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 de Janeiro
인천공항 이름이 '조영남 공항'혹은 '나훈아 공항'이라고 지어진다면 한국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혹은 BTS공항?
경유시간까지 합쳐 30시간 정도의 비행을 끝내고 리우에 도착했다. 애초에 리우를 이번 여행지에 추가시킨 이유가 브라질 음악에 대한 나의 남다른 애정 때문이었는데, 공항 이름부터가 위대한 음악가 'Tom Jobim 공항'이라고 하니 마음이 한 껏 더 부푸는 기분이었다.
Rio de Janeiro의 국제공항 이름은 Aeroporta Internacional Tom Jobim이다. Tom Jobim은 브라질의 국민 가수다. 한 때 Frank Sinatra와 함께 전 세계의 음악시장을 휩쓸던 사나이 Tom Jobim. 국제공항 이름에 대중가수, 대중음악 작곡가의 이름을 붙인 이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이미 도시의 정체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20세기 중, 후 브라질 음악이라는 건 어떤 음악의 본질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가장 사랑하는 장르가 되어버린 브라질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점점 브라질 음악가들의 이름만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Joao Donato, Deodato, Marcos Valle, Joao Gilberto, Stan Getz, Astrud Gilberto, Gilberto Gil, Ivan Lins, Tom Jobim, Azymuth, Jim Tomlinson, Stacey Kent, Rosa Passos, Marcel Powell, Victor Assis Brasil, Egberto Gismonti, Djavan, Sergio Mendes 등등. 다른 어떠한 장르의 음악들보다 음악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내버리는 장르 - 브라질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NldPFVKYmiw
Ipanema 해변 앞에 숙소를 잡았다. 짐을 풀고 피로를 풀 겸 2시간 정도 잠을 잤다. Copacabana가 해운대라면 Ipanema는 광안리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Tom Jibim의 Girls form Ipanema의 그 Ipanema다. 보사노바 음악의 대표 격 되는 이 유명한 노래의 가사는 그야말로 말초적이다. 'Ipanema에 키 크고 어린 여자가 지나간다 와~' 아주 간단한 내용의 음악이다. 하지만 키 크고 어린 여자는 화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주린 배를 채우러 돌아다녔다. 어디 괜찮은 식당이 없나. 덜컥 맘에 드는 식당이 없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유달리 반짝이는 식당이 있어 들어갔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숙소에서 조차도 계속 Tom Jobim의 Girls from Ipanema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Ipanema에 온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그러고 있지 않을까?
지금 도착한 식당은 Tom Jobim의 사진들과 Girls from Ipanema의 악보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Tom Jobim의 대단한 Fan이 만든 식당인가 하고 둘러보는데. 아이쿠. Tom Jobim이 Girls from Ipanema를 작곡한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우연히 들어온 식당에서 이런 대단한 우연을 경험하게 되다니. 신께서 나의 여행을 응원하고 계신 걸까. 정말 감동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경험들이 더 정겨울 수 있게 해 준 이 식당만의 장점? 이 있는데, 음식이 아주 맛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먹었더라면 식탁을 뒤엎고 나올 정도의 맛없는 파스타. 하지만 나는 이 파스타가 그렇게나 정겨웠다. 억지로라도 다 먹어버렸다. 그러고 싶었다. 옛날에는 이 식당이 카페/펍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하니 음식 정도는 맛없어도 괜찮다. 그저 세기의 명곡을 탄생시킨 이 공간의 정취를 맘껏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유달리 내게 많은 감명을 줬다. 음악의 본질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이 사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사진 속 장소는 지금 내가 이 사진을 보고 있는 위치에서 그대로 보인다. 식탁의 크기만 조금 달라졌다.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시인들이 모여 뒤풀이를 한다. (이 사진이 뒤풀이 사진인지는 중요치 않다) 가운데 Tom Jobim의 옆에는 시인 Vinicius de Moraes가 앉아 있다. Girls from Ipanema의 가사를 쓴 사람이다. 위 사진은 1960년으로 62년에 Girls from Ipanema가 발매되기 2년 전 사진이다.
