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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판 수경선생 Mar 08. 2024

만장일치는 불가능하다

자오곡 계책을 들은 제갈량의 행동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만장일치를 만들 의지조차 없었다.



한 소비재 회사의 마케팅 팀장이 된 리더 A는, 요즈음 마케팅 전략 구성 때문에 고민이 많다. 담당하는 한 제품에 대해 어떠한 마케팅 전략을 취할 것인지 팀 회의를 진행했는데, 대다수는 기존 방식대로 프로모션을 적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활용하자고 하였으나, 일부는 프로모션 대신 홍보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제품에 대해서는 프로모션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이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나, 팀 내 일부 인원들이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고 홍보를 강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팀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지만 두 의견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는다. 이처럼 팀원 간 의견이 나뉘어서 좀처럼 합치되지 않는 경우, 리더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로서 한 조직을 이끌다 보면, 이와 같은 구성원 간 의견 불일치는 흔하게 발생한다. 위 리더 A의 사례처럼 업무 전략 및 방침을 결정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외 근태 관리 방식과 같이 일상적인 사안에서도 불일치가 종종 발생하며, 심지어 회식 메뉴 정하기와 같은 비교적 사소한 일에서도 발생 가능하다. 이 때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럴 때면 과거 전통적인 리더들처럼 '내 말이 곧 법이다. 내 말대로 하라.'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해서는 구성원들의 불만이 너무 많이 쌓일 것이 걱정된다. 이와 같이 구성원 간 의견이 갈린 상황에서, 현명한 리더로 평가받는 제갈량은 어떻게 만장일치를 이끌어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만장일치를 만들 의지조차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북벌을 진행할 위연이 이의를 제기했던 것을 있다. 당시 촉나라의 북벌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변수는 물자 보급에 있었다. 지형이 험준하여 대규모 군수물자를 안정적으로 보급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북벌의 주 무대였던 서북지역은 물자의 자체 조달마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촉나라 군대 내에서는 서북지역을 천천히 장악하며 안정적인 SCM을 구축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위연은 달랐다. 그는 소수의 병력으로 자오곡이라는 험준한 길을 넘어 장안을 급습하자고 제안했다. 위나라 역시 자오곡을 통한 습격에 방비하지 않고 있을 것이기에, 장안을 지키던 수장 하후무가 기습에 놀라 도망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장안은 물자가 풍부한 천연의 요새기 때문에, 소수의 병력으로도 위나라 구원군으로부터 방어해 내는 것 역시 쉽다고 주장했다. 제갈량은 계책의 근거가 추측에 기반하여 성공 확률이 낮고 리스크가 크다며 반려했고, 대세 의견이었던 안정적인 SCM을 구축하는 안을 채택하였다.


위 일화에서 제갈량이 위연의 계책을 반려하는 모습을 보면 눈여겨볼 것들이 여럿 보인다.

1. 위연의 계책을 끝까지 경청했고,

2. 반려 사유를 명확히 밝혔으며,

3. 위연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1. 위연의 계책을 끝까지 경청했다.

위연의 자오곡 계책은 비록 아이디어 그 자체는 다소 황당하지만 그 근거들을 보면 제법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처럼 황당한 주장에 대해서도 그 근거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록된 까닭은, 제갈량이 위연의 주장을 끝까지 경청했다는 증거다. 만약 제갈량이 위연에 장안 기습책에 대해 말을 꺼내자마자 즉시 묵살했다면 그의 자오곡 계책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갈량은 다소 허무하게 들리는 주장임에도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었고, 이 계책은 결국 현대인들에게도 '한 번 시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계책이 되었다.


2.반려 사유를 명확히 밝혔다.

제갈량은 위연의 계책을 다 들은 뒤, 이를 채택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하후무가 촉나라의 기습을 보자마자 도주한다는 보장이 없으며, 이후 위나라 구원군으로부터 방어한다는 보장 역시 없는 등 위연이 제시한 근거의 현실적 가능성을 지적하며 반박했다. 그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 치부하며 논하기를 거부했다면, 위연이나 다른 제장들이 이후에 쉽사리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계책의 근거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반박했고, 이러한 분위기였기에 이후에도 제장들은 부담 없이 자신의 계책을 제갈량에게 제시할 수 있었다. 


3. 위연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연은 계속 자신의 자오곡 계책을 실행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갈량은 반려의 이유를 설명하기만 했을 뿐,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많은 리더들이(특히 초보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합치시켜 만장일치를 이루어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만장일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포기하지 못하는데,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소중히 대하고 싶고 또 그래야만 이후에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만장일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부하 제장들이 앞다투어 의견을 제시하는 건설적인 토의 문화를 구축했다. 그는 그저 끝까지 경청하고 명확한 이유로 반려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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