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선생님 / 심리학관
<아이가 울음이 잦아졌을 때>
요즘은 인터넷에 워낙 정보가 많다 보니 씩씩하게 잘 지내오던 아이가 갑자기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고 울음이 늘어나면 바로 우울증이 아닐까 의심하곤 한다. 자기 할 일을 잘 챙겨 손 갈 데가 없고 주변 사람까지 깊게 배려하던 아이가 기본적인 생활조차 구멍이 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니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소아기라고 우울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갑자기 잦은 눈물을 보인다고 우울증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감정이 크고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크고 복잡한 감정을 다룰 감정 그릇도 커져야 한다. 담을 그릇도 커져야 하지만 적절하게 배출할 수도 있어야 한다. 힘든 것도 잘 견뎌내고, 지나치게 주변을 배려하던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기 쉽다. 그저 눌러서 참고 견뎌낸다. 그렇게 버티던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감정이 커 가면 견디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둑 높이까지 찰랑찰랑 올라온 감정은 기어이 둑을 무너뜨린다. 터져 나온다. 그러면 아이는 당황한다. 내가 왜 이러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아이를 보면서 부모도 당황한다. 잘 지내던 아이가 왜 이러지? 이유가 뭘까? 그래서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아이도 이유를 모른다. 갑자기 왜 눈물이 나는지, 자신이 왜 달라졌는지 모른다. 슬플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지도 않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지 싶다. 자신이 이상해졌나 싶어 불안해진다. 불안은 아이의 감정의 둑을 더 약하게 해서 더 쉽게 울도록 만든다. 퇴행의 시간이 온다.
이유는 물어도 좋다. 하지만 아이가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더는 묻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답한 이유가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든다고 따지면 곤란하다. "그게 왜 무서운데?" "그게 왜 걱정인데?" 아이 역시 부모가 물어보니 답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답을 했을 뿐 아이도 답을 모른다.
이런 말도 좋지 않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너 이런 일에 우는 아이 아니잖아." 아이도 갑자기 변한 자신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것을 굳이 확인해 줄 필요는 없다. 아이의 두려움만 커지고, 부모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이 더해진다.
"그래.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이런 말은 어떨까? 한참을 아이 곁에 머물러주고, 아이의 감정이 충분히 흘러나오도록 기다려 준 다음에 이런 말을 했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이가 이제 막 감정을 터뜨리는데 이렇게 말하면 이제 그만하라는 메시지가 되고 만다. 네 어려움은, 네 슬픔은, 네 눈물은 결국 별 것 아니라는. 아이는 자기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부모가 아닌,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거절하는 부모를 만나게 된다.
"자. 힘내보자." "우리 딸 화이팅"
이런 말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막막한 느낌만 준다. 달리기를 할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온 몸 근육에 힘이 빠져 널부러져 있는데 어서 출발선에 서라고 채근하는 코치를 만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좋을까? 실은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감정이 더 흘러내려야 하고, 감정이 흘러내리면서 감정이 흐르는 강줄기도 만들고, 감정둑도 더 단단해지고 커진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부모의 기다림은 헛수고가 아니다.
참아내는 마음이 아이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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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선생님
소아정신과전문의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