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지윤 Nov 15. 2024

우리의 서사, 세렌디피티

30대 엄마의 성장기

11월의 끝자락, 슬슬 하나둘씩 백화점과 공원, 넥플릭스 속 영화들 그리고 주변 곳곳이 빨간 리본과 눈송이들로 장식되어 간다. 크리스마스의 설렘과 기대를 온 세상이 안고 있듯 그렇게 서서히 일상으로 분주했던 우리 맘도 불난로 온기처럼 따스해져 간다. 이상하게 크리스마스가 되면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이, 사람들은 그 특별하고도 따뜻한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일상 속에 분주하게 치이던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는데, 한여름이었지만 그날은 분명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벅참과 설렘이 있었다. 왜냐하면 뜨겁던 8월의 한여름, 굳게 닫혀 차가운 내 맘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기고, 너를 만나고 나를 찾은 날이기 때문이다.


자, 우리의 서사를 당신께 들려주겠다.


[특별히 오늘의 글을 읽을 땐 조건이 있다.]

1. Serendipity - Maurillo / It Could Happen to You - Maurillo를 들을 것!

(https://www.youtube.com/watch?v=-H-FVH3HmI4 ,

https://www.youtube.com/watch?v=PN5jwpxGJeo)

2. 따뜻한 티를 준비할 것

3. 그리고 마음껏 이 시간을 간직할 것! :)


준비가 되었나? 그럼 시작하겠다!


"안녕, 오랜만이네."

"응.. 안녕!"


어색한 인사로 시작한 우리는 그토록이나 궁금해했던 서로였다. 2015년, 동네 상가 카페에서 청포도에이드를 시킨 너와 아아를 시킨 내가 세상에서 가장 긴장된 인사를 나누고 우린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훌쩍 커버린, 진짜 남자가 된 네가 내 앞에 있었다. 여전히 순수한 눈빛과 다정한 눈웃음 그렇지만 남자답게 나를 리드하려는 너의 안내에 우린 동네 마을버스를 타고 네가 열심히 찾은 맛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네가 대하길래 하나도 긴장을 안 한 줄 알았는데, 웬걸 우린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타고 있었다. 25살이 되어 버스를 거꾸로 타다니, 겸연쩍게 웃는 너의 모습에 경직되어 있던 나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서둘러 내려서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가고 카페를 가는 동안 내내 이렇게 만난 오늘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실 우리의 첫 만남은 1997년도, 7살이 되던 해였다. 같은 동네 아파트 주민이지만 단지가 꽤나 큰 아파트여서 3단지에 사는 너와 4단지에 사는 나는 어쩌다 한 번씩 마주쳤고, 우린 같은 영어모임을 하면서야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외국인 선생님과 영어책을 읽는 영어 과외였는데, 엄마 친구분이 영어학원을 운영하시고 그 친구분이 또 너의 이웃이어서 우린 함께할 수 있었다.


네가 나에게 나중에서야 붙여준 별명인, '빨간 머리 앤' 같았던 나의 어린 시절. 동네를 돌아다니면 나의 웃음소리와 활발함에 난 성별불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너는 조용하고 의젓한 축구를 사랑하는, 얼굴 하얗고 눈동자가 크고 짙은 어딘가 신비로운 아이였다.


그렇게 말괄량이 괄괄이 소녀 나와 축구러버 수줍은 소년인 너는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이 되었고 나는 널 열렬히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열정을 표현하려고 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어머니께서 받으셨다. 고백을 하고 싶고 바꿔달라고 말하였다가 안 된다며 너의 목소리조차 못 듣고, 대차게 거절당하고 첫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


그렇게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축구를 하러 사라지는 네 덕에 어린 나는 웨딩피치와, 천사소녀 네티, 카드캡터 체리 등을 보며 아주 바쁜 삶을 살았고, 짝사랑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나는 중1 사춘기 소녀가 되어 빨간 머리 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수줍은 소녀로 성장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아파트단지는 꽤나 커서 나는 4단지라 길건너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고, 너는 3단지여서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와 가까운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결국 우린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난 그렇게 너를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너는 나에게 먼저 "안녕..!"이라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응!"이라고 말하고 어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그날은 온종일 두근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엔 핸드폰보단 공중전화, 그리고 집전화로 모든 전화가 소통되었는데, 보통 집으로 전화가 오면 누구 인지 밝히고 구성원중 한 명을 바꿔달라는 물음에 전화통화를 그 사람에게 바꿔주는 시스템이었다. 1남 2녀 중 중간인 나는 거의 올 전화가 없었는데, 그날따라 배불리 먹은 저녁 탓인지 아님 체기로 인해 두근거림이 있는 건지 괜스레 나는 기분이 들떠 있었다. 심지어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왠지 나의 전화일 것 같다는 쓸데없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날... 정말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마주친 너였다.  


