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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판 수경선생 Feb 23. 2024

절망에 대처하기

적벽에서 패배한 조조는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나

갈망하던 꿈을 바로 눈 앞에서 아쉽게 놓칠 수록 다가오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회사원 A는 IT업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아 온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총명했고 성실했으며, 그 덕분에 처음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큰 성과를 냈다. 그는 승승장구했고 커리어 시작한 지 10년 정도 지났을 때 그는 자타공인 업무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다른 사람들은 평생 도달하기 어려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국내를 벗어나 전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었고 미국으로 진출했다. 미국에서도 그는 여전히 높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그의 앞 길은 창창했다. 그 때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IT기업 사이에서 Lay-off 바람이 불었고,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자 높은 연봉을 받고 있던 A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하루아침에 미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히도 그는 지금까지 높은 연봉을 받았던 사람이기에 당장 소득이 없더라도 생계가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꿈이 달성되기 직전에 좌절되었다는 사실에 큰 절망감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주말에도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그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그저 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 '어디서부터 무엇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지?'와 같은 생각들을 할 뿐이었다.


간절하던 꿈이 달성되는 것을 눈 앞에서 깨지는 경험은 비단 A에게만 있던 것이 아니다. 관도에서 패배한 원소가 그랬고, 적벽에서 패배한 조조가 그랬으며, 가정에서 패배한 제갈량이 그랬다. 조조의 눈에 적벽에서 불타오른 것은 자신의 선단이 아니라 자신의 꿈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냉정하고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난 조조였지만, 적벽에서 불타는 선단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장료 등이 조조를 이끌고 후퇴하지 않았다면 조조는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때 조조의 세력은 망했을까? 당연하게도 아니다. 비록 적벽에서 대규모의 선단과 병력을 잃고 그 직후 형주를 빼앗겼음에도, 조조는 여전히 가장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조가 절망하는 동안에도 하북과 중원 등지에서 막대한 물자가 생산되고 있었고, 세금은 꾸준히 징수되고 있었으며, 군사는 새로 징집되고 훈련되고 있었다.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유비, 손권 동맹군은 여전히 조조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천하통일에 가장 가까운 것 역시 여전히 조조였다. 조조 역시 이 사실을 깨닫고, 본청으로 복귀하여 형주 정벌 동안 신경쓰지 못한 업무를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A를 보며, 생계가 위협될 정도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절망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갈망하던 꿈을 바로 눈 앞에서 아쉽게 놓칠 수록 다가오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올림픽에서 은메달 수상자가 가장 크게 슬퍼한다는 말도 있다. 이와 같은 일을 겪었을 때 아래 세 가지를 기억하자.


1. 내가 꾸준히 만들어온 것은 절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조조의 백만 군대는 적벽에서 전부 재가 되었지만, 조조의 세력 전체를 재로 만들 수는 없었다.  조조는 여전히 강대했고, 그는 최대한 빠르게 이 손실을 메울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회사원 A의 경우도 하루아침에 그의 고용 상태가 망가질 수는 있었지만, 그가 지금껏 쌓아온 그의 업무 역량, 주변 평판, 네트워크 등은 건재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등 재기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일을 처리하는 기회로 삼자.

조조는 본청 복귀 후 형주 정벌에 떠나 있는 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행정 업무를 모두 처리했다. 덕분에 국가 생산량이 증가했고, 조세를 보다 안정적으로 징수할 수 있었다. 이 때 정비했던 바를 바탕으로 추후 마등, 한수, 장로 등의 세력을 꺾고 서쪽 지역 일대를 장악할 수 있었다. 회사원 A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너무 일에 매달리느라 신경쓰지 못한 것들을 돌아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동안 미루어왔던 가족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집안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또는 개인 여가를 즐기거나 건강을 챙길 수도 있다. 이렇게 가족 관계나 심신 건강을 챙기면서 한 번 더 도약할 신체적, 정신적 힘을 기를 수 있다.


3. 좌절을 겪은 직후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조조가 세력을 다시 정비한 것은 불타는 전장에서 빠져나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장을 이탈하여 무사히 퇴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조는 불타는 적벽을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었고, 장료 등의 도움을 받아 퇴각할 수 있었다. 조조 뿐 아니라 유비 역시, 이릉에서 참패를 당하며 망연자실했지만 관흥, 장포, 조운과 같은 제장들의 도움을 받아 백제성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큰 좌절을 겪게 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있다. 이 때 숨을 고르고 추스를 때까지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공가도를 밟아온 사람일 수록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색하고 때로는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조조와 유비 역시 그 상황에선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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