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배를 대한 봉기의 태도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서 얻는 것은 잠깐의 통쾌함 뿐이며, 그 통쾌함의 대가가 크다는 것을 잊지 말자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늘 마음이 잘 맞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며, 성격 차이든 어떤 차이든 자주 충돌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회사에서는 당연하고 학교나 또래 집단에서도 흔하게 보인다. 회사원 A 역시 사사건건 회사원 B와 충돌하며 그와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공식적으로 신고하기엔 회사 차원에서 회사원 B가 명확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또한, 한 사람이 거슬린다고 회사를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그저 회사원 B가 스스로 떠나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원 B가 큰 잘못을 저질러 징계를 받을 상황에 놓였다. 회사원 A가 보았을 때 회사원 B가 그럴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이 때 리더가 회사원 A에게 회사원 B의 처벌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를 징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까, 아니면 억울한 것 같다고 그를 변호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잘 모르겠다고 발을 빼야 할까?
봉기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었다. 원소의 참모진 중 한 명이었던 봉기는 원소가 거병하기 전부터 원소와 함께 했던 인물로 원소군에 있어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으며, 원소가 기주를 장악하는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원소 세력 내에서 가장 굳건한 입지를 가졌으리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원소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매번 봉기의 의견을 묻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던 어느 날 원소에게 심배를 비난하는 상소가 올라와, 원소가 이에 대해 봉기에게 묻는 일이 있었다. 당시 봉기와 심배는 서로 개인적인 감정의 골이 깊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원소를 비롯해 다들 봉기가 좋은 말을 해줄 리 없다고 예상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봉기가 심배를 변호했던 것이다. 원소가 놀라 변호하는 이유를 묻자, 개인적 감정으로 일처리를 할 수는 없다는 우문현답을 제시했다. 이에 원소 및 다른 제장들 모두 봉기에게 크게 감탄했으며, 원소는 봉기가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그를 더 신뢰하게 된다. 더불어, 심배 역시 봉기와 감정 다툼을 하던 지난 날을 뉘우치고 봉기에게 협력하게 되었으며, 훗날 봉기와 심배는 힘을 모아 후계 다툼에서 원상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이 된다.
물론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변호했다고 하여 무조건 회사원 B가 무조건 회사원 A에게 감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회사원 B가 회사원 A에게 그 어떠한 감사의 인사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변호했다는 이유로 회사원 A를 더 싫어하게 될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즉, 회사원 B와의 관계 개선 관점에서, 그를 변호하는 것은 이점이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해가 생길 리는 없는 행동이다. 한편, 리더 또는 제 3자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높은 확률로 회사원 A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원소도 봉기가 심배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면서 봉기에게 심배의 처벌을 물었던 것처럼, 사실 리더 또는 제 3자들도 평소 두 사람의 사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회사원 B가 여전히 회사원 A에게 안좋은 감정으로 대한다고 하면, 이제는 제 3자들이 회사원 A를 지지하며 회사원 B를 비난할 수도 있다. 요약해보면, 비록 평소 눈엣가시로 여기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변호하는 것이 득이 생길 가능성은 있어도 실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 행동의 득과 실을 따져 득이 큰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 경우처럼 행동의 득과 실의 비교가 명확함에도, 개인적 감정 때문에 그릇된 결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서 얻는 것은 잠깐의 통쾌함 뿐이며, 그 통쾌함의 대가가 크다는 것을 잊지 말자. 봉기는 원수를 처단할 절호의 기회에서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원소의 더 높은 신뢰를 얻었고, 이를 통해 허유, 전풍, 저수 등을 제치고 원소군 내 2인자로서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