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학대 아동으로 산다는 것

젊은 학대아동의 슬픔 (2/3)

by 하늘

전편에서 학대아동으로 살아남는 것을 나는 ‘이민자’의 마음으로 산다고 불렀다.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고, 나의 본모습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런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피해자들을 찾아 나서고자 하면 할 수 있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면 아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가족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고통받기를 자처하는가?


첫째는, 나 스스로의 의심이 컸기 때문이다.

경찰이 타의로 여러 번 출동하고, 칼부림이 여러 번 났더라면 자기 스스로 판단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엄마가 만취한 후 주기적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엄마가 본인의 말마따나 ‘작두’를 타는-집안을 부수고 4-5시간 동안 고성방가하는 것-사이클에 적응해 버렸다. 살려달라고 아빠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았기에, 포기한 것도 있다.

그리고 나는 어렸을 적부터 집에 들어가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차라리 10시까지 학원 뺑뺑이를 도는 걸 좋아했지만 내가 사랑받는 줄로 알고 자랐다. 엄마가 말하는 ‘이상하고, 까다롭고, 냉정하며, 수악한 년’이 나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살았다. 나 정도의 가정을 학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를 가정폭력 상담소에 찾아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아니, 사실은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초본열람 금지 신청을 할 때까지도. 내가 별나서, 별 것도 아닌 일에 유별을 떤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둘째로는, 내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성이 조금 떨어졌을지언정, 친구가 많았다. 어디서든 적응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활발했다. 분명 내가 적응을 잘했던 것은, 집 이상으로 내게 냉정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예의 바른 나를 선생님들은 좋아했고, 사회성이 떨어져 나를 싫어하는 친구들도 날 건들지는 못했다.

그렇게 내가 또래 집단 안에서 마음적인 문제를 겪었던 것은 뒤로하더라도, 내가 뭔가 ‘문제’를 가졌다고 생각한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어디서나 엄마는 어딜 가든 딸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키우냐는 말을 들었고, 내가 아들의 엄마들이 탐내는 며느리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서울대를 나온 교회의 선생에게 시집을 보내고 싶다며 잘해보라는 이야기를 고등학교 2학년에게 하곤 했으니까.

유일하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를 물어봐준 사람은 중학교 때의 선생님 딱 한 분이었다. 엄마가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었던 머리를 주방가위로 온통 잘라두었던 날. 도저히 수습이 안되어 아침에 엄마가 이리저리 실핀을 꽂아주기는 했지만, 모두가 내 머리를 경악하며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의 얼굴도, 성함도 기억나지 않지만 교무실에 앉아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을 듣고 없다고 대답하던 그 당시의 장면만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이후로 나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게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회색지대의 어딘가에 끼어 있었다. 쉼터로 가출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 납치나, 어딘가에 어린아이들을 팔아넘기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함부로 밖을 나가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고, 나갔다가 잡혀 들어왔다가는 더 큰일을 겪을 것이란 두려움도 한몫을 했겠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 대학교를 지나 대학원. 단 한 번의 휴학도, 쉬는 일도 없이 바로 졸업, 바로 입학, 바로 취업을 했다. 그리고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내 사정을 주변에 밝힐 생각을 했다.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내가 주변인들 중 가장 처음으로 결혼을 결심해, 친구들이 많이 놀랐으니까.


나는 내 주변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내 사정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집안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말라던 엄마와 아빠의 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을까? 내 집안 사정을 아는 것은 일찌감치 나의 이상을 눈치챘던 친구 한 명, 그리고 엄마에게 직접 전화를 받았던 나의 중학교 시절 친구-머리를 잘릴 때도 이 친구를 엄마가 싫어했기 때문에 잘렸다-빼고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에게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난... 내가 끊임없이 학대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 질려버렸다. 오히려 어렸을 때의 우울하고 괴로운 모습을 많이 본 친구들은 빠르게 납득했지만,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가졌을 때의 날 보았던 친구들은 계속해서 내게 고민해 보라는 말을 했다.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남기며.


물론 그들을 이해한다. 난 내 주변인들 중 학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대단히 기쁘고, 또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유별나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학대임을 단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고르고, 이야기하는 모든 과정들이 대단히 지난하고 괴로웠다. 이미 내 안의 무언가가 박살 난 상태에서, 내가 당한 일들 중 어떤 것들이 일반인들이 가장 경악할 일인지도 판단이 불가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내 이상을 눈치챈 친구가 함께 골라줬다)


그 이야기들을 엮으며 생각했던 것들을 다음 편에 적어보고자 한다. 부디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