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옳은 선택을 한다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세상은 단순한 흑백이 아니라 입체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분법적인 사고만으로 답을 구분하기란 애초부터 어렵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둘 중 하나를 취하는 일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그리고 그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지를 곱씹게 된다.
나는 선택 앞에서 장점과 단점을 나누어 보는 습관이 있다. 어느 것도 온전히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지는 않다. 그래서 장점의 개수와 단점의 개수를 세어 보고, 단 한 개라도 장점이 많은 쪽을 택하려 한다.
강사로 살아가다 보니 이런 생각은 강의 제안을 받을 때 더욱 또렷해진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스스로 제안서를 써서 기회를 만든 적 없이, 오롯이 의뢰를 통해 강의장에 서왔다. 그래서 제안을 받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강의 내용은 가능하실까요?”
“강의 시간은 어떠실까요?”
“강의료는 어느 정도 드려야 할까요?”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장점들을 떠올린다. 새로운 수강생을 만날 기회, 경험의 확장, 수입 증가, 출판 홍보, 자기 성장, 인지도 상승, 다른 강사와의 네트워크.
반대로 단점도 분명하다. 준비 시간 부족, 이동 거리의 부담, 체력 소모, 일정 중복, 가족과의 시간 감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
만약 장점이 단점보다 하나라도 많다면, 그 단점을 끌어안을 용기를 낸다. 강의 준비가 고되더라도 ‘새로운 배움의 장’이 열린다는 점을 더 크게 본다. 강의 시간이 1시간인데, 오가는 길이 6시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나는 그 기회의 크기를 의도적으로 더 크게 키운다. 그래야 단점들이 그 공간을 잠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주 멀리 있는 시간, 1년 후, 10년 후의 나를 바라본다.
반대로 장점이 6개, 단점이 7개라면 과감히 거절한다. 예를 들어, 장점이 ‘강의료, 경력 추가, 자기만족, 좋은 취지, 네트워킹, 배움의 기회’라 하더라도, 단점이 ‘지나치게 먼 거리, 일정 충돌, 체력 한계, 낮은 강의료, 준비 부담, 내 전문성과 맞지 않음, 가족의 반대’라면 단점의 무게가 더 크다. 그때는 아무리 아쉬워도 미련을 두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강의료를 받아도 내 가치와 맞지 않다면 과감히 내려놓는다. 한두 번 하고 그만둘 강의를 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어 요청이 이어지는 휴머니튜드 강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관마다 예산의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어떤 제안은 마치 ‘이력을 한 줄 남기기 위한 강의 요청’처럼 다가온다. 나는 그럴 때 반드시 묻는다. “그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의 변화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신가요?” 담당자가 불편해할 수도 있다. 내 질문 때문에 두 번 다시 제안을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까지 감수하며 묻는다.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그곳과는 다시 인연이 될 수 없겠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다른 곳과 다시 연결이 된다. 나는 몇 번의 이런 경험들이 쌓였기에 더 큰 확신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에게 있어 옳은 선택이란, 장점 속에 숨어 있는 단점을 끌어안을 용기이자, 단점 속에 숨어 있는 장점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결단이었다. 오늘도 조금 더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여전히 장점과 단점 사이를 씨름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