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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타니 비긴스

나에겐 야구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by 설작가

나는 설타니다.

메이저리그에 오타니가 있다면

사회인 야구엔 설타니가 있다.


대부분의 영웅들과는 달리

난 알이 아닌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영웅의 기질만은 타고났던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와 천재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난 그걸 알아도 너무 늦게 알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사회인 야구에 입문했으니...)


유년시절부터 내겐 야구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걸 알리는 증거들은 불시에 튀어나왔지만

그때 난 알아채지 못했다.

진작에 알아채고 외쳤어야 했는데...


내가 야구왕이 될 상인가!



다섯 살 때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

다섯 살 아이가 움츠려 들기 충분한 환경이었지만

그때 난 지금과는 달리(?) 똘끼 충만한 아이였다.


이사 온 첫날부터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온 나는

현관에서 내 키만 한 야구배트를 집어 들었다.

(당시 집에는 아버지의 야구 장비가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아들을 본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히잖아요!"


여기서 '남자애들'이란

나보다 훨씬 큰 형들을 포함한 단어였다.

물론 '여자애들' 역시 누나들을 포함한 단어였다.

객기인지 똘끼인지 아무튼 그때 난 정의감 넘치는,

에네르기파를 터트리기 직전의 손오공이었다.

엄마가 말릴 틈도 없이 나는 밖으로 튀어나갔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며 외쳤다.


여자애들 괴롭히면 내 손에 다 죽어!!!


범 무서운지 모르는, 겁 없는 하룻강아지였다.

동네 애들이 쫄아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당연히 후자일 확률이 높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상황은 종료됐다.

역시 싸움은 기세다.

그날 난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똘아이 하나가 이사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왜 하필 야구 빠따였을까?

이건 일종의 돌잔치 돌잡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설타니의 시작은 그때부터였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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