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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

시사IN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가을이 시작될 무렵 중학생인 큰 조카를 데리고 광화문에 갔다. 아이는 여러 사정으로 학교를 잠시 쉬었다가 막 복학한 참이었다.


그 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문장이 광화문 글판에 적혀 있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 <즐거운 일기>(문학과 지성사, 1984)에 실린 시 ‘20년 후에. 지(芝)에게‘의 한 구절이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말없이 글판을 올려다봤다. 아이의 눈길도 나와 같은 곳에 머물렀다. 아이는 이내 휴대전화를 들어 글판을 찍었다.


“고모...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라

마음이 울렁거려요.“


나는 가만히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그날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자신이 찍은 글판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헤어지며 아이에게 시 전문을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다른 말은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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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만 있어도.

장일호 기자님.

시사IN

202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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