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Juk-Do
"넌 새꺄 어복은 없어!"
명절이면 낚시를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끌고 바다에 나가신다. 낚시는 아버지에겐 종교와 같다. 바라는 것도 별로 없고 아쉬워하는 것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저 '낚시'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마치 하나님의 존재가 아리송 달송 하지만 일요일에는 교회나 성당을 가야 하는 시골 할머니들의 모습 같달까. 때 가 되면 낚시를 해야 하는 습관이 있는 그런 형태의 종교.
내 동생은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 물고기를 꽤나 많이 잡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허탕만 치고 산다. 이쪽저쪽 자리를 바꿔도 물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입술이 나온 나는 "왜 매번 저만 안 잡혀요?" 하면 아버지는 한껏 약 올리듯 "넌 새꺄 어복은 없어!"라고 하신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열받고 짜증 나면서도 참 좋다. 내 마음속에 품게 된달까. 그래 난 어복은 없는 사람이야. 다른 건 다 있겠지...
아버지의 지론에 '어복'이라는 것은 물고기를 얼마큼 잡는가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게 아니다. 낚싯줄이 자꾸 꼬이는 와중에 때를 못 맞추는 것도, 하필 낚시가 잘 되는 날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자느라 낚시 길을 따라나서지 못한 것도, 하필 내 쪽에선 파도가 자꾸 드리 쳐 옷이 젖는 것도 어복이 없는 거다. 그게 바로 나다.
나에겐 절친한 친구 부부가 있다. '빡빡이'와 '빠글이'라고 해두면 될 것 같다. 손죽도에서 4대째 나고자란 빡빡이가 빠글이와 함께 손죽도에 들어간다고 한다. (빠글이에겐 시댁이다.) 자칭 금오도의 왕자인 나와 타칭 손죽도의 왕자인 빡빡이가 '제1 회 손죽-금오 수교협정'이라는 타이틀로 여행을 가게 된다. 신의를 보이기 위해 금오도 쪽에서는 왕자인 나만 가기로 한다. 웅천 이순신 마리나에 멋들어진 모터보트가 한 척 선착해있다. 손죽도의 황제이신 빡빡이의 아버지가 소유한 배다. 이순신 마리나에 선착하기에는 왜색이 짙어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임진왜란 시절 일본 삼각 배의 현대화 버전이었달까. 어느 나라 배냐고 물으니 야마하에서 만든 일본 배라고 한다. 흠,,, 손죽도는 진취적이고 세련된 섬인가 보다.
이 날은 사실 배가 뜨지 못할 정도로 파도가 높고 바람이 강한 날이었다. 사고를 가장하여 금오도 왕자인 나를 물에 담궈 죽여버릴 심산이었는지, 수교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쓴 건지 배는 무턱대고 출발하였다. 빡빡이의 아버지가 직접 배를 운전해 주셨다. 그러니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안심하고 대국적인 여행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역시 나는 어복이 없다. 하필 내가 서 있는 자리로 파도의 강한 물살이 들어왔다.
사진에 보이는 시점까지 젖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요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잘 안 된다. "어복은 없어"가 아니라 "어복도 없어"는 아닐까 고민하는 시기이다. 나는 혹시 복이 없는 건 아닐까?.. 왜 나만 옷이 자꾸 젖지? 바다는 왜 이리 거칠지? 파도는 왜 이렇게 높지? 나는 오늘 혹시 정말 죽을 수도 있을까? 하는 와중에 눈물이 왈칵 나버렸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생각하게 되었다. 자꾸자꾸 반성을 하게 되었다. 왜력의 삼각 배를 닮은 빡빡이 일가의 배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속력을 내며 파도를 가른다. 해저 2만 리의 노틸러스 같았다. 응원을 받고 위로를 받았다. 그래 일본 배고 한국 배고 상관이 없지. 배는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존재지. 파도는 그걸 방해하는 거겠지. 파도도 갈길을 가고 있는 거겠지. 바람도 불다가 안 불면 파도는 없어지는 존재지. 나는 고상하게 한국배가 좋다고 생각했겠지. 그런 고리타분하고 고상한 척하는 자세는 좋지 않아. 이제는 정말 달라질 거야. 이 거친 세상을 항해해 보자구!!! 더 힘껏 굴러다녀 보자구!
