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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ry김 Jan 20. 2022

고전으로 음미하는 기업 목표의 쓴맛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통해 바라본 요즘 시대의 기업 경영목표

캉디드 혹의 낙관주의 표지 (볼테르 / 1759년판 표지)

 볼테르의 장편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주인공 캉디드는 마르틴이라는 학자와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줄곧 논쟁을 벌인다. 캉디드는 독일의 유력한 남작의 성에서 태어나 팡글로스라는 철학자의 영향으로 '세계는 선한 목적을 위해 설계되고 그에 합당하게 움직인다'는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식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믿음으로 다져 나가게 된다. 다만 그는 고아라는 신분으로 남작의 딸을 사랑한 대가로 성에서 내쫓겨 거친 삶을 마주하게 되고, 줄곧 이어지는 여러 가지 불행과 난관을 겪으며 결국 팡글로스의 가르침은 캉디드의 마음속에서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지만, 여행 중에 그가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서 고용한 늙은 학자인 마르틴의 ‘세상을 움직이는 선한 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현실적인 투쟁과 고통만이 가득하다’는 극단적인 논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다시금 팡글로스의 낙관주의적 예정 조화설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마르틴의 현실적이고 한편 염세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실속 있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캉디드가 추구하는 자연적으로 모든 세상은 최선의 상태로 귀결된다는 식의 피상적 믿음은 (일부 구성원들의 “불행”의 대가가 내재된 상태임을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지하면서도) 실제로 그 인과관계의 연속선 상에 본인의 행복(다시 퀴네공드양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연결될 수 있다는 묘한 믿음과 결부되어 오히려 더 강한 신념으로 힘을 얻게 된다. 소설 안에서 무수히 표현되는 캉디드 자신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처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행한 것 들은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설계된 세상의 일부라는 믿음으로 상황들을 이해하고 헤쳐 나가며, 마르틴과의 만남 이전이긴 하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불행”의 인과관계에 의해서 “행복”에 근접하는 경험(엘도라도에 우연히 도착하여 막대한 보물을 가지고 나온 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 후반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스승인 팡글로스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조우하게 된 후 예전과 변한 것이 없는 팡글로스의 사상을 마주하며 자신의 생각을 다시금 강화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18세기 캉디드와 그의 삶을 300년 후인 21세기의 기업과 기업경영으로, 그의 행복을 지금의 금전적 이윤이나 보상으로 치환해 놓고 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기업들이 추구하는 경영목표의 배경이 캉디드적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게 되는 것은 우연일까?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캉디드는 세상은 항상 최선의 방향으로 설계되어 진화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최선의 방향이라는 것이 구성원 행복 총량의 증가이던 어떤 것이든 간에 이는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발전적인 장밋빛 미래에 가까운 낙관주의인 반면 마르틴의 경우는 염세주의적 퇴보를 그의 언어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이를 그림으로 도식화해 보면 아래와 같다


          캉디드의 세상                              마르틴의 세상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캉디드의 세상도 결코 녹록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종교재판 회부, 좌초된 배에서의 탈출, 리스본에서 겪은 지진 등등 수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반면에 야코프의 도움, 엘도라도의 발견 등 여러 가지 희망적인 사건(+)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퀴네공드의 품으로 돌아갈 이상적인 상태를 상상한다. 따라서 일시적인 퇴보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은 우상향 형태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마니교도를 자처하는 마르틴의 경우는 “사실 이 지구 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면 하느님이 사악한 존재에게 지구를 내맡겨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각종 인간사의 병폐와 고통을 근거로 우하향적인 관점으로 묘사한다.


