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2020년 8월 10일

by msg

"가장 깊은 감정은 언제나 침묵 속에 있다."

"The deepest feeling always shows itself in silence."

- 마리안 무어 (Marianne Moore)


김 교수 사건 이후, 우리 사이에는 분명한 균열이 생겼다. 공기는 유리처럼 차가웠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 겹 막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2020년 8월 10일


며칠 뒤, 하윤이 먼저 찾아왔다. 현관문 앞에 서서,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현우야.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 너한테 상의도 없이….”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메마른 나뭇잎처럼 바스러졌다.


나는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하지도 못했다. 용서와 이해는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녀를 안았다. 어깨에 닿는 감촉이 어색했다. 마치 얇은 유리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껴안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서툴렀다.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며칠이 지나 약속이라도 한 듯 인문대 과방에 모였다. 한때 우리의 성역이자 놀이터였던 공간. 하지만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 향이 코를 찔렀다.


두 사람은 각자의 노트북을 켰다. 타자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얀 화면 위에서 내 손가락만 맴돌았다. 등단 길이 막혔다. 재능을 증명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키보드를 누를 힘이 나지 않았다.


하윤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로 구상하는 거… 있어? 내가 뭐… 도와줄까?”


나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니, 혼자 할 수 있어.”


내 대답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상처를 보았지만, 나는 시선을 외면했다. 한때 우리를 가장 단단하게 묶어주었던 ‘공동 창작’이라는 연결고리가 속절없이 끊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내 글의 첫 번째 독자가 아니었고,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는 파트너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이방인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탁'. 하윤이 노트북 덮는 소리가 방 안의 무거운 침묵을 갈랐다. 내 어깨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현우야. 우리… 오늘은 그만할까?”


“…그래.”


과방을 나오는 길,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구두 소리와 내 운동화 소리가 어색하게 복도를 울렸다. 나는 내 상처에 갇혀 그녀를 돌아보지 못했고, 그녀는 죄책감에 갇혀 내게 다가가지 못했다.


변화의 계기는 사소했다. 며칠 만에 찾아간 하윤의 자취방. 그녀는 나를 위해 저녁을 차렸지만, 우리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어색한 침묵을 갈랐다. 식사가 끝나고, 그녀가 커피를 내왔다. 김이 오르는 머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현우야.”


“응.”


창밖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깊은 슬픔을,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했다.


“너한테 너무 차갑게 굴었어. 내 문제는 내 문제인데, 너한테 화풀이한 것 같아.” 내 사과에, 하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야. 내가… 내가 다 망쳤는걸.”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네 탓 아니야.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너는 나를 위해 싸워준 거잖아. 방식이 서툴렀을 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다만…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니까,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글을 쓰는 것도, 너를 대하는 것도.” 내 솔직한 고백에, 하윤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한참을 울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글이 아니어도 괜찮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걸 찾아보자. 다시 예전처럼, 그냥 웃을 수 있는 거.”

그녀의 제안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깨어진 조각들을 다시 붙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찌르는 파편은 되지 말아야 했다. “그래. 그러자.”


이 서툰 화해는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얼음판 위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약속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물 젖은 얼굴을 보며, 이 또한 내가 넘어서야 할 하나의 시련임을 깨달았다. 침묵을 깨고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놀란 듯 움찔했지만, 이내 내 손을 마주 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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