릿속 해마 안에 정보와 지식을 저장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글쓰기야 말로 자기 계발의 완성입니다.
(이 유튜버가 정확하게 이런 워딩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대충 내게 전달된 내용은 이런 언어인 것으로...)
브런치로 구독자를 늘리고, 연재를 하고, 다음 포탈에 노출되고, 책을 출판하고...
앞서 좌판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움직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자기 계발의 완성'이라는 표현은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불안증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을 유혹하기에는 이보다 더 달콤한 말이 없다.
'그래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야, 나를 발전시키기 위함이야! 그러니 좀 못 쓰면 어때!'
이렇게 보니, '작가'의 무게가 짊어질 만한 좀 가벼운 것이 되었다. 이 정도 무게면 짊어지고 세계 여행은 못 해도, 집 앞 산책 정도는 하지 않겠어? 처음부터 뛰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처음엔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부터 시작한다.
나의 '글 쓰기 산책', 오늘부터 시작이다.
비루한 글 쓰기 실력으로 미술과 사진, 음악과 그 사이의 사람의 마음에 대해 기록하려고 합니다. 미술 비평가나 평론가도 아니고, 사진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삶의 경험 속에서 녹여내는 글을 쓰려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끼고 떠올릴 법한 이야기들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