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도리 Nov 21. 2024

개명을 실감하는 순간

한자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내 모든 계좌가 막혔을 땐 그냥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순간 내 머릿속에 지나간 건 개명과 재발급한 주민등록증. 이제 올 것이 온 것이다. 이름이 바뀌면 관련된 서류들도 다 바뀌어야 한다. 내 새로운 시작을 반겨주듯 통신사, 은행 등 계좌가 다 막혀서 임시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다행히 저번 주에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위해 촬영했던 증명사진이 있었다. 그걸 들고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일시정지 되어있는 것들을 풀어야 한다. 이제야 개명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름의 한문만 바뀐 것뿐이지만 내가 내 돈을 당장 못 쓰게 되었다. 그냥 예쁘고 지혜로운 사람에서 햇빛이 반짝이는 섬이 되긴 쉽지 않다. 이럴 때 내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개명은 처음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바꿔가야 할 것이 많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서류뿐만 아니라 내 삶에 있어서도 바뀔 점이 많다. 이전의 힘들고 슬펐던 나 자신을 끌어안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이름에 걸맞게 좀 더 환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정말 휴양지처럼 누구든 나를 만나면 편하고 기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덤벙거리고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지만 난, 바뀔 자신이 있다. 어제 정신과 선생님께 약 복용량을 줄일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학교에 입학하고 3월이 지나 봐야 알 것 같다고 하셨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또 우울이 도질 것이라 생각하신 거다. 나는 자기 확신이 생겨서 괜찮다고 말은 해도 내심 예기불안에 떨고 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여유가 행복이, 또다시 무너지면,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고 그러기도 싫은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 때문에 대학 발표가 기대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번에는 끝까지 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럴 준비도 됐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이 별 거 아니란 듯이 말하지만 그게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그 사 년을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간다고 해서 인생이 망한 건 아니지만 대학에서 배울 게 없는 것도 아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학구열이 불탈 때도 있고, 이걸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써먹나 싶다가도 고등학생 때를 떠올리면 비슷하게 버틸 수 있다. 그래도 더 발전하고 싶어서 공모전도 참가해 보고 여러 가지 활동들로 여유시간을 때우다 보면 4년은 금방 가버리겠지. 나는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게 싫다. 어느 기점을 넘어가면, 내가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시간은 갑자기 빠르게 흐르는 것만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리는 게 불안하고 싫었지만 내가 막을 순 없는 거였다. 중도에 그 속도감에 잡아먹혀 불안으로 인해 멈춰버리면 그에 따른 대가를 따라야 한다. '윤하 - 죽음의 나선'에 나오는 가사처럼 도망치고 싶을 땐 사고를 멈춘 사람들과 그 뒤를 따르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부모님의 세월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점점 더 아프고 약해져 갔다. 그걸 바라보는 나와 오빠, 그리고 동생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삶은 각자의 삶이고 부모님은 부모님의 삶이 있으니 과도한 자책은 오히려 불효다. 딱히 뛰어난 효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빚지고 싶지 않다. 죄책감 말고 나는 감사함을 느끼고 싶다. 내 감정은 내가 고를 수 있는 것 아닌가. 감사함이 죄책감으로 변질되면 자책을 데리고 오고, 결과적으로는 삐뚤어지고 만다. 뜻하지 않는 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오히려 더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면 부모님은 우리가 감사함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쉰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말이다. 참 모순적인 상황이지만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희생해서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자식들은 미안함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쌍방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독립하는 게 좋다고들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죄책감에서 벗어난 나만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게 뭐냐고 여쭤봤다. 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들의 걱정을 안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다시 본가로 내려왔을 때 엄마가 제일 힘든 점은 또다시 바라보며 걱정을 해야 하는 사실이라고 하셨다. 그 걱정은 날카로운 말로 변질이 된다. 과도한 걱정 또한 부담이 된다. 그건 부모님의 삶과 나의 삶이 분리되지 못한 게 되니까. 부모님이 우리만 바라보게 만들면 안 된다.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신뢰를 드려야 하는데 나는 그다지 큰 신뢰를 주진 못했다. 오빠는 잘 가다가 가끔씩 주저앉는다. 동생은 말 안 해도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줄 수는 없어도 어깨정도는 기대게 해 줄 수 있는 휴양지가 되고 싶다. 내게는 가족이 무척 소중하기 때문에,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이 형제자매도 소중해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 내가 힘들 때 곁을 지켜준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기 때문이다. 

  개명을 하면서 정말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뜻도 너무 마음에 든다. 이름은 같지만 한자가 달라서 이질감도 없다. 그러니 이 복잡함과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하자.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한 설렘을 택하겠다. 그렇게 하나하나 바꾸고 나면 또 나중에 바꿔야 하는 것들이 나오겠지. 개명한 주변의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살다가 필요하면 계속 바꿀 게 나온다고 한다. 그때마다 바꾸면 되는 것이다. 전혀 귀찮지 않다. 이름을 무려 바꾸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몰라도 어려워도 물어보고 해내면 된다. 내가 오늘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점점 스스로 해내는 것들을 늘리며 더 단단해지고 있다. 항상 불용한자였던 마지막 한자가 이제는 쓰기도 쉽고 예쁜 의미를 가진 것이 좋다. 과거의 나 자신을 사랑하지만 그걸 모두 수용한 현재의 나 자신이 가장 좋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난다. 현재를 살자, 힘든 일이어도 파도에 몸을 맡기듯 마음에 여유를 넣고 둥둥 떠다니더라도 나만의 좌표를 잡아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전 17화 컴퓨터 공부의 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