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면 건강해지겠지?
유독 일이 갑자기 몰리는 때가 있다. 몇 주 연속으로 발표를 준비하고, 강의를 듣고, 세미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조교 일을 했다. 보고서를 드디어 업로드하고 집에 가서 쓰러져 잠든 다음 날. 어라, 입 안쪽이 어쩐지 뜨끔거렸다. 아, 어쩐지 요즈음 몸이 너무 피곤하더라니. 결국 또 혓바늘이 돋았다. 혓바늘로부터 쭈욱 이어진 목구멍까지 따끔거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십몇 년간 쌓아온 빅데이터에 의하면 분명 몸살의 징조였다. 나는 조용히 유자청을 찬장에서 찾았다.
대학원생은 자주 아프다. 한 친구는 호르몬 조절에 이상이 생겨서 한때 병원을 다녔다. 다른 한 친구는 늘 건강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마주쳐서 어디가? 라고 물으면 병원! 이라고 했다)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언제 한 번 대학원 인턴 시절 사수 선배가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 대학원생은 크게 아프면 안 돼. 실험 일정에 지장이 가거든. 연속으로 실험해야 하는 때도 있고 실험 시기가 중요할 때도 있잖아.
- 아 그렇죠. 건강 관리 잘해야죠.
- 그렇지만 대학원생은 자잘하게 성한 곳이 없어야 해.
- ???
그때 나는 연구실 인턴이었고 근무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제대로 된 실험조차 진행하지 않았지만, 항상 어딘가 시름시름 아프던 연구실 선배들을 생각하자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크게 아프면 안 되지만 성한 곳이 없는 대학원생>이란, 크게 아프면 (실험 일정에 지장이 가니까) 안되지만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성한 곳이 없는 대학원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배도 대학원에 들어와 디스크가 재발하신 분이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결심했다.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해야겠다고.
그러나 결국 나는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고 연구실 생활을 한 지 6개월 만에 목디스크가 생겼다. 원래도 디스크가 있었는지 아닌지, 연구실 생활 때문에 악화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디 디스크뿐인가? 살도 쪘다. 체중 증가는 어지간한 대학원생이면 다 경험한다. 매일 의자에 앉고 스트레스는 먹는 거로 푸니 살이 안 찔려야 안 찔 수가 없다. 원래는 허리가 남았던 바지가 이젠 꽉 낄 때 진짜 눈물이 핑 돌았다. 매번 "다이어트해야지" 결심하지만, 스트레스 많은 연구실 생활에서 먹는 것까지 조절하기에는 기력이 너무 없었다.
워낙 화면을 보는 일이 잦아 안구건조증도 생겼다. 시력 저하는 덤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입학한 동기도 요즘 시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라섹 했던 다른 대학 친구도 요즘은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그렇다고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화면을 안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비타민과 루테인, 오메가3를 경건한 마음으로 복용하며 제발 더 이상 눈이 나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빌었다.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다가 소화불량도 새로 생겼다. 한마디로 내 위장은 너덜너덜해졌다. 평생 먹어본 적 없는 소화제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하기에는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시작된 증상이라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아무래도 마음의 병인 듯하다.
거기다 나는 원래 잔병치레가 잦다. 피곤하면 금세 감기가 생겼다, 몸살이 생겼다 한다.
사람 살려!
나는 영양제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물론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게 제일 좋다는 거는 나도 다 안다. 변명을 하자면 나름의 노력은 했다.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하고, 운동도 하려고 노력했다. 야채도 최대한 먹고 군것질도 줄이려고 시도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도 했다. 눈도 피로하지 않게 틈틈이 의식해서 쉬어주었다. 하지만 자유에 제약이 있는 대학원생은 인공적인 방법에도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더 빨리 좋아지지. 적어도 덜 나빠지지.
주변을 보면 다들 먹는 비타민, 약, 즙도 다양하다. 다들 다양하게도 아프다. 그나마 졸업한 선배 말을 들어보면 연구실에서 딱 나오자마자 거짓말처럼 건강이 회복되었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저 밖에는 자유와 건강이 있을 거라고! 서로 더 아프지 말자. 오늘도 옆자리 애랑 토닥이며 버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