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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

by 너울

익숙한 숲을 떠나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의 계기가 되어 주는 일은 항상 강의입니다.

강의하고 글을 쓰는 강사와 작가를 병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강의가 더 저에게 맞는 옷입니다. 물론 강의만큼 글을 쓰는 것도 가슴 떨리게 좋지만, 아직 제게 딱 맞는 글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꼭 찾을 거라는 확답과 보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건 좋은 상태로 두려고 합니다. 강의는 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주어졌을 때만 가능하지만, 글은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하얀 여백지를 채워가고 싶은 욕망만 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글자에 제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것은 언제든 가능합니다.


나는 어떻게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최근 유시민 작가님의 영상을 만났습니다. 작가님은 책 집필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나'와 맺는 관계이며, 더 나아가 '너' 라는 타인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직업이나 여러 활동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모두가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고받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어떻게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물론 작은 사회인 가정 집단부터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는 한 가지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년 1월부터 새롭게 시작하게 될 병원동행매니저, 생활지원사 국비과정입니다. 2년 가까이 8시간 과정으로 진행도 해봤고, 각 지자체와 기관에서 16시간 또는 64시간으로도 강의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수강생의 만족도와 강사의 만족도가 합이 되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익숙한 성공 경험들은 모두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이전의 성공 경험이 여기에도 적용되리라는 낡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 과정 당 4시간이면 충분한 속성반이 있고, 그만큼만 해도 자격증 발급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국가 자격증이 아니니 큰 규제가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국비는 한 과정 당 16시간이라는 시간이 부여되며, 단 1시간만 모자라도 자격증 발급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기서 저는 다시 수강생 입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4시간 과정을 들었을 때와 16시간 과정을 들었을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며, 그 차이점은 반드시 장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민은 곧 "세상과 관계를 맺는 법" 의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일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2023년 국비과정으로 인지활동지도사 과정을 진행할 당시, 정해진 교재도 커리큘럼도 없어 모든 것을 혼자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를 머릿속에 넣었습니다.

"지도사가 먼저 즐거워야 함께 하는 어르신도 행복하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강사가 즐거워야 수강생도 즐겁다."


수업이라기보다 언니, 오빠들과 한바탕 놀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40시간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만족스러웠고, 최근 출간한 에세이 『간호사, 다시 나를 돌보는 시간』에서 한 파트를 차지하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 독보가 된다" 는 저만의 명언을 남기기도 했죠.

이런 생각들을 떠올려 보니, 이번 과정도 몇 년 후 이때를 추억하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병원동행매니저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일반화된 직업이 아닙니다. 전 시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는 서울과 다르게 지방은 서비스 혜택을 받는 분들이 한정적입니다. 어찌 보면 일반화되기 전에 더 차별적인 매니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4배로 늘어난 시간 동안 그 차별성을 더 찾아가는 커리큘럼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가장 빠르게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병원동행서비스를 받고 싶은 고객들은 어떤 필요를 원하는지 파악하고 차별성을 만들어가는 일, 그 일이 내가 이 강의를 통해 수강생과 관계 맺는 법이다.


국비 과정 수강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수료증이 아니라, 16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실질적인 경쟁력자신감입니다. 병원동행매니저가 일반화되기 전, 남들이 4시간만 배울 때 16시간을 투자하여 전문성이라는 깃발을 먼저 꽂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불안정함 속에서도 타인의 진정한 필요를 읽어내고 그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관계를 확립하는 사람입니다. 익숙한 경험을 내려놓고 새로운 가치를 설계하는 일이 바로 지금 제가 세상과 맺고 있는 가장 진지하고 중요한 관계 맺음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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