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 아니었을까
지난 글에서 인생 첫 퇴사를 맞이한 이유를 소개했다. 뭔가 장황해 보이지만 사실 90%는 자기 자랑이니 스킵해도 좋다.
▽ 지난 글 보러 가기
오늘은 퇴사 후 후회한 것을 소개하겠다. 밥벌이가 끊겼다, 취업시장이 좋지 않으니 이직도 힘들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내 후회는 그게 아니다.
쉬면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새로운 습관도 들였다. 말로는 쉰다고 해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더 부지런히 살았다. 원래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작성글에서 소개한 6년 간 부지런히 달려온 시간이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라는 강박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생기자 퇴사하면 해봐야지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나가고 있다. 일종의 버킷리스트 깨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꼭 퇴사해야만 할 수 있었을까? 일하면서도 쉬는 날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 퇴사 선언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심했다. '퇴사하면', '그때는 꼭'.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다. 살필 수 있는 것도 못 본 척했다.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도 퇴사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양분이자 새로운 도전의 시작점이니까.
그러나 퇴사를 방패 삼아 이 사소한 소중함을 일찍이 시도하지 못한 점, 아니 안 한 점은 후회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콧바람을 쐬러 밖에 나가야 한다. 완벽한 바깥순이다. 집에만 있으면 좀이 쑤셔서 못 견딘다. 날씨 좋은 주말에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늘 그 생각이 깊게 박혀 있다.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과제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며칠 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라는 가족의 권유로 집순이 생활에 도전해보았다. 알람도 없이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고, 잠깐 TV 보다가 낮잠 자기. 해가 질 무렵에 일어나 좀 뒹굴다 저녁 식사. 재밌는 것 없나 핸드폰 좀 보다가 다시 꿈나라로.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하루였다. 며칠을 한량처럼 보냈다. 덕분에 쌓인 피로도 풀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그동안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마음이 조급함을 키웠다. 쉬는 날에도 업무를 하지 않을 뿐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래야 그날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으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방전 상태인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하루가 이리도 길구나.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이 기나긴 하루를 꼭꼭 씹으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구나. 그래도 되는구나. 하지만 쉬는 날 매번 이렇게 지내라고 하면... 글쎄,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현대인에게 멍때리기는 꼭 필요한 순간이다. 그래야 생각으로 뒤엉킨 머릿속을 비우고 정리할 수 있다. 불멍, 물멍, 멍때리기와 관련된 신조어의 탄생도 그 필요성을 증명한다. 나는 하늘멍을 택했다. 겨울 하늘은 건조한 날씨만큼이나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그 하늘이 좋았다. 가만히 바닥에 누워 깨끗한 하늘을 보고 있자면 꼭 하늘을 바다 삼아 둥둥 떠 다니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핸드폰도 멀리한 채 오로지 하늘멍에만 집중했다. 길을 걷다가도 뒷목이 시큰거릴 때까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눈에 담았다. 아니, 푸른 하늘이 나를 가득 안았다. 그동안은 빽빽한 고층 빌딩 사이 액자 속 하늘이 전부였다. 이토록 높고 푸른 하늘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모르고 살았다.
집 바로 앞에 도서관이 있는데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출퇴근길에 있어 매일 같이 그 앞을 지났는데도. 이제 개관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봐야지'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아무튼 드디어 가보았다. 단순히 퇴사 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간 것만은 아니다. 책을 읽지 않은지도 오래됐고, 글쓰기 활동에 양분으로 삼을 표현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바보가 되기 싫은 탓도 있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대부분 그럴 테다. 긴 글보다는 짧게 빨리 읽을 수 있는 글만 골라 읽는다. 굳이 긴 글을 읽으려고 좀처럼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단순해지고 표현도 단조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아, 책을 읽어야겠다. 바보가 되지 말자. 참 오랜만에 도서관의 매력에 빠졌다. 이런 천국이 있나. 그날 이후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출석도장을 찍었다. 휴관일만 빼고. 정말 일만 안 했지 온종일 책을 끼고 살았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전 소설도 도전해보고 새로운 분야로의 도약을 위한 참고 서적도 주구장창 읽었다. 하루 이틀 다니다 보니 자리 욕심이 생겼다. 통창이 난 자리에 앉으면 푸른 하늘도 보고 책도 보고, 일석이조잖아? 그러나 사람 생각하는 건 다 같은 모양.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 아무리 일찍 가도 나보다 더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렇구나,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다 부지런했구나. 덕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강제 바른생활이 되었다.
날씨가 좋다 보니 바깥순이는 콧바람이 격렬하게 쐬고 싶었다. 일할 때는 주말에 어딜 가야지, 늘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 목적지만 바라보고 움직였다. 그러나 가끔은 목적지 없이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목적이 사라지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작은 소중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앞을 총총 걸어가는 참새, 살랑거리는 바람과 합주하는 나뭇가지, 걸음이 닿는 곳마다 온 힘을 다해 빛을 내리는 태양. 운이 좋으면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에 일찍이 모습을 드러낸 하얀 조각달도 만날 수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걸음이 닿는 대로 그 아름다운 풍경에 스미기로 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푹 던져지길 바랐다. 어릴 적 놀던 길, 학교 가던 길도 걸어보았다. 그 길에 오르면 그 시절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목표가 있어야 열심히 달릴 수 있다고. 그러니 아주 작은 목표라도 세워보라고.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반대로 열심히 달리다 보면 없던 목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눈앞에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그 속을 뚫고 가려고 하지는 말자.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는 말자.
신호등은 꼭 내가 다다르기 직전에 파란불로 바뀌더라. 금방 빨간불로 바뀔 정도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든 건너보려 열심히 뛰었다. 특히 출근길은 나름대로 시간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한 번 신호를 놓치면 계산이 꼬여버린다. 퇴사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더니 이제는 파란불이 보여도 뛰지 않는다. 뛰기 싫어서, 힘 빼기 싫어서 뛰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은 단순히 '에이, 뛰기 귀찮으니까 다음 신호 기다려야지.'와 다르다. 꼭 깜빡이는 파란불이 나와 같았다. 이내 빨간불로 바뀌면 아, 좀 쉬어야겠구나. 그래서 다음 신호로 바뀌기까지의 그 짧은 순간도 즐겨보고자 했다. 마음의 여유가 이렇게 사람을 긍정맨으로 바꾸어놓는다. 목적지 없는 산책과 깨달음은 같다. 그동안 파란불만 바라보고 살았다. 앞으로 나아갈 길만 생각했다. 과연 앞만 보고 간다고 시야가 넓어질까? 한 박자 쉬어도 괜찮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박자 쉴 때 시야가 더 넓어진다. 눈 앞에 보이는 빨간불이 마음 속 다음 신호를 깨닫게 했다.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후회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이직하더라도 어리석은 후회를 두 번 하지 않게 이 소중함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이다. 가끔은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을 보고, 나의 두 다리만 믿고 걸어봐야겠다. 질릴 때까지 책을 읽어야겠다. 찰나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퇴사는 후회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니다. 퇴사가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뛰어들게 했다. 한편으로는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소중함을 깨달아서 다행이다. 인생 모험은 생각보다 재밌다. 늘 나이만 먹었지 아직 어린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인생 첫 퇴사를 계기로 생각이 한층 자랐다. 부디 이 소중함이 한낱 소모품이 되지 않길 바라며, 나는 다시 인생 대장정에 발을 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