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기억은 왜 진실을 왜곡하는가
"사람은 기억을 꾸며 살고
기억은 사람을 다시 꾸민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 표정이었고
그 말투였고
그 생각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른 사람이 말하길
그건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멈칫했다
기억이 틀렸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은
진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회화다
어떤 날은 정밀화처럼
어떤 날은 추상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방향에 따라
형체가 달라지는 그림
그래서 사랑은
헤어진 후에 더 달콤하고
갈등은
이별뒤에 더 치열해진다
그때 나도 모르게 덧칠한 색들이
원래 그런 색이었다고 믿게 되니까
우리는 어제 싸운 말을
상대방이 틀렸다고 기억해 낸다
기억력은 나쁜데
기억의 해석력은 너무 좋다
그래서 다툼은 항상
"내가 기억하기로는..."으로 시작해서
"... 그건 네 기억이고"로 끝난다
기억은 가장 잘 짜인 '자기 변호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억의 디테일을 수정한다
순서를 바꾸고
톤을 낮추고
표정을 바꾸고
마침내 내가 옳았다는 이야기로 완성한다
기억은 사건이 아니라
사유의 흔적이다
그것은 늘 주관적이며
그러므로 늘 불안정하다
하지만 우린
그 불안정한 기억 위에
정체성과 감정과 관계를 세운다
나는 이제
기억을 의심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기억하는 말과
상대가 기억하는 말 사이의 틈에서
진짜로 존재했던 마음을 찾아내려 한다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가장 성숙한 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