 필연적으로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이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분배를 원활하게 한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 목표는 굉장히 선명하고 뚜렷하다. 그리고 그 목표에 조금 더 첨언을 하자면 그것은 “지속적인” 이윤추구다. 물론 각 기업에서 이러한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여 회사 경영목표 또는 Vision으로 선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영철학과 목표는 다음과 같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것,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1]”. 스타벅스는 vision statement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To establish Starbucks as the premier purveyor of the finest coffee in the world while maintaining our uncompromising principles while we grow. [2]” 이 두 가지의 예를 보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린 가정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달리 얘기하자면 지속적인 수요가 창출되며 끊임없이 소비가 지속되는 세계를 기본 배경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 인류사회에 공헌을 하는 그 목표에 다다르지 않았고, 이는 캉디드가 묘사하는 세상 그래프의 우측 상단 끝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 목표는 궁극적이기에 소비의 형태는 “지속적” 이어야 한다. 스타벅스의 경우는 “grow”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읽힌다. 이윤추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캉디드적 세계관의 인식 여부와는 관계없이 거의 지구 상의 모든 기업 목표에서 이런 부분을 캐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면, 이 부분은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논의할 가치도 없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인류는 300만 년 전 인류의 시조가 탄생한 이래로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한치의 쉼도 없이 거듭해 왔고 이는 모든 생물이 동일하게 가진 특징이다. 다만, 일반적인 동물은 자연선택이라는 법칙에 의해 수백만 년간 세대를 거듭하며 “무작위적인” 확률로 아주 서서히 환경에 느리게 적응해 나간다. 반면 인간은 고도로 발달한 이성적 사고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손을 통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인간 개체의 변화 대신 둘러싼 환경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며 적응해 나갔다. 고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 즈음부터 중상주의 정책과 더불어 초기 단계의 자본주의가 형성된 이래로, 단순히 인간은 가까운 주변 환경과 개인적 삶을 바꾸는 것 이상의 생산적 활동에 매진해 왔고, 이는 산업혁명 이후 경영학이라는 학문과도 맞물려 지속적으로 최적화되고 고도화됐으며 대량화됐다. 이런 배경에서 모든 생산적 활동의 주체인 기업이 이런 인간 역사의 경험적 측면을 도외시하고 다른 방식의 조건을 대입하여 기업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 또한 잘 상상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세계가 인간의 생산적 활동을 거의 무한대의 시간으로 확장하더라도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지 않고 서는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 글을 통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인 지구는 현재의 인간 활동을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자원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우리는 어쩌면 마르틴의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다양한 경로로 현재 공론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고, 인류사적 측면에서도 철학적 시선으로 한 발짝 물러서 신성시된 캉디드적 세계관에 대한 비평과 동시에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해법 마련을 위해 잠시 멈춰 서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캉디드와 팡글로스의 재회 이후 결국 그토록 사랑했던 퀴네공드를 다시 만나게 된다. 불행하게도 퀴네공드는 상인들과 재력가들의 몸종으로 이곳저곳 팔려 다니며 고생을 한 탓에 그 아름다웠던 모습을 다 잃어버리고 추하게 되어 버린 모습으로 캉디드를 마주하게 된다. 어쨌건 그녀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못하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 캉디드는 조그만 농가를 구입하고 그곳에서 퀴네공드, 옛 스승인 팡글로스, 마르틴, 여행 중에 도움을 받았던 노파 그리고 몸종이었던 카캄보와 함께 그가 그리던 행복한 결말을 꿈꾸지만 이내 여러 번 사기를 당하여 남은 돈을 다 잃게 되고 추한 것도 모자라 성질만 괴팍하게 나빠진 아내와 저마다 각자의 불만을 소리 없이 저주하며 원망하는 그 무리 속에서 계속 패배감에 빠져든다. 운명적 세상, 원인과 결과, 최선의 세상 등 현실감 없는 논쟁을 쭉 이어감으로써 소일거리를 하던 그들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까지 봤던 어떤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이는 한 농부를 만나게 되고 그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자신의 밭을 일구는 일이란 것을 깨달은 후, 낙관적 혹은 염세적 세상을 논쟁하는 대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캉디드의 말을 끝으로 소설은 마무리를 짓는다.


   캉디드는 마지막 순간에 이상주의적 믿음에서 한발 물러나 멈춰 섰고 이내 현실로 돌아와 그의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사고와 행동의 전환을 이끌어 낸다. 이는 결국 캉디드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최선을 위한 세계를 향해 나가는 진정한 그리고 가장 확실한 한걸음으로 이해가 된다. 앞서 제시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발전시켜온 고도의 생산활동의 근거가 되는 캉디드적 세계관을 다시 바라보고 현실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기준으로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각성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고민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미 2006년도에 3명의 일반적인 회사원과 사업가에 의해 “B corporation movement”라는 것이 시작된다. 그 핵심은 전통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이미지를 새로운 형태로 재정의 하는 데 있다. “Certified B Corporations are businesses that meet the highest standards of verified social and environmental performance, public transparency, and legal accountability to balance profit and purpose. B Corps are accelerating a global culture shift to redefine success in business and build a more inclusive and sustainable economy. [3]”



여기서 그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B certified 기업의 경우 단순히 환경적 영향을 평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요구사항 등도 포함하여 궁극적으로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형태의 경제구조 설립에 일조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격 부여를 받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나 해당 인증이 오히려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들까지도 문제 삼아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이 재정립한 성공한 기업의 이미지에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회적 운동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행복한 농부”의 모습이 되어 각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기업의 목표나 비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낱 미사여구의 향연으로만 보일 수 있겠지만, 그 구성원에게는 바이블과 같이 여겨지고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 기업의 실제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러한 기업 비전의 총합은 궁극적으로는 향후 우리 자손 세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추론된다. 이를 근거로 각각 기업의 목표 설정 또는 비전 설정의 책임은 실로 크다 말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잘 만들어진 기업 비전으로 알려진 것은 존슨앤존슨의 “Our Credo[4]” 지만 이 글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밭을 어떻게 잘 갈고 보전하여 먼 후손에게 어떤 세대의 인류로 기억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1] Samsung.com > 회사소개 > 비전

[2] https://mission-statement.com/starbucks/

[3] https://bcorporation.net/about-b-corps

[4] https://www.jnj.com/cr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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