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엄마의 성장기
“우리 하나, 오늘도 잘 다녀와.”
“엄마, 사랑해. 빠이빠이.”
어느덧 이 생활도 24개월이 되었다. 이제 ‘엄마’라는 이름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시작된다. 밥을 짓고, 먹이고, 씻기고, 등원 준비를 한다. 푹 잠든 아이의 얼굴을 아침마다 바라보는 순간은 내가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준다.
작은 손을 어린이집 선생님께 건네주고 돌아오는 길, 요즘 따라 내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괜히 가을이 와서 생각이 많아지는 거라며 날씨 탓을 해보지만, 내쉬는 깊은 한숨이 공복인 내 속을 더 쓰리게 만들었다.
‘10월은 한창 중간고사 기간인데…’ 필요하지도 않은 고민을 하며 문득 10년 동안 몸담았던 학교를 떠올렸다.
나는 대안학교에서 10년 남짓 일했다. 기독교 기숙사형 국제 대안학교라 해외 대학을 준비하는 신앙심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아니,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사실은 방황하는 10대들이 모인 혼란의 집합소였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그곳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어른인 척하는 아이들의 깊은 내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직업 그 이상의 소명감을 가지고 그곳에서 지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기숙사 학교였기에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하고, 지내며, 삶을 함께했다. 공부도 하고, 울기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아이들과 모든 순간을 함께 살았다. 마치 나의 일부, 아니 전부를 나누어 주듯이 그들과 지낸 시간이 지나고, 30대가 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되어 있었다. 학생들도 어느새 철없던 시절을 지나 어엿한 직장인, 그리고 결혼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모든 선택에 있어서 늘 고민이 많았고, 후회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서른다섯이 되니 문득, 내가 그렇게 전부를 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믿었던 그 삶이, 왜 갑자기 전부를 잃어버린 것 같은 허무함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왜 내 마음이 이렇게 혼란스러울까? 하던 중 오랜만에 한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어제 선생님과 하나가 꿈에 나왔어요. 보고 싶어요.”
평소에 보고 싶고 아끼던 제자라 너무나 반가웠다.
우리는 서둘러 만나 늘 그렇듯 맛있는 음식 이야기부터 꺼냈다.
“선생님, 이 집 쌀국수 정말 맛있네요~, 그리고 저 만나는 사람이 생겼어요.”
얘기를 하느라 식은 쌀국수를 부지런히 먹으며, 초등학생 때부터 봐왔던 제자의 사랑스러운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언의 뿌듯함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꽤 흘러,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제자는 결심한 듯 입을 떼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놀라지 마세요..! 전에 말씀드렸던 전공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새로운 전공을 선택했어요. 저 신학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 세상에, 너무, 너무 감사하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됐어?”
“사실 다른 길도 생각해 봤고, 피해 가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남들을 세우고 돕는 것이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더라고요, 선생님. 그래서 결심했어요.”
“너무 잘됐다, 정말 너에게 딱 맞는 길을 찾았구나. 왜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지?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참기 힘들다.”
“선생님, 저도요. 저도 눈물 참느라 애쓰고 있어요.”
어린 나이부터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을 돕고, 봉사도 마다하지 않았던 제자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정 형편상 바로 대학에 가지 못하고 졸업 후 1년 동안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돕던 그 제자였기에, 그 아이가 이제야 진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안도감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까지 생겼다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기억나니, 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남들을 다 돕다가 자신을 잃은 것 같다고 힘들어했던 시절이 있었잖아. 하지만 남을 세워주는 것이 네 재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게 너무 대견하고 감사하네. 정말 잘 선택했어. 누군가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야. 너무 기대돼”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 더 말씀 안 하셔도 제 마음 다 아시죠?”
“응, 그럼 그럼.”
그렇게 한참을 우리는 속 깊은 울림을 나눈 후에 하나의 하원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갈 채비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침과의 한숨과는 다른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분명 제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데 왜 이리도 위로가 되는지.
아름답게 자라준 그 친구의 삶이 마치 나에게 내가 걸어왔던 길은 전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전부를 얻기 위한 과정이고, 눈앞에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아 공허했던 최근의 내 얕은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내가 추구했던 삶의 방향이 다시금 정돈되어 갔다. 어쩌면 내가 정말 가르치고자 했던, 아니 살아내고자 했던 삶은 남들이 보기에 성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전하고자 했던 건 교육을 넘은 ‘가치’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단지 이 사람이 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일, 삶을 나누는 일 그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삶들이 있었다.
네시 반이 되어 하원을 하러 간 나를 반기는 딸의 포옹이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오늘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의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