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딱따구리를 만나다.
2024년 3월의 기록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몇 번씩 다시 읽어 본다. 읽다 보면 틀린 글자, 의심이 가는 띄어쓰기, 빠진 글자가 보인다. 나를 위해서 고친다. 몇 번을 확인한다. 맞춤법 도구까지 있는데 틀리는 게 꼭 있다.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 글을 확인하고 싶어 블로그 앱을 열었다. 글쓰기 버튼이 바뀌었다는 메시지가 뜬다.
또 새로운 게 생겼다. 아니면 원래 있었던가? 모르는 것투성이다. 적응했다 싶으면 또 새로운 뭔가가 생긴다. 어릴 때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관심 가면 푹 빠져보고, 관심 없으면 그냥 무시했다. 근데 나이 들어선 쿨하게 패스가 잘 안 된다. '또 한 박자 늦어지는구나!' 한숨 한 번은 꼭 쉬게 된다.
클립 버튼을 눌러봤다.
휴대전화의 동영상 앨범을 열었다. 내가 없고, 그 누구도 없고, 아주 지극히 평범한 영상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찾다가 일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2023년의 봄, 당근을 먹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휴직 중이었습니다) 평일 오전 산책, 평일 오전 도서관 나들이, 평일 오전 엄마와의 데이트!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의무감으로 보낸 시간이라 생각했었다. 돌아보니 꿈에서 날아다니던 시간이었다. 수시로 변해 버리는 마음은 참 간사하다.
3월 초순쯤이었다. 휴직 후 맘 편히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집에 있기가 두렵고 답답했다. 도서관이 떠올랐다. 그리고 평일 오전, 매일 그곳으로 향했다.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지만 마음을 달래고 싶어 돌아 돌아 50분 거리로 걷기도 했다. 강아지와 산책하시던 어르신이 말을 건네주셔서 멈춰 선 적도 있었고, 봄꽃을 담기 위해 한참 동안 한눈을 팔기도 했었다. 그리고 의외의 장소에서 오색딱따구리와의 만남도 있었다.
인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인도에 가까운 2차선 차도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낙엽이 뒹구나 했다. 그런데 색깔이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새였다... 오색딱따구리!
보금자리 뒤에는 동산 하나가 있었다. 아마 그곳에서 길을 잃고 내려온 아이임이 분명했다. 아파트 사잇길 도로였고, 출근 시간이 제법 지난 터라 차 통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커다란 도로 청소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필이면 딱따구리가 있는 차선으로!
일단 차선으로 내려갔다. 그날따라 장갑도 없었고, 필수품 머플러도 없었다. 딱따구리를 잡아서 옮겨 주고 싶었는데 자꾸 푸드덕대며 도망갔다. 사실 많이 두려웠다. 그 사이 도로 청소차는 점점 다가왔다. 나는 일단 운전자 분께 두 팔로 크게 X자 표시를 했다. 다행히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려 주셨다. 그 아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아이는 온 힘을 다해서 멀어질 뿐이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시던 운전자 분께 나는 이 아이를 못 잡겠으니 그냥 지나가시라고 손짓을 했다. 그 아이가 가만히만 있어 준다면 차가 지나가도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 각도였다.
그 순간 운전자 분께서 차에서 내려오셨다. 익숙한 듯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셨다. 딱따구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운전자 분께선 딱따구리 뒤쪽으로 가만가만 다가오셨다. 딱따구리도, 나도, 운전자 분도 초긴장 상태! 딱따구리는 순식간에 운전자 분 손에 안착했다. 그리고 인도 안쪽 나무 아래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운전자 분께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딱따구리를 자세히 보니 엉덩이 쪽이 빨갰다. 이미 다친 것 같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딱따구리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어서 더 다가가지도 못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차도 위에서 떨고 있었을까? 그 아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보였다. 나는 체념했고 서서히 그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어르신 두 분이 걷고 계셨는데 저 멀리서부터 이 광경을 보신 건지 딱따구리를 한참 동안 살펴보셨다.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며칠 뒤 도서관 근처 산책길에서 만난 아이!
이 아이는 건강해 보였다. 영상을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나무를 쪼아댔다. 덕분에 한참을 볼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원래 엉덩이가 빨갰던 거다! 그렇다면 며칠 전 그 아이는! 다친 게 아니라 그냥 지쳐 있었던 게 아닐까?
가방 속에는 텀블러가 있었고, 그 속엔 물이 들어 있었다. 만약 그 물을 조금이라도 나눠줬다면 그 아이는 금방 기운을 차리지 않았을까? 유튜버 새 덕후가 지친 철새들에게 물을 주는 영상을 봐 왔다. 새들은 몇 방울의 물로 금세 기운을 차렸고 힘차게 날았었다.
산책하시던 두 어르신이 그 아이를 높은 곳에 옮겨 주셨기를! 길냥이들이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빨간 엉덩이가 이미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 무지개다리를 잘 건너기를 빌며 그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나의 무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의 새 사랑은 어린 시절, 아주 좁은 뒷마당에서부터 시작됐다. 담 넘어 큰 느티나무에서 지저귀던 새들은 나의 친구였다. 청아한 노랫소리로 귀를 호강하게 해 주는,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눈웃음 짓게 하는, 선물을 한가득 주고 날아가는 벗이었다.
지금도 유심히 새를 관찰하고 새소리를 녹음한다. 한동안은 새 덕후 채널에 영상이 올라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나름 새에 대해선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당당하게 했었다. 그런 나였는데, 오색딱따구리가 왜 오색딱따구리인지는 몰랐던 거다.
© lukebrugger, 출처 Unsplash
하필 네이버 클립 어쩌고 메시지를 보는 바람에 일 년 전 죄책감을 다시 느끼고 있다. 그날 만났던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씩씩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P.S.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오색딱따구리는 멸종 위기 등급 관심 대상이다.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면서 제출했던 글입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요. 조금 수정하여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1화로 연재합니다. 저에겐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