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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간추리는 마음

by 너울

“붓끝처럼 스스로를 간추리게 하는 송연하리만큼 엄정한 마음가짐이 아니고서 감히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탐욕’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살다 보면 ‘적당히’라는 단어에 너무 쉽게 마음을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혹은 조금이라도 편안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새 타협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스스로를 간추리지 못하는 적당함은 결국 탐욕의 다른 이름일지 모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가장 먼저 ‘나 자신과의 싸움’을 떠올렸습니다. 세상과의 경쟁보다 더 힘든 것은 자기 안의 느슨함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가장 큰 약속도 결국은 나와의 약속이었습니다. 계획한 일들을 월·주·일 단위로 다이어리에 적고 지켜내려 애쓰던 날이 많았습니다. 때론 숨이 막혀 오는 듯한 답답함도 있었지만, 그 답답함을 넘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렇게 작은 약속들을 모아낸 결과가 지금의 제가 되었고, 결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켜가려는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아침 30분, 책을 읽고 짧게라도 사유를 적는 일” 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제 자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끈이 되어 줍니다.


또 하나의 생각은 ‘올곧음’입니다. 올곧다는 것은 때론 이해받지 못하거나 억울함을 감내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견뎌낸 뒤에도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요.


저 역시 이해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발자취마다 인정이 쌓이고 또 다른 고지로 나아가길 바랄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SNS라는 공간에서는 눈에 보이는 반응과 결과물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4년 동안 ‘한 방’의 성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글쓰기와 강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제 자신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늘 이해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댓글 하나에 억울함을 삼켜야 할 때도 있었지만, 멈추는 대신 이어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받은 상처의 흔적을 오래 품어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상처는 상처로 끝내야지, 오래된 상흔으로 남겨 두면 더 깊은 아픔에 갇히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고 창을 열어 두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문을 활짝 열지 못하더라도 숨 쉴 작은 창 하나는 필요합니다. 저에게 그 창은 결국 책 읽기와 글쓰기였습니다. 책은 저를 외롭지 않게 했습니다. 저자들 또한 그 시간을 건너왔음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글은 제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달래고 어루만진 마음이 선명한 문장으로 돌아왔기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책장을 넘기고, 문장을 베껴 적고, 잠시 멈추어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제 안의 소란을 잠재우고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의식이 됩니다.


흔들림 없는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와의 작은 약속을 지켜내는 삶에서 시작되고,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고 창을 열어두는 일임을 다시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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