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부조리 위에 서 있다
너는 나의 슬픔을 돕고 싶은 게 아니다.
연약한 이를 돕는 모습 속에서, 자기애를 본 것이다.
너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 ‘너’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너는 내가 외로워 보인다고 하며 다가왔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와
그럴듯한 명목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너는 나의 성실함을 동경하는 게 아니다.
너는 나의 성실함을 통해 성장할 ‘너’를 갈망한다.
내가 불안할 때 네가 불안해지는 이유도,
나의 안정감으로 가려져 있던
네 시선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은 네 감정이 되어 언어로 발화되고,
나는 너에게서 나를 보고, 너는 나에게서 나를 본다.
너는 대상을 보는 게 아니라,
대상의 그림자로부터 욕망을 쫓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너에게서 그림자를 본다.
빛에 가려진 너의 실체가 아닌,
나의 시선이 만든 형상을 애써 외면한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욕망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욕망의 유혹마저 내쫓으며,
이유도 모른 채 책임지게 만드는 기적.
부조리를 인정하는 순간,
욕망은 그 무게를 끌어안으며 사랑이 된다.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알 수 없지만,
그 알 수 없음 속에서 서로를 붙든다.
붙들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
어느새 나를 붙드는 불안이 되고,
믿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
언제부턴가 무력하게 의지하는 믿음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무게 아래서
느리게 숨을 고른다.
그 무게를 받아들이는 순간,
욕망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사랑은 부조리 속에서 제 모습을 갖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조리마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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