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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자리쯤에서

by 서원


익숙함이란 참 묘한 상태다

좋아서 닿아 있는 동안엔

안온함을 주지만

그 안온함이 오래되면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감각을

서서히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


익숙함은 결국 관성

처음엔 서로를 향해 뛰어가던 마음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하게 되는

그걸 그냥 두면 사랑은 늘어지지만

의식적으로 깨우면

오히려 더 깊어진다


익숙함이란 결국

관계가 숨을 고르는 시기

위험한 것도

반드시 깨어나야 할 위협도 아니지만

우리를 다시

바라보라고 주어지는 신호이다


익숙해지는 만큼

새로움도 다시 만들고

편안함이 쌓이는 만큼

서로에게 긴장도 세심하게 더해야 한다


무뎌진 자리쯤에서

다시 불씨를 살피면

그 사랑은 오래 살아갈 것이다


익숙함이란

사랑을 지키는 마지막 시험

그걸 의식하고 가꾸면

관계는 더욱 단단해지고

놓아두면 서서히 흐릿해지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 보여주는 건

관계의 깊이를

알고 있는 사람의 태도

그것이야 말로

사랑을 오래 지키는 쪽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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