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은 살아 숨 쉬듯 웅웅거렸다. 산 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바위를 때릴 때마다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귓전을 두드렸다. 8월의 눈부신 햇살을 받은 물줄기는 수정처럼 반짝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사이로 물안개가 흩날렸다. 아버지는 큼지막한 바위 위에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발에 닿자, 그 한기에 움찔했다. 이내 아버지는 두 손으로 물을 얼굴에 힘껏 끼얹었다. 물방울은 이마에서부터 뺨을 타고 흘러내려며 떨어졌다.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나는 바다로 떠나는 여행을 꿈꿨다. 철없는 나는 바다를 가자고 며칠이고 졸라댔다. 되풀이되는 떼에 결국 지친 아버지는 "그래, 우리도 가보자." 그렇게 4남매를 이끌고 무더운 햇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을 걸어간 곳은 남한산성 계곡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탁 트인 바다도, 소금기 머금은 바람도 아니었다. 실망한 나는 세상의 모든 억울함을 짊어진 꼬맹이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발끝으로 돌멩이를 차며 마지못해 따라갔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계곡물속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살이 발끝을 간지럽히고,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둘째를 안아 올렸고, 아이의 작은 발이 물에 닿자 "아으!"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는 겁이 난 듯 아버지 품에 안겨, 고개만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돌을 뒤적이며 가재를 찾겠다고 계곡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손이 닿기도 전에 잽싸게 달아나는 작은 물고기들, 다리 사이를 스치는 물살, 축축하게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는 그 감촉, 몇 시간을 물속에서 뛰놀다가 나눠 먹던 서울우유 한 팩과 보름달 빵, 지금도 어제처럼 선명한 여름방학에 대한 기억이다.
2년 전, 직장생활을 정리하며 부모님께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땐 그저 낯선 곳이 불편해서 그러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관절염으로 걷는 것이 힘든 상태였다. 우리가 염려할까 봐 괜찮은 척했기에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다는 것을 그때까지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아버지는 우리의 거목 같은 존재였으니까. 시간을 핑계 삼아 ‘언젠가’로 미뤄온 약속들, 막상 시간이 나서 돌아보니, 그 ‘언젠가’는 이미 지나가 있었다.
병원에서 무릎에 물을 빼내고 염증 주사를 맞으면 일시적으로는 나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들을 통증으로 힘겹게 보내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드물게 컨디션이 괜찮았던 지난달, 우리는 모처럼 광교마루길로 향했다.
초여름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졌고, 길가엔 키 큰 풀이 허리춤까지 자라 바람이 불 때마다 들썩였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잘 걸었다. 힘이 들면 걸음을 멈추고 호수를 바라보곤 했다.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버지의 점퍼를 펄럭이게 했다. 그 아래 드러난 아버지의 등은 예전의 단단하고 넓던 모습 대신, 살이 빠져 윤곽이 드러난 뼈마디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내 아버지의 등을 처음으로 봤다. 기억 속 늘 크고 단단했던 어깨. 하지만 내 눈앞의 아버지는 백발에 구부정하고, 앙상한 노인의 모습이다. 그 낯선 뒷모습이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눈시울이 젖었다.
한참을 걷고 내려와 보리밥집에 들렀다. 보리밥 위로 따뜻한 김이 올랐고, 노릇하게 부쳐낸 해물파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 허기진 속을 자극했다. 평소 입이 짧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날은 잘 드셨다, 어머니가 막걸리를 권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토록 즐기던 술을 거부하다니 이 또한 내 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낯설다.
식사 후 들른 작은 카페. 유리창 너머로 우리가 함께 걸었던 마루길이 보였다. 아버지는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힘줄만 남아 울퉁불퉁해진 아버지의 손등도 나를 슬프게 했다. 한쪽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엄마, 아빠, 그리고 나와 동생,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평범한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카페에 앉아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나를 기다렸지만 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두 분의 세월이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 옛날 가난한 아버지는 가진 게 없어 바다 대신 뒷산 계곡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고, 나는 시간이 없어서 두 분과 함께 보내지 못했다. 삶은 언제나 무언가를 선택하고,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게 만든다.
함께 걷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이 평범한 하루가 우리에게 또 얼마나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