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엄마의 성장기
그날은 교회에서 먹은 밥이 소화가 안된 건지, 갑작스러운 급체로 속이 꽉 막혀 버렸다. 그런 꽉 막힘은 처음이었다. 소리마저 안 들리는 듯한 답답함 속에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자꾸만 감겼다. 나는 교회 사모님께 상황을 알렸고, 사모님은 곧장 바늘을 찾기 시작하셨다.
다행히 교회에 대바늘이 있어, 그것을 소독한 후 손과 발을 따자고 하셨다. 평소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는 나는 그 순간 대바늘이 더욱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대학생 시절 평소 교회 언니로서 고민 상담과 신앙 상담을 도맡아 하며 성숙한(?) 이미지를 지켜왔던 나는 뭐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대바늘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으앙… 사모님, 너무 무서워요. 안 하면 안 될까요?”
“많이 아픈가요? 나 안 할래요…”
하도 난리를 쳐서, 울먹이며 온갖 엄살을 부리는 내 모습이 결국 교회 청년들 모두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찌어찌 손을 따고 나서 차에서 휴식을 취한 후, 친구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평소 조용하던 내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팸이려나, 아니면 무슨 재난 상황이라도 온 건가 싶어 메시지를 열어 보니, 교회 남자 청년들이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별말 없이 밥을 먹자는 이야기, 몸이 괜찮냐는 걱정, 도움이 필요하냐는 따뜻한 말들이었다. 점차 메시지가 늘어나며 다양한 질문들을 받게 되었고, 어느 순간 나는 이것이 단순한 안부가 아닌 호감의 표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어필하게 만든 것일까? 돌아보니, 엄살스럽고 부족한 나의 모습이었다. 인간적인 모습이 나를 우습게 만들 거라 생각해 창피했지만, 오히려 누군가가 내 곁에 다가올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그 틈은 사람들과의 동질감을 형성해 주었고, 혼자 있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던 내가 이제는 지켜주고 싶은 존재로 비치게 만들었다.
결국 누구와도 특별한 관계를 맺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똑 부러짐이 아닌, 대바늘 앞에서 드러난 연약한 모습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깨달음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물론 틈이 너무 많아 아예 구멍이 되어버리면 부담이 되겠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 채 흘러나오는 적당한 부족함은 나를 더 나답게 만든다.
AI 가 아무리 사람을 능가한다지만 그 완벽이 주는 이질감은 마치 잘 만들어진 먼지 쌓인 조화를 보는 것 같다. 어딘가 미숙하고 실수가 많다 하더라도 고유의 향기를 가진 당신은 완벽을 넘은 온전한 틈을 가진 사람임을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