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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향기 Sep 05. 2024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정신 언제 차릴래?


 2024년 4월의 기록



 금요일 저녁, 여유로웠다. 저녁 식사를 만족스럽게 했고 친구와 톡으로 한참 동안 수다도 떨었다. 마음만은 날아갈 듯한 이 시간!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컴컴한 밤이 되어 버렸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 순찰도 꼼꼼히 마쳤다. 집안일을 대강 마무리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한 가지 일만 남기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기록하기"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그런데 기록장이 없다?'

 가방에도, 책상 위에도, 서랍에도, 다 찾아봐도 없다.


 '엥? 또 두고 왔다고???'

© niuhang, 출처 Unsplash


 지난주에도 감동을 느끼며 읽고 있었던 책을 일터에 두고 왔었다. 한동안 독서에 집중을 할 수 없어서 우울했었다. 독해력에 난독증까지 의심하고 있는 찰나, 오래간만에 흠뻑 빠져 있었던 책이었는데! 그 책을 놓고 오다니. 그것도 금요일에!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긴장을 붙들어 메고 있었다. 여기저기 흘리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면서 말이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찾고 또 찾았다. 책 사이에 숨어 있지 않을까? 책꽂이에 있나?  그 어디에도 없다. 금, 토, 일 무려 3일 동안 기록장 없이 지내야 한다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급한 대로 포스트잇부터 꺼냈다. 무겁고 찜찜한 마음으로 기록을 시작했다. 줄도 없는, 종이 감촉도 없는 포스트잇 위에서는 도통 글맛이 안 났다. 그냥저냥 하루의 일과만 적었다.


 허무함, 허탈감, 슬픔,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일터의 곳곳을 살폈다. 사실 기록장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창피한 이야기가 많아서 (오해는 마세요. 예를 들면 '파이팅!' '괜찮아!' 뭐 그런 내용이요.) 절대 절대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었다. 혹시라도 여유가 생겨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챙기지만 단 한 번도 꺼낸 적은 없었는데!


 '엥? 여기에도 없네!!'

 책꽂이에도 책상 서랍에도 바닥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내가 이 아이를 어디다 흘렸나??'

 이거 누군가가 보고 키득키득 웃는 거 아니야? 막 사진 찍히는 거 아니야? 불안한 기운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날 용서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 저녁, 집에 와서 또 여기저기 찾아봤다. 역시나 없다.


 사실 매일매일 기록장을 이용한 건 아니었다. 때로는 한글 문서에 때로는 블로그에,  그날 글감과 기분 상태에 따라 기록하는 곳도 달리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장은 나에게 꽤 애틋한 존재였다. 나름 연필로 끄적이면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도 보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가득했기 때문이다.




 


 화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가방을 챙겼다. 기록장을 찾는다는 건 거의 포기 상태였다. 힘없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가방 안에 살포시 놓여 있는 A4 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밑바닥을 완벽하게 덮고 있었다.    


 '이 아이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더라?'

 "에이, 설마!"

  A4 지를 들춰보는 순간, 아! 나흘 내내 애타게 찾던 분홍색 기록장이 그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A4 지, 요 녀석! 나를 이렇게 놀리다니!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기록장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일단 살려 두기로 했다.





 세상에! 가방을 그렇게 살폈으면서 바닥에 깔려 있는 A4 지를 들춰 볼 생각을 하지 않다니!

 

 사실 그 A4 지는 최근 상담 비슷하게 오고 간 메일 중 하나를 출력해 놓은 것이었다. 주말 내내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퇴근을 하며 가방에 대충 넣어 두었었는데, 다른 물건과는 달리 가방 밖으로 탈출하지 못했던 게 불만이었나 보다. 그 자리에 그대로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내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물건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거나, 제자리에 두지 않거나,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아서 놓치는 일도 허다하다. 맨날 뭐가 잘못되면  '도깨비, 장난치나?' 허공에 외칠 뿐이었다. 정작 행동은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휴우,  언제쯤 나아지려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답답해!


 그래도 지난주보단 나아졌네.  최소한 일터에 두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


 “다음주는 더 나아지겠지?”



 기대를 갖고 오늘의 기록은 더 꼼꼼히 해 보련다!



"들향아, 정신 차리자!"








4월 중순 즈음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내용을 다듬어서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2화로 연재합니다.


 이 글 속에는 작가님 두 분이 숨어 계십니다. 한 분은 저에게 글길을 열어주신 분이고,  다른 한 분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분입니다. 두 분 모두 제가 존경하고, 또 닮아가고 싶은 분입니다.







 기록장을 숨기고 있었던 A4 지는 한 작가님과 글쓰기에 대해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출력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촘촘한 내용을 보내 주셔서 읽고 또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말 내내 메일 읽기는 뒷전이었었네요. 기록장도 나흘 동안이나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했었고요.



 저의 질문에 친절하고 꼼꼼하게 답해 주신 작가님 덕분에 이 글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린 다음 날,  다른 한 분의 작가님이 저를 '블로그 이웃 추가'해 주셨습니다.



 작년 12월쯤이었을까요?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저는 글길 방황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를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을 잡아 줄 뭔가가 필요했어요. 저는 작가님들의 블로그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한 분의 작가님을 이웃 추가했고, 그분의 블로그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가끔은 "공감"버튼도 눌렀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작가님께서 저의 블로그에 오셔서 제 글에 "공감" 버튼을 눌러 주셨어요. 저의 모든 글에요.  참 이상했지요. 분명 '나를 이웃 추가한 사람'에 그 작가님은 없었거든요. 어떻게 매번 오시는 걸까? 궁금했지만  블로그 초보였던 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 내가 블로그를 잘 몰라서, 아마도 이웃을 비공개로 해 두면 나 조차도 나를 이웃 추가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내가 작가님을 이웃 추가해서, 작가님도 나를 이웃 추가해 주셨나 보다 하면서요.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바로 이 글을 올린 다음 날! 작가님께서 저를 이웃 추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도대체 어떻게???



 우연이었겠지요! 나중에 작가님과 가까워진다 하더라도 여쭈어 볼 수는 없겠지요. 그냥 저의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맘껏 행복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역시 두 작가님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서 좋은 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이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 2화로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나요?



 저에겐 "아주 특별한 이야기"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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