차분히 그렇지만 덤덤하게 하지만 어딘가 떨리는 너의 목소리에서 너는 갑자기 다짜고짜  "우리 사귀자."라고 말했고 마치 준비라도 한 것 마냥 나는 "그래."

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린 14살에 커플이 되었다.


(그 당시엔 연인이라고 안 하고 커플이라고 했으며 사귀자라고 말해야 사귀는 게 국룰이었다. 세이클럽 타키와 버디버디 아이디를 공유하고 티 내는 것도 국룰.)


하지만 커플이 뭔지, 사귀는 게 뭔지 개념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이 설렘과 두근거림이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불편해서 너와의 만남을 서서히 멀리했고, 공원에서 잠깐 만나 별말 안 하고 헤어지는 데이트 이후로 난 '사귐'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미숙하고 서툴고 순수하게 좋아했고 헤어졌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중2가 되었을 무렵, 난 이사를 가진 않았지만 유학을 준비하려 전학을 가게 됐고, 그 소식을 들은 너는 언젠가 우리 집 현관 앞을 찾아와 매일 아침 핫초코를 주고 갔다. 하지만 난 어린 마음이었지만 너의 마음을 왠지 간직해야 할 것 같고 이렇게 핫초코를 많이 마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제 오지 않아도 돼." 라며 너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고, 넌 그날 이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난 괜히 3단지를 어슬렁 돌아다녔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그맘때쯤 너는 4단지를 그렇게 어슬렁 거리며 괜히 돌아다녔다고.


난 이듬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렇게 9년 동안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 후 한국에 돌아오게 되던 그 해에, 동네 헬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간 그날 너를 거기서 마주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여전히 소년 같지만, 남자가 되어버린 너를 보며 다시 두근거렸고, 난 14살로 돌아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다행히(?) 넌 날 못 본 것 같았고 난 최대한 숨어 운동을 하였다.


그러다 너의 실수로 잘못 보내진? 페이스북 메시지로 인해 우리는 다시 대화를 하게 되었고, 동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같은 헬스장을 다니는 것도 밝히게 되었고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0년 만에 반대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며 미소 지었고, 시간도 덩달아 반대로 흐르는 듯했다.


너를 다시 만난 나는 밝고 활기찼던 '빨간 머리 앤'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 어딘가 쉼이 되었지만, 너는 나를 보며 먹구름 속에 있는 '앤' 같아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내심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때에 나는 인생의 방황기에 있었고, 특별히 모든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연애에 있어선 나에게 잘 보이려고, 속된 말로 '꼬시려고' 했던 남자들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 지쳐있을 때라 나를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궁금해해 주는 너의 신중한 질문들로 인해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하게 되었고 오후 1시쯤 앉아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오후 4시가 되어 겨우 끝이 났다.


그렇게 우린 몇 달을 매일 만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포항으로 대학원을 가야 한다는 너의 말에 난 널 덥석 잡아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글에서 나눈 기다림의 시간들을 지나 우린 2018년 5월 19일, 부부가 되었다.


너의 7살, 10살, 14살, 25살, 그리고 지금 35살은 나의 7살, 10살, 14살, 25살 35살이 함께 겹쳐져 있어 더욱이 추억 같고, 선물 같은 여행을 우린 함께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젠 부부에서 부모가 되어 함께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빨간 머리 앤'으로 봐주는 네 덕에 아줌마가 아닌 소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가장이 되어 우리 아이의 아빠가 된 널 보며 가끔은 깊은 곳에서 찡 하고 울릴 때가 있지만 그 울림조차 우리의 서사임을 그것이 나의 인생에 뜻밖의 행운, 인연, 아니 운명, serendipity 임에 오늘도 참 감사하다.


지금도 글을 쓰는 날 기다리며, 소파에서 호기롭게 자유시간을 보내겠다며 외쳤지만, 직장생활에 치여 5분 만에 곯아떨어져서 자는 K아빠인 너. 여전히 넌 나의 순수한 축구러버 소년, 숲같이 든든하고 한결같은 사람, 나를 소녀로 만들어주는 존귀한 사람이다.


누구나 서사는 있다. 다만 우리는 잊고 살아갈 뿐이다. 이번 2024년이 가기 전에 잊고 있던 우리의 서사를 꺼내보고 기억해 보고 크리스마스트리에 소중하게 걸어두어 두고두고 나눠보면 어떨까, 그러면 그저 평범한 아빠인 네가 나의 사람임을 깨닫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의 겨울이 세렌디피티와 같은 매일 크리스마스인 서사 가득한, 추억의 하루가 될 것이니까.  :)









작가의 이전글 서운함과 사랑의 한 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