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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판 수경선생 Feb 20. 2024

제발 제 요청을 거절해주세요

사마의와 조예

요청을 하는 자와 요청을 받는 자가 이심전심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다른 동료와 신경전을 벌일 때가 많다. 이 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관에게 문의했으나 퇴짜 맞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입장만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수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전략은 동료와 협업을 할 때 뿐 아니라 외부 협력사와 협상을 할 때에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구매 담당자가 협력사 영업 담당자와 가격 협상을 하는 경우, 자신의 상관, 내부 유관 부서에게 의도적으로 퇴짜를 맞아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도 한다.


사마의도 그랬다. 오장원에서 촉한의 제갈량과의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있을 때, 제갈량은 끊임없이 사마의와 위군을 도발했다. 혈기 왕성한 위나라 군대는 즉시 요격하여 싸울 것을 주장했지만 사마의는 싸울 의사가 없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록 위나라가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 했고, 한 번의 실수로 패하게 되면 위나라의 존망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다림 전문가였던 사마의와는 달리 위나라 군대는 그렇지 못했고, 군대의 사기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사마의는 위나라 황제 조예에게 서신을 보내 나가 싸우게 해달라며 출격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조예는 총명했고 사마의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여 출격을 거부하며 이에 반하는 것을 황권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못 박았다. 이후 위나라 그 누구도 더 이상 사마의에게 불평하지 않았고, 오랜 기다림의 끝에 결국 위나라가 승리하게 된다.


말만 들으면 너무 간단한 방법인 것 같지만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요청을 하는 자와 요청을 받는 자가 이심전심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서신을 보내던 사마의는 조예의 총명함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서신 밑에 "추신. 이 글을 쓰는 제 숨은 의도를 읽어주세요"라고 적고 싶었을 것이다. 요즈음 같으면 조예에게 몰래 개인 메신저를 보내 "거절해주세요"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가령, 같은 전략을 제갈량이 촉한 황제 유선에게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자오곡을 통해 출진하자는 위연의 의견을 거부하기 위해 유선에게 상소를 올렸다면? 아무도 정답을 알 수는 없으나, 어쩌면 "그대 뜻대로 하시오"라는 순진무구한 답변이 왔을 지도 모른다. 이 전략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의 리더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팀원은 어떤 사람인지 평소 잘 알고 있어야 하며, 혹시 요청의 숨은 의도는 없는 것인지 숙고해봐야 한다.


만약 평소 가까이 지내지 않는 사람의 거절이 필요한 경우라면 어떻게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가 거절할 수 밖에 없게 요청해야 한다. 가령, 재경 팀의 의견을 명분삼아 요청을 거절하고 싶은 경우, 재경 팀에서 싫어할 키워드나 표현을 적극 사용해서 요청을 하면 된다. 즉, 이 방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마의는 조예를 잘 알고 있어 이 방법을 사용했으며, 제갈량도 유선을 잘 알고 있어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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