거문도를 지나면 손죽도가 나온다. 앞에 정말 멋진 절경이 보인다. 바윗 고개가 구비구비 블럭을 쌓듯 바람과 파도를 견디고 있다. 저 멋진 섬은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소거문도라고 한다. 빡빡이의 아버지는 이 절경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거문도의 바위들을 직접 다 깎았다고 농담을 하셨다. 손죽도 앞바다를 손바닥 보듯 하는 손죽도 황제의 농담이다. 그분의 손안에 손죽도 앞바다가 있으니 파도는 움직이는 손 주름이오, 파도가 바위를 깎았다면, 어버님 께서 깎으신 게 농담은 아니었다. 아아,, 멋진 절경. 지구 상에서 시간을 가장 느리게 쓰는 존재가 있다면 바위렸다. 바위와 파도는 서로 사이가 좋지만 나쁘고 나쁘지만 좋은 부부 사이와 같구나. 시간은 길구나.
빡빡이와 빡빡이의 아버지는 너무 큰 파도가 들이치는 와중에 배를 절벽 가까이 가져다 댄다. 조금만 큰 파도가 치면 배가 바위에 부닥쳐 수교협정이 한순간 전쟁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눈을 질끔 감고 금오도의 백성들을 생각했다. '아아,,, 오해하지 않아야 할 텐데,,, 그저 낚시를 하려다 죽은 것일 텐데,,, 전쟁은 안되오.'
빡빡이와 빡빡이의 아버지는 낚싯대를 꺼내 들고 절벽과 파도 사이 흰 거품을 향해 메탈지그(루어낚시)를 던졌다. 빡빡이의 낚싯줄은 "삑! 삑!" 하고 날아갔고 빡빡이 아버지의 낚싯줄은 "휘리리리릭" 하고 유려하게 날아갔다. "응, 이번에 물겄다." 휘리리리릭 하고 낚싯줄이 채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어버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더니 정말 파박하고 뭔가가 미끼를 물었다. 아버지가 스윽 스윽 물고기와 밀당을 하시더니 엄청 큰 농어를 한 마리 턱 잡으셨다. 빡빡이도 한 마리 아버님도 한 마리 농어가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무능한 기분이 들었다. 이 거친 풍랑과 바다 위에서 남자 세명이 있는데, 두 남자는 배도 몰 줄 알고 낚시도 할 줄 아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가.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가. 내 여자 친구가 이 배에 안 타있어서 다행이다. 이 모습을 봤다면 내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저는 너무 무능합니다.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런 남자가 되려고 산건 아닌데요." 하고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빡빡이의 아버지는 물고기가 거려져 있는 아직 감지 않은 낚싯대를 나에게 넘겼다. "잘 감아서 잘 잡아봐!"
쭉쭉 끌려 나오던 물고기의 반응이 작은 물고기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내가 수면 위로 농어의 정체를 확인하자 배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마치 용왕님의 모습을 한 큰~ 농어가 나왔다. 나는 용왕님의 기세에 눌려버렸고 영상에서와 같이 다 잡은 용왕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빡빡이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씨익 웃으였는데, 살의가 담긴 모습이셨다. 아,,, 수교협정에서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는 정말 어복이란 게 없구나.
1박 2일의 여정 동안 이 에피소드는 계속해서 이야기되었다. "그거 잡았으면 우리 오늘 저녁식사가 달라졌을 텐데 쯧쯧", "그게 정말 컸는데 쟤가 놓쳐서.." 등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그 농어 잡았으면 배가 침몰하고 말았을 거예요!" 하고 항변했다.
손죽도에 들어가니 정말 작고 예쁜 마을이 나왔다. 300명이 채 안 되는 인구가 사는 손죽도.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 거주민이 생겼다고 되어있지만, 고고학자들이 마을 입구의 조개더미를 참고하여 선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손죽도. 이순신의 심복 충렬공 이대원이 전사하여 잃을 '손', 클 '대'를 써 손대도라고도 불리는 손죽도. 길굿놀이가 있는 손죽도.