함께하는 음악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춤을 출 수 없는 음악은 음악이라고 하기에 뭔가 애매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음악 작업을 마치고 맥주 한 잔 하는 것. 수다와 장난으로 가득 찬 뒤풀이를 하는 것. 이것이 음악의 본질 아닐까. 이 사진을 본 뒤로 이 사진과 같은 일을 내 삶에 많이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작더라도 기념할 만한 일이 있다면 모두가 모여 신나게 춤추고 마시고 놀았다. 내 인생에 아주 의미가 깊은 사진이다. 인상 깊은 사진이다.
기분이 좋아야 우연을 우연이라고 말한다. 우연은 역시 신기하다.
시내로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아주 작은 보사노바 전문 레코드샵이 있다. 주인장이 Ivan Lins를 닮은 미소를 짓는 곳이다. 주인아저씨가 보사노바에 정말 아주 깊게 미쳐있다는 소문과 모든 음반들이 보사노바 장르에 국한되어 있다는 소문에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주인아저씨가 음반을 정리하고 있다. 가게 안에는 정말 보사노바 음악만 취급되고 있었다. Chico Buarque의 손도장이 직접 찍혀 전시되어 있다. 내가 아는 보사노바 음악가들의 이름들을 막 나열하며(틀린 발음으로) 한국인 주제에 보사노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막 어필하기 시작했다. 나의 같잖은 노력이 그래도 좀 예뻐 보였는지 이것저것 여러 앨범들을 소개해 주셨다. 카운터 뒤쪽에서부터 이런저런 Vinyl 앨범들을 들고 와서는 틀어 주었다. 듣고 있는 앨범이 왜 역사적인 앨범인지, 왜 레전드인지 설명해 주시면 판들을 갈고 듣고를 반복했다. 내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 앨범을 사고 싶다고 어필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굉장하다. "이건 비매품이야 내가 들어야 해" 세 차례 정도 똑같은 수법에 넘어갔다. 주인장이 Ivan Lins의 미소를 머금고 앨범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큐레이션을 전심을 다해주고 감동을 받은 내가 그 앨범만큼은 좀 갖고 싶다고 조르면 또다시 안 파는 거라고... 그러니깐 나 같은 핫바리에겐 자랑만 하겠다는 심산인 건지 모르겠다. 뭔가 된통 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름 강수를 한 번 둔다. "제가 살 수 있는 앨범만 들려주세요!" 주인아저씨는 여기서만 들을 수 있는 걸 여기서만 듣는 게 행복한 것이라며 살 수는 없지만 들려는 줄 수 있는 앨범을 더 들려주겠다고 하신다. 여기 있는 앨범들은 모두 아주 가치 있는 것이라며 아무거나 사도 괜찮다고 다독?여 주셨다. 끝까지 당해버렸다. 주인아저씨의 보사노바 사랑에 흠뻑 젖어 보사노바 왕국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내 내 입술이 삐쭉 나와 여기서만 살 수 있는 명반이 좀 없겠냐고 여쭸더니 Tom Jobim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한 장 추천해 주셨다. Tom Jobim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라니,,, 널리고 널린 게 그런 앨범인데 이 컴필레이션 앨범은 좀 다르냐고 했더니, 이 앨범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트랙이 세 곡 있다고 하셨다. 나는 기꺼이 그 앨범을 2장 구매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말 그랬다. 요즘에 유튜브 뮤직이 발달하여 이제는 인터넷에서 찾아 들을 수 있는 곡이 몇 곡 생겼지만 아직도 나머지 한 곡은 인터넷 어디에 찾아봐도 없다. 아마 이 앨범을 들고 있는 모든 Tom Jobim 애호가들이 이 곡만큼은 죽을 만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죽어도 그 곡은 인터넷에 업로드하거나 유출시키지 않을 것이다. 마치 주인장이 내게 했던 만행처럼 나 또한 우리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곡으로 남겨두고 있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이 곡을 틀어주며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고 인터넷에도 없다고 확인해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반응들이 아주 기가 막히다. "이야~ 왠지 귀가 호강하는 기분이야"부터 "음악이 너무 좋아",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등등의 반응을 얻는다. 가끔 곰팡이 같은 친구들이 오면 "이 음악 녹음해도 돼?"라고 묻는다. 그런 놈들에겐 싸늘한 눈빛을 쏴줄 뿐이다. 아무쪼록 이러한 반응들이 내겐 너무 기분이 좋더라. 그 주인아저씨가 왜 내게 그런 장난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더욱이나 음악을 사랑하는 놈들에게는 이 짓거리가 정말 신이 나는 일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들을 수 없는 Vinyl과 CD를 사모으고 있다. 벌써 몇십 장은 그런 앨범들을 사모았다.
