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보다는 가지를, 조락보다는 성장을 보는 눈, 그러한 눈의 명징이 귀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책에서 마주한 ‘명징’이라는 단어가 오래 머물렀다. 사전은 그것을 ‘깨끗하고 맑음’이라 했다. 그러나 내겐 그것이 단순한 맑음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눈의 힘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눈앞에 반짝이는 잎새에 시선을 빼앗기고, 곧 스러질 것들에 마음을 묶는다. 그러나 성장을 향해 뻗어 나가는 가지를 보는 눈, 사라짐보다 남음의 힘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 눈은 결단에서 비롯된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더 깊이·더 천천히·더 오래 바라보려는 마음이 쌓여 순백의 명징함을 만든다.
며칠 전 나는 산업안전보건강사로서 첫 회의에 참석했다. 관리감독자 교육에서 보건 분야 강의를 맡게 되었다. 새로운 역할 앞에서 문득 떠오른 질문이 있다. 산업안전보건강사의 본질은 무엇일까?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내는 실질적 움직임을 만드는 이여야 하지 않을까.
강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될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양은 적더라도 힘찬 펌프질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how’보다 ‘why’를 먼저 묻는다. 왜 이 강의를 듣는지, 왜 이 배움이 필요한지,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강의는 이미 절반을 이룬 것이다.
17년 동안 수많은 강단에 섰지만, 여전히 나는 같은 마음으로 선다. 때론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고, 삶의 경험이 적다며 흘려듣는 눈빛도 느낀다. (40대여도 여전히 내 학생의 나이를 따라 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차가움 뒤에 숨은 진짜 마음을 바라봐 주면 좋겠다. 귀에 듣기 좋은 소리보다, 때로는 묵직한 현실의 조언을 건네는 강의.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여전히 잎새는 눈부신 빛깔로 현혹하지만, 그 잎새를 틔워낸 가지는 얼마나 많은 숙고의 시간을 견뎌냈을까. 나는 그 아픔과 저림까지도 끌어안으며 가는 길을 택해본다.
365평생교육원에서 큰 계획들을 세우겠지만, 그것을 현실로 빚어내는 과정에는 나의 몫이 있다. 명징의 눈으로 본질을 잃지 않고 걸러내며, 흔들리지 않는 뿌리처럼 자리를 지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간을 채우기 위한 강의가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강의를 기획한다. 학습자에게는 “이 배움이 나를 조금은 다르게 만든다”라고 느낄 수 있는 변화, 강사에게는 ‘삶의 동반자’라는 정체성을 자각하는 철학, 강의 자체에는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되는 잔향" 이 남아야 한다.
그래서 좋은 강의는 시간표 속 한 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 한 조각을 채워 넣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책이 일깨운 단어 하나가 오늘의 나를 붙든다.
명징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 그것이 흔들리지 않기 위한 나의 비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