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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Nov 15. 2024

오랜 시간의 모퉁이를 돌아 맞이한 친구

내가 미안했어, 그때

   내가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에게는 절친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내 룸메이트였고, 수능이 끝나면 같이 '쇼미더머니'를 보러 가자는 기약 없는 약속도 하며 응원의 손편지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나와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그 아이는 물론 나보다 공부도 잘했고, 내 눈에는 그저 천사인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서로 많이 의지했고, 고민도 나누며 우린 깊은 얘기도 종종 했었다. 할로윈 때도 같이 분장을 하며 학교 축제를 즐겼고, 가끔 도망치고 싶어도 너무 힘들어도 끝까지 여기를 졸업해서 나가자고 서로 맹세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갔다. 내게 잘해주는 친구들도 많았고, 다 착했지만 열등감과 질투심, 조급함은 나를 좀 먹어 우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갔고, 그렇게 어느 날, 나는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버렸다. 정말 바람처럼 사라졌고, 그때는 내 고통이 가장 크고 검게 보였기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나만 없으면 모두가 잘 지낼 것만 같다는 착각을 안고서 나는 아쉬움을 담고 외국어 고등학교 정문을 엄마와 함께 나섰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애써 거기에서의 모든 기억을 지우려 했다. 친구들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나보다 더 성공할 반 친구들이 부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이 그리워졌지만 여전히 연락을 할 순 없었다. 절친이 그때 했던 얘기가 있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좋은 교육을 받아볼 수 있겠어. 여기서 도망가면 평생 도망가게 될 거야."


   나는 도망갔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도망을 가다 못해 잠수를 탔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몰랐다. 나는 내가 절친에게 의지하고 매달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그녀에게 받았던 우정이 듬뿍 담긴 편지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그 안의 한 글자 한 글자는 다 진심이었다. 시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고 누구보다 의지했던 친구였기에 처음으로 다시 톡을 하게 됐다. 여전히 꿈속에서 나는 그 친구와의 추억이 나왔고, 선명하게 그 친구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연락을 하면서 나는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 친구는 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리고 난 후, 스스로 자책하며 나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원망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나는 내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내 전학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녀와 나눈 대화로 인해 당시 추억과 힘듦이 동시에 떠올랐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내게 연락하면 좋은 소리가 못 나갈 것 같아서 쉽사리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더 빨리 연락할 걸 그랬다. 연락해서 미안했다고, 갑자기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하다고, 우리끼리 한 약속을 어겨서 미안하다고 할 걸 그랬다. 아니, 힘들었을 때, 그 친구를 찾을 걸 그랬다. 죽을 만큼 우울하다고, 힘들다고 전학 가고 싶다고 다 털어놓을 걸 그랬다. 혼자서 꽁꽁 싸매다가 결국 폭탄처럼 터져버린 감정은 극단적인 전학으로 이어졌고, 나는 한 동안 영혼이 없는 채로 지냈다. 도망간 것이 쪽팔렸고, 다시는 그 친구들을 대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을 대면하면 그 학교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기에.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힘듦을 이겨내면서 행복했던 추억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항상 함께였던 그 친구 덕분에 그만큼이라도 버텼던 것 같다. 이기적이었고, 혼자 남겨진 친구에게 내 갑작스러운 전학이 얼마나 잔인한 짓이었는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알아도 피했던 것 같다. 불안함과 싸우고 있었기에. 그래도 장문의 사과를 서로 받아주면서 비로소 성인이 된 우리는 미성숙했던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서로를 용서했다.     

     나는 이제 그때 당시 그 친구가 느꼈던 배신감과 서운함을 이해하며 다시는 잠수를 타지 않기로, 그냥 대면하기로 마음먹었고, 친구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며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이제는 서로를 편하게 응원해 주면서 멀리 있어도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그리운 친구로나마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친구들과의 추억, 그들의 손 편지를 나는 아직 가지고 있다. 그 속에 묻혀 있는 추억과 기억도 가지고 있다. 아프면서도 따뜻하게 남아있는 그 온기를 그 친구들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내게 가끔씩 걸어오는 안부에는 힘찬 응원과 진심이 가득 담아있다. 지금까지 나만 혼자 의심하고 가시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전학 간 날 다들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제 나를 다 잊었을 거라고. 그들에게 나는 이제 투명인간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응원도 해준다. 나는 비로소 아쉽게 바라보던 외국어 고등학교의 정문 앞에, 3반 문 앞에 서 있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속의 공허함은 비로소 없어졌다.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그때는 나도 그게 최선이었고, 그 친구에게도 그게 최선이었기에 서로 외면했던 공백을 이제는 깨뜨렸다. 다행이다,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서, 친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마음 한편에 피어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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