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권한위임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위나라의 왕과 한나라의 승상을 겸했던 조조는 어떻게 그 많은 정무를 돌볼 수 있었을까?
갓 설립한 스타트업의 대표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실무자 중 한 명으로 일할 때에는 스스로 일정 관리를 하며 어느 정도 업무 양을 조절이 가능했는데, 대표가 되니 전혀 불가능하다. 제품 개발도 신경 써야 하고, 재무 상태도 챙겨야 하며, 투자자 상대도 하면서, 고객도 만나야 한다. 그러는 동시에 법무, 세무, 노무 업무까지 챙겨야 하니 한 시도 쉴 틈이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원을 채용해서 업무 분장을 해보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제품 개발도, 투자자 면담도, 영업 활동도 모두 자신이 신경 쓰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회사 자체가 멈추기 때문에, 휴식은커녕 한 가지 업무에 몰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는 비단 스타트업 대표 뿐 아니라, 신임 리더들 중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위나라의 왕과 한나라의 승상을 겸했던 조조는 어떻게 그 많은 정무를 돌볼 수 있었을까? 조조는 원소와 싸울 때, 형주 정벌 등 중요한 전장에는 거의 모두 직접 출진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참전은 조조가 했던 업무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한나라의 폐단의 중심이었던 인재 발굴 및 육성 체계를 뜯어고쳤으며, 국가 수입을 번창시키고 세수도 증가시키는 등 내정 분야에 있어서도 매우 큰 업적을 세웠다.
조조의 삶이 끊임없는 정투의 연속이었음에도 이러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권한 위임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조조가 원소군과 전면전을 벌일 때에도 그는 전투 현장에 나가서 군대를 지휘하고 군사 작전을 수립하고 있었지만, 그 때 순욱, 종요 등은 허도에서 국가 기반을 닦는 정책 개혁안을 만들고 국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 외에도 조조는 매번 순욱 등의 정책 입안자나 조인, 장료 등의 지휘관들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이 현재 신경 쓰지 못하는 안건에 대해 대신 처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덕분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본인은 정말 시급한 중대사에 보다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대의 스타트업 대표(또는 리더)도 권한 위임의 장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직원들은 믿고 맡길 만큼 업무 처리 능력이 우수하지 못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에게도 순욱, 장료가 있었다면 자신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불평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순욱이라고 처음부터 한 나라의 국정을 다룰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순욱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처음 조조군에 임관했을 때부터 조조가 그에게 수차례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순욱도 처음에는 연주와 예주 같은 작은 지역을 대상으로 그의 능력을 발휘했을 뿐이었으나, 점차 성장하면서 한 나라의 국정을 총괄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다. 조조 휘하의 지휘관 중 한 명인 우금 역시,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병사를 관리했으나 조조가 점차 많은 상황에서 그를 중용했고, 나중에는 조조의 지시 없이 스스로 뛰어난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인이 되어 있었다. 조조가 장수군에게 쫓길 때 우금은 상부 지시 없이 방어 진지를 구축했었는데, 이 사례는 우금이 군 지휘관으로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한 위임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이룰 수 있다. 구성원의 역량 강화 측면 뿐 아니라, 리더 역시 구성원을 믿고 일을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답답할 수 있다. 본인이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리더 자신을 위해서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주둔하고 있을 때. 사마의는 촉나라 사신으로부터 제갈량이 모든 정무를 직접 다 돌본다는 말을 듣고, '촉의 운명이 다 했구나'라며 기뻐했다.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오장원에 주둔한 촉나라 군대는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들더라도, 조조 역시 '이런 놈들에게 맡기느니 힘들어도 내가 직접 하겠다'란 생각을 한 번도 안했을 리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