"너 우리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 몇 개 들어볼래?" 진정한 콜렉터의 멘트가 아닐까?
리우 지 자네이루는 특이한 지형을 가졌다. 꿀렁꿀렁 숲을 휘감은 돌산들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에릭 사티의 절친이자 스티브 라이히, 슈톡하우젠의 스승인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는 리우에서 너무 재미나고 짧은 유학 경험을 한다. 에릭 사티의 친구들 중 에릭 사티를 미워하지 않은 유일한 1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프랑스인이 읽어내는 1920년대 리우의 민속음악 리듬은 어떤지 한 번 느껴볼 법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kj352B5FmMw
슈테판 츠바이크는 리우 지 자네이루에 있는 페트로폴리스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기도 하다.
"자유로운 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이 인생에 이별을 고하기 전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 의무를 다해 두려고 한다. 나는 나와 나의 창작 작업에 이처럼 아늑한 휴식의 장소를 제공해 준, 이 훌륭한 나라인 브라질에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날이 갈수록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모국어를 말하는 세계가 나에게 소멸되어 버렸고, 나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이 자멸해 버린 뒤에, 내 인생을 다시 근본적으로 일구기에는 이 나라만큼 호감이 가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ZMETouUap4
리우의 사람들은 모두 음악인이다. 뭔가 여행자의 흔한 환상을 자극하는 문장 같다만,, 달리 내가 느낀 바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리듬감'이라고 하는 능력이 모두가 탑재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모두 춤을 춘다. 모두 다 다른 춤을 춘다. 개판이다. 모두 다른 부분에서 박수를 친다. 박과 박사이에 제각기 치고 싶은 곳에서 박수를 친다. 어느 박에는 그래서 박수소리가 크고 어느 박에서는 작고 자잘한 박수소리가 난다. 이 리듬감이 보사 리듬이었다. 보사는 정형화되어있는 하나의 리듬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치는 박수 소리다.
나는 리우의 아름다움을 음악과 함께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리우의 사람들은 아주 음악적이다. 언젠가는 음악공부를 한다면 리우에 가서 1년 정도 배워보고 싶다. 박수를 치는 법, 춤을 추는 법, 목소리를 내는 법 다 배우고 싶다. 아, 배운다고 하면 또 안될 것 같다. 그냥 막막 막! 해보고 싶다.
함께 치는 박수를 위해서,,, 내가 고스란히 참 아껴오고 사랑해오던 음악 리스트를 몇 곡 나열해 보겠습니다.
전설의 Azymuth(베이시스트, 셰이커 흔드는 흰머리)와 Marcos Valle의 도쿄 블루노트 공연을 즐겨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6uyjruEmBlY
브라질 뮤지션들 중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Joao Donato의 음악을 사랑한다. 밑에 앨범은 LSD를 복용 후 이세계에서 작업한 음악이다. 어딘가 좀 너무 좋은 음악 같다 싶다면,,, 당장 멈춤 버튼을,,
https://www.youtube.com/watch?v=wHDOSSkP29o&list=OLAK5uy_lFIzbJlqKvSLnXY6koF-MGMxzeQwuKvSY
https://www.youtube.com/watch?v=ti0S1rN6abM&t=103s
https://www.youtube.com/watch?v=FpaTk-aBmaA
이 이상 공개하면 아직은 조금 아깝고 막 좀 막 그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