마을 정 중앙에 노오란 가정집이 예쁘게 있다. 손죽도 왕가의 궁궐이다. 대왕대비께서(빡빡이 엄마)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비파, 참외, 그 귀한 뽈락 구이, 거북손 등을 안주로 주셨다... 김치는 정말 예술이었다. 너무 맛있는 김치다. 여기에 정체모를 담금주를 한 잔 주셔서 하이볼로 말아마셨는데, 풍월이 내 마음속에 있었다.
위 사진의 돌담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작은 돌로 짜갈짜갈하게 만들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리고 돌담 끄트머리에 큰 돌들로 마감된 부분이 있다. 예전에 태풍이 한 번 너무 강하게 불어 저 돌담의 끝을 부셨다고 한다. 그러고선 한국인들이 보수한 흔적이다. 성격차이가 보인다. 오래 가게 끔 만들려는 쫌생이들과 되면 되는 거지 하고 되게끔 딱 해버리는 호탕한 사람들의 성격차이가 보인다.
금오도에는 '장사공돌바위' 라는 바위가 있다. 힘이 너무 센 장사가 돌을 가지고 공기놀이를 했는데, 그중 한 알을 깜빡하고 떨구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각산에서 떨어져 생겼다기에는 바위의 결이 좀 다르고,,, 주변에 있는 돈들과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고,, 요즘 말로 참 킹 받게 생긴 돌이 덩그러니 위치한다. 장사가 힘이 얼마나 세면 저런 걸 다섯 개 들고 공기놀이를 했을까. 그럼 다른 공돌바위 들은 장사의 주머니에 있는 걸까. 하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추자도에도 하나 있다. 나머지 세 개는 아직 못 찾는 분위기다. 언젠가 이 공돌바위를 탐험하기 위해 돌아다녀 봐야 할까 보다.
다음 날 새벽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낚시를 한 번 더 했다. 내가 4마리 정도 잡았다. 이 번에는 뜰채를 잘 이용하여 빡빡이가 놓칠뻔한 생선도 낚아주고 좋은 도움이 되었다. 수교협정에 의의가 있는 행사였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어복이 없는 것이... 5마리를 놓쳐서 참 민망했다... 하,,, 난 왜 그럴까.
나는 요즘 임진왜란을 공부해 보고 있다. 선조라는 인물도 흥미롭고, 이순신이라는 인물도 어쩜 그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정세뿐 아니라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참모 사무라이들의 정치 이야기까지 한 번에 공부하다 보니 참으로 맛갈나는 경영 공부를 하는 기분이다. 그런 와중에 손죽 해전의 주인공 이대원의 묘를 방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손죽 해전의 손죽이 손죽도인지 몰랐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의 간 보기 전쟁 중 하나였는데, 간 보는 전쟁 치고는 규모가 제법 컸던 전쟁이다. 거기서 22세의 젊은 전라도 장군 이대원이 침략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전사하셨다. 그 묘가 손죽도에 있었다.
이대원 장군님의 묘가 꽤나 더러웠다. 잡초도 너무 많고,,, 스티로품 쓰레기도 하나 굴러다닌다. 씁쓸했다. 그래도 이순신의 오른팔 왼팔로 알려진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보니 조금 신경이 쓰인다. 확! 그냥 민원을 넣어버릴까 했는데,, 수교협정에 누가 될까 봐 그러질 못했다. 다음번에 방문하게 된다면 정중히 한 번 말씀드려보고 싶다. 내가 역사공부도 별로 흥미가 없고, 특히나 국사 공부도 심드렁해하는 성격인데.. 어쩌다 보니 임진왜란에 깊게 빠져있다. 나의 애정에 따라 임진왜란에 관련된 우리 영웅들의 묘가 잘 관리되고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게 민족적인 정서가 없어도. 한일전 스포츠 경기에서 만큼은 진심으로 열받는 김치의 피가 흐른다 내가!
성공적인 '제1 회 손죽-금오 수교협정' 행사였다. 많은 위로와 반성을 하게 되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두 섬의 우정과 마음을 확인하는 행사였다. 이 모든 기쁨을 가능케 해주신 손죽도 황제 부부와 왕자 부부 빡빡이와 빠글이에게 극진한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다음번에 금오도에 와주신다면 나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해야겠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