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omite
가장 낮은 패를 가지고도 돈을 딸 수 있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도박을 좋아하는 이유다. 낮은 패, 높은 패는 우리가 처한 환경일 뿐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행운과 기세를 넘어 불운을 대하는 자세에 달렸다. 가진 게 별로 없는 나의 현실에, 불운한 운명에 우리는 반항한다. 반항은 자유를 향한다. 손에 쥔 패가 어쨌든 간에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블러핑을 치고 기세로 몰아치고 결대로 보내버린다. 돈을 딴다. 그날의 운이 어떻게 따랐든 간에 돈을 잃고 따는 것은 태도의 문제다. 자유를 향한 반항의 몸짓은 부조리에 대한 긍정이자 부정이다. 태도가 명확했다면 돈을 잃고 따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반항이 불운한 운명을 이겨냈는가. 나의 태도에 의미가 있었는가. 나의 움직임이 많은 것을 바꿨는가. 나의 반항이 판세를 꺾었는가. 한마디로 재미있었는가! 득실을 떠나 자리에서 일어날 때 웃고 있었는가! 도박판에 재미를 찾는 것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다. 우리 지금 재미있는가. 자유한가!?. 설마 돈을 잃어서 재미가 없었는가. 가지고 있는 패가 구려서, 결대로 흘러 시궁창에 처박혀 천박한 인생이나 살고 있는 건 아니겠죠 우리. 재미가 없으면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으면 뭐,,, 어쩌겠어요. 그래도 다들 살아갈 텐데.
내게는 도박(텍사스홀덤) 메이트들이 몇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어떤 자유의지 표명의 이유 때문인지 다들 제법 진지해졌다. 가장 진지하게 임하는 JUNE이 있다. JUNE은 소중한 휴가기간에 친구 SANG을 데리고 마닐라에 간다고 한다. 텍사스홀덤은 스포츠로 인정받는다며 아주 진지하다. 마닐라에 무슨 홀덤 대회에 나간다고 한다. JUNE은 제법 치밀해졌다. 은근한 확률계산과 기세로 판세를 쥐고 흔들 줄 안다. JUNE에게 돈을 따는 것과 잃는 것은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돈을 따려고 치는 자세가 중요할 뿐이다. 당연하다. 스포츠는 이기려고 해야 의미와 재미가 생성되니까
Godalblue의 도박 3원칙
제1원칙- 따고 잃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다.
제2원칙- 하지만 이겨라.
제3원칙- 어지간하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라.
JUNE과 함께 마닐라에 간다는 SANG은 더욱이나 불운에 반항하는 친구다. 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경의롭다. 신이 있다면 거의 뭐 SANG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상대의 좋은 패를 도대체가 믿어주지 않는다. 블러핑을 잡아내거나 확률게임에서의 승리보다 행운이 발동될 때 더 큰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 딱 봐도 질 거 같은 패가 들어온다면 오히려 더 반항해 버린다. 띄어먹으려고 하는 행동도 아니다. 감히 속을 좀 읽어보자면 '네가 그렇게 운이 좋아? 난 더 좋아! 가보자! 하나님!!!!' 하는 거 같다.
올해 생일에 책 한 권이 선물되어 배달되었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였다. 누가 보냈는지도 쓰여있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SANG이 내게 보낸 생일선물이었다. 나는 이 책을 너무 오래전에 읽기도 했고 이해도 잘 못했었다. 이런 어렵고 난해한 책을 왜 선물했냐고 하니, 본인이 너무 감명 깊게 읽어 세 번 정도를 읽었다고 한다. SANG의 인생에 영향력이 꽤나 있어 보이던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돌로미티 가는 배낭에 넣어왔다. SANG은 그동안 내게 돈을 많이 잃어왔다. 그 정도 예의는 지켜야 할 거 같았다. 혹 SANG이 내게 이 책을 선물한 저의가 있지는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혹시 SANG에게 매번 돈이 따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현실이 된다. 요 근래 전적을 보면 그것은 사실이 되어버렸다.
인생은 도박이다. 너무 큰 도전을 하는 사람만 도박을 하는 건 아니다. 작은 도전 작디작은 한 발 한 발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또한 살아있다면 어차피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박은 후회와 증명을 넘은 선택을 뜻하는 단어다. 삶자체는 선택이다. 직장인, 공무원이 되어버린 내 친구도 인생은 도박이고, 사업에 돈을 말아먹은 나도 인생은 도박이다. 그저 테이블 위에서의 플레이가 다른 것이다. 물론! 재미가 있다면!!! 도박을 넘어선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도박을 잘하는 사람, 인생을 인생답게, 도박을 도박답게 눌러사는 사람은 나의 여자친구 JINJIN과 나의 아버지다. 나의 여자친구 JINJIN은 벳사이즈가 항상 적당하다. (적당한 벳은 언제나 무지막지하다.) 더 나아가 여자친구의 반항은 판세를 바꿨다. 한 번은 여자친구의 상사로 꽤나 골치 아픈 인간이 새로 선임되었었다. 여자친구의 직장생활은 그 상사 때문에 '재미'에서 '재미없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시지피스가 큰 바위를 산에 올리듯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여자친구 JINJIN은 끝끝내 반항을 했다. 발버둥 치고 판을 흔들었다. 벳사이즈를 키우고 꺼질 것은 꺼지라고 했다. 세상에 대고 갖고 싶은 것은 갖고 싶다고 얘기했고 증명은 결국 자신의 몫이라고 뻐댔다. JINJIN의 직장상사는 나가떨어져 잘렸다. 그 자리는 JINJIN의 왕좌가 되었고 연봉은 올랐다. 모두가 JINJIN의 자리가 자격 있다고 인정해 주었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산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렸다.
