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엄마의 성장기
최근에 남편은 회사 일이 바빠 야근이 잦아졌다. 주말에도 예외 없이 출근해야 할 때가 있어, 24개월 된 딸은 아빠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어느 날 하원 시간에 같은 반 친구의 아빠가 데리러 온 것을 보자, 딸은 손에 들고 있던 젤리를 나에게 보여주며 “하나 아빠가 사준 젤리 맛있지~”라고 말했다. 곧이어 “하나 아빠는 집에 있어? 아빠가 빨리 온대~”라며 조그만 입으로 아빠를 언급하며 마음을 가득 채운 아빠의 빈자리를 매우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에구, 아빠가 많이 보고 싶구나. 주말에 아빠랑 키즈카페 가자!”라고 말하자, “우와! 키즈카페 가서 방방 타자!”라며 딸이 가장 행복해할 말들로 약속을 하며 달래주었다.
실제로 주말이 되자 딸의 양손을 잡고 남편과 함께 근처 키즈카페도 가고, 아웃렛 안에 있는 회전목마도 두 번이나 태워주었다.
주말 동안 아빠와 연달아 보낸 시간이 행복했는지, 딸은 그 이후로 아빠를 예전처럼 자주 찾지 않았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아이지만,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결핍은 크고 작고, 또 얕고 깊은 과시로 나타나곤 한다.
이처럼 우리의 평범한 대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 버리는 과시 속 결핍은 대화가 끝난 후 스스로에게 찝찝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최근 복직을 하고 싶은 마음과 쉽게 결정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던 차에, 딸의 어린이집 친구 엄마를 퇴근하던 길에 마주쳤다.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이세요?”라는 나의 질문에, “아, 저는 여기 OO에서 일해요. 하나 엄마는 원래 어느 계열에서 일하셨어요?”라고 대답하셨다. 그 물음에 나는 ‘간단하게 교육 계열이라고만 말해야지’라고 마음먹었지만, “저는 원래 미국에서 10년을 살았고, (안 물어봤는데…) 국제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교감이었어요. 학생들을 미국 대학교로 보내는 입시 담당이기도 했고요. (하… 망했다)”라며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잔뜩 쏟아내고 말았다.
“우와~ 영어 잘하시겠어요! 우리 애들 영어 좀 부탁드려요.” 친구 엄마의 놀란 표정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던 순간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가 끝난 후, 샤워할 때 밀려오는 그 부끄러움은 아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직업에 관한 질문을 받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내세우며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결핍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바로 ‘남들의 인정’이었다.
자유롭고 싶었지만, 남들의 시선에 더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남들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내가 지금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내 스스로 이 안에서 충분한 만족을 느껴야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난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과거의 내가 어떠했든, 오늘의 나로 자족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것을 자세히 나열해 보면 이와 같다: 내 일과를 정하고 지키고 반복하며 그것을 향유하는 것, 과거의 ‘교감’이라는 자리가 아무것도 아닌 냥 여기며 ‘엄마’라는 가치에 깊이 빠져보는 것.
그것은 곧 우리 딸아이의 길어진 손톱과 발톱을 정성 스래 깎아주는 것, 아주 작지만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인 널 마음껏 사랑하는 것, 내 온 중심 가득 표현하는 것, 그것을 또다시 또다시 거듭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마음이 또 옅어져 짙은 과시로 나타나기 전에 샤워 중 뿌연 거울 속 날 보며 다짐 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