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두 개의 몸무게를 갖고 살아간다.
저울로 달 수 있는 무게와, 마음으로 다는 시간의 무게이다.
그래서 마음이 풍부하고 인격이 깊은 사람을 두고 우리는 ‘무게가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 이어령, 《이어령의 말》
사람은 두 개의 몸무게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는 저울로 잴 수 있는 무게, 또 하나는 마음으로 달아야 하는 시간의 무게다. 이어령 선생은 “마음이 풍부하고 인격이 깊은 사람을 우리는 무게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 타인을 향한 시선,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방식이 결국 한 사람의 ‘무게’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그리고 그 마음은 얼마나 단단한가. 삶이 시간이고, 그 시간이 곧 마음의 그릇이라면 매 순간의 생각과 행동은 그 마음의 질량을 더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한다. 강사로서 그 자리에 설 때마다 묻는다. 나는 무엇을 담아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강의를 시작하기 전, 언제나 교재와 교안을 먼저 준비하지만 나는 글자를 단순히 읽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와 현장의 경험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돌봄자, 가족, 의료인들이 내 강의를 듣는 청중이며,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한 곳, 사람의 마음이다.
세월이 흐르며 마음으로 향하는 방법은 다양해졌지만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진심은 언제나 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전하려는 그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의 깊이를 함께 들여다봐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까지 이 방식을 지켜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강의에 ‘정답’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마음에도 벽이 생긴다. 여러 명 중 단 한 명의 불만이었다 해도, 그 한마디가 내 안의 벽을 조금씩 두껍게 만든다. 강의는 강의일 뿐, 그 사람의 태도나 가치관이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바랐다. 강의가 단지 끝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삶에서 또 다른 시작이 되기를.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착각이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때로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만 채워지면 더 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들의 불만 뒤에는 ‘지식’보다 ‘위치’가 있었다. 기관의 원장이라는 지위, 박사라는 학위가 강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돌봄의 현장은 냉정하다. 이곳에서는 높은 학력이나 지위가 결코 디딤돌이 되지 않는다. 그런 위치에 있다면 오히려 더 많이 낮추고, 더 깊이 귀 기울이는 겸손이 진정한 순기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상황도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이유들을 이 글을 통해 차근히 돌아보려 한다. 강사라는 이름으로 걸어온 시간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기에 지금의 감정과 깨달음을 정리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내 삶의 절반은 강의로 채워져 있다. 그 시간 동안 담는 것이 마음이라면 매 순간의 생각과 행동이 온전히 풍부함과 인격으로 채워지는지를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고자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바꾸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애써 마음에 상처를 내며 누군가의 변화를 책임지려 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마음으로 기도하며 잘 되길 바라는 소망을 품되, 그 사람의 인생 가까이 가려는 태도는 분명히 내려놓아야 한다. 강의를 수강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 인지 그 정도의 선을 과감히 지켜주고자 한다. 선의가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며, 경험이 가르침으로 오해를 받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쉽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을 다듬다 보면 깨달음은 반드시 찾아온다. 좋은 것은 곱씹을수록 깊어지고, 나쁜 것은 멈출 줄 알 때 비로소 작아진다. 인격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매일의 연마가 나의 품격을 완성해 간다.
저울의 숫자는 나이를 따라 변하지만, 마음의 무게는 스스로 쌓아 올린 시간의 결로 남는다.
그 무게가 깊고 단단할수록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그 시간을 위해 묵묵히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자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