JINJIN은 나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나는 올드타운같이 문화가 섞인 곳을 좋아하고, 등산보다는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공연을 더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멋진 대자연이나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것보다 브뤼셀 보자르카페 1층에서 초코푸딩에 카푸치노를 마시며 책을 보다가 저녁에 트라피스트 람빅맥주를 마시며 그랑플라스의 가로등을 그림자의 눈물 삼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JINJIN은 역시나 나와 맞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는데, 그녀는 등산과 프리다이빙같이 대자연에서 노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자면 실로 단순한 여자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퇴근할 때 창백하게 건조해진 우울한 얼굴을 하다가 등산만 하면 화색이 돈다.
돌로미티 여행지 또한 나의 의중과 상관없이 그녀의 취향에 의해 정해진 여행지다. 내가 뭐 등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서 JINJIN이 가자고 하면 좋은 기분으로 따라가긴 한다. 평소에 나 혼자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듯한 경험이고 하니 이 기회를 삼아 따라가는 것이다. JINJIN과의 여행은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JINJIN의 직장생활과 여행의 밸런싱은 아주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하다. 보드가 까진 상황에 상대방이 너무 적당한 밸류뱃을 던지면 받는 사람은 두려움이 생긴다. JINJIN의 도박판은 고요하면서도 냉기가 도는 치밀한 배팅이 있다. 그녀는 인생을 그렇게 즐기고 있다. 멋지다. 돌로미티에 데려와줘서 너무 고맙다.
'카뮈'의 '시시프 신화'는 자살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하는 책이다. 자살은 인간이 고유하게 가진 선택이다. 더해서 자살은 자유의지를 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자살을 하는 이유는 자살한 사람밖에 모르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있다. 자살은 세상과 삶에 대한 단절을 뜻하기도 해서 자살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가 된다. 자살이라는 선택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선택임과 동시에 어떤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카뮈는 자살의 동기를 삶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카뮈가 그렇게 주창하는 '부조리'가 여기서 나온다.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마치 손에 든 패와 보드에 깔린 카드들과 같이. 부조리는 이미 존재하는 환경이다. 바꾸지 못하는 무수한 제반들이 언제나 나를 상관하지 않고 있다. 내가 죽어도 잘만 굴러가는 이 세상이란 소리다. 나의 존재가치에 비해 너무나도 차가운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인데 비해 세상은 너무도 멋대로 움직인다. 부조리의 시작이다.
장황한 대자연에 둘러싸여 먼지티끌 같은 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카뮈의 너무나도 인간주의적인 책을 읽고 있으니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경험이었다. Aldo Rossi와 스카르파의 건축물들을 탐방하다가 돌로미티 산속에 파묻히고 나니 1차 술자리 후에 4차 끝내고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대자연은 내게 허무주의적 공포를 야기하고 어쩔 땐 권태롭게까지 만든다. 대자연속에 나를 가둬두고 나면 나의 무력감은 나로부터 자유의지와 해방을 넘은 허탈감을 줄 때가 많다. JINJIN은 대자연에 있다 보면 오히려 해방감과 시원함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것들에 너무 노출되다 보면 심드렁해지는 그녀의 눈은 대자연 앞에서 그렇게 맑아질 수가 없다. 하여간 그래도 그녀도 사람이다. 며칠 내내 산속에서만 주야장천 시간을 보내다 보니 JINJIN도 조금은 심심해하더라. 훗 인간이란.
'카뮈'의 '시지프 신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을 공유하고 싶다.
다시 한번 반복하자. 이 모든 것에는 현실적 의미가 없다. 자유의 길에서 아직도 한 걸음 더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조자나 정복자에게 요구되는 최후의 노력은 자신들의 기도 그 자체로부터도 스스로를 해방할 줄 아는 일이다. 즉, 그들의 작품 자체-그것이 정복이건 사랑이건 창조이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개인의 삶 전체의 근본적인 무용함을 완성하는 것 말이다.
남은 것은 운명이다. 오직 그 출구만이 숙명적인 운명이다. 죽음이라는 그 유일한 숙명을 제외하고는 기쁨이건 행복이건 모든 것이 자유다. 그의 사고가 가야 할 운명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로 재도약하는 것이다.
돌로미티 3일 차 등산하는 날이 굉장히 힘들었다. 생각보다 험준한 산을 높이 올라야 하는 날이었다. 테라로사 산자락을 붙잡고 영차영차 올라갔다. 정말 큰 산을 꼴딱 넘고 보니 '몰리뇽'바위가 나를 맞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주 울컥할 정도의 감동이 몰려왔다. 나는 카뮈의 책을 읽었고 대자연 속에 있었다. 나의 마음속은 시끄러웠고 나의 도박은 끝날 줄 모른다. 숙명은 나의 승패를 넘은 무용함이었다. 나라는 인간이 쓸모없다는 자각에서부터 자유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재미있어졌다. 모든 것이 나의 자유다. 나는 시지프스처럼 산을 오르고 내린다. 내 앞에 쌓인 칩이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한다. 반복이야말로 모든 것을 닳고 닳아 빠지게 만들어준다. 닳아빠진 것은 쓸모없다. 나는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승패는 등 뒤 과거에 묻어둔다. 반복할 뿐이다. 모든 것이 쓸모없음을 알고 나니 거 아무거나 막 쥐고 흔들어도 좋아 보여서! 그저 웃으며 좀 재밌게 살아보자. 나의 태도는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쓸모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