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선생님 / 심리학관
요즘 한창 발표 철이다. 꿈끼 발표회, 예전 버전으로는 장기자랑인데 실컷 준비하고도 남들 앞에서 하려면 갑자기 몸이 얼어붙고 가슴이 두근거려 못하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이 정도면 나은 축이다. 아예 시킬 생각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준비 단계부터 거부하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일단 준비를 열심히 한 친구라면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고, 남 앞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큰 것이다. 실은 그 잘하고 싶은 마음,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더 불안하고, 더 떨어 몸이 얼어붙은 것일 수 있다.
적당히 대충 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면 부담이 적은데 (뭐 장기자랑인데 대학입시도 아니고!) 제대로 해내고 멋지게 해내야만 한다는 완벽주의적 압박을 우리 불안쟁이 친구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일단 너무 떨리면 발표에 빠져도 된다고 말해주는 편이 낫다. 누구나 하듯 꼭 해야 한다고, 그것도 못하겠냐고, 정 못하면 그냥 뒤에 서 있기라도 하라고 다그치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
불안한 사람에겐 선택권을 주는 편이 좋다. 선택권이 불안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생각할 여유를 줄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욕심이 있으니 그냥 하지 말고 넘어가는 것보다 해내도록 도와주는 쪽이 좋다. 살짝 거들면 성공해내기도 하고, 한번 성공하면 그 다음엔 쉬워진다. 못한 채 넘어가면 스스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괴감에 한참을 힘들어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 극복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지금 이 순간 거들어주고 싶다면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다.
나는 흔히 이것을 '용기 Up 세 가지 루틴'이라고 한다.
첫째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나만의 동작 만들기.
감각에 집중하면 사고와 감정을 잠시 멈출 수 있다는 기전을 이용하는 것이다. 엄지와 검지를 5초간 꽉 누르거나, 버터플라이법처럼 양팔로 자기 가슴을 안은 다음 손으로 반대편 어깨를 번갈아 두드려도 되고, 3초간 ㅅ숨을 들이쉬고 5초간 내쉬는 복식호흡도 좋다.
동작에 집중하면서 불안한 생각을 잠시 멈추는 연습을 한다. 이 연습을 실전에 사용해야 하니 충분히 연습하는 것이 좋다.
둘째는 준비 멘트 만들기다.
준비 멘트는 자기에게 하는 속말이다. 예를 들어 '좀 떨리지만 해볼 수 있어. 처음 5초만 넘기면 그 다음은 잘 될 거야. 나를 언제나 응원해주는 ㅇㅇ이 얼굴만 보고 하면 괜찮아' 뭐 이런 말이다.
이 말을 만들고 속으로 여러 번 해본다.
셋째는 시작 신호 만들기다.
불안한 사람은 자신에게 상황을 조절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나마 불안이 줄어든다. 남이 모든 통제를 한다고 생각하면 더 불안하다.
그래서 발표를 시작하는 신호는 스스로가 해야 한다. '자, 지금이야.' '그래. 가자' 이런 말을 만들어 시작 신호를 스스로가 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세 가지, '나만의 안정 동작 만들기', '준비 멘트 만들기', '시작 신호 만들기'를 했다면 합쳐서 연습을 해본다. 먼저 준비 멘트를 하고 나만의 안정 동작을 해서 불안을 가라앉힌 후 시작 신호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이것을 처음엔 제일 만만한 엄마 앞에서 발표하도록 하면서 연습하고, 다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사람인 아빠나 다른 친척 앞에서 짧게 하면서 앞에 해보고, 그렇게 조금씩 범위를 넓혀 연습해 본다. 시작 루틴을 이처럼 확실히 만들어 연습하면 한결 안정감이 생긴다.
이렇게 단계별 연습을 해두면 발표 불안이 심하지 않음 친구들은 무사히 발표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비를 못 넘기고 움츠려 들 수 있다. 괜한 자책을 하고 소극적이고 회피하는 성격으로 굳어질 슈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불안한 이유는 잘 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것도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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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선생님
(소아정신과의사)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