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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Dec 06. 2023

<겨울잠>(2012)

실패

  <겨울잠>(2012)은 조송(문창길 분)의 이야기다. 구병(구교환 분)은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어떤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구병은 무작정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고통을 이겨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는 구도자의 자세로 페달을 굴렸다. 어느덧 군산이었다. 그쯤 오니 구병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는 자전거 가게로 갔다. 삐걱대는 자전거를 팔고 기차로 돌아갈 셈이었다. 그곳에는 가게 주인과 조송이 앉아 있었다. 주인은 구병의 자전거를 보고 고물상에나 가보라고 말했다. 잔뜩 실망한 구병에게 조송이 다가왔다. 그는 꾀죄죄한 노인이었다. 조송은 구병의 자전거를 사줄 테니 밥이나 한 끼 먹고 가라고 말했다. 구병은 자전거를 팔아야 했고, 끼니도 챙겨 먹지 못했다. 그는 조송을 따라가기로 했다.

  해망굴海望窟을 지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아들이여 아들. 대학생이여 대학생”. 조송은 동네 사람들에게 구병을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언젠가부터 구병은 조송의 아들이 되어 있었다. 조송은 밥상을 차려줬고, 칼과 영지버섯을 내어줬으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젊었을 때는 배 타고 고기 잡으러 댕기고 그랬어, 알어?” 그는 어부였다. 조송은 바다 괴물만 아니었으면 여태껏 고래를 잡으러 다녔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허무맹랑한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조송이 형수님이라고 불렀던 다방 주인이 말했다. “예전엔 고래도 맨 손으로 때려잡고 그랬었는데”.

  조송은 동네에서 유명한 술고래인듯했다. 다방 주인은 술병을 꺼내려는 조송을 윽박질렀다. 조송은 술병을 가지고 도망쳤고 추격전이 벌어졌다. 다방 주인은 구병에게 조송이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테니 소리를 지르라고 말했다. “아부지! 소주 반 병만 드시래요!” 구병이 소리쳤다. 조송은 이내 다방으로 돌아왔다. 소주는 딱 반 병쯤 비워져 있었다.

  기차 시간이 다 되었다. 구병은 떠나야 했다. 조송은 구병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그냥 아부지가 주는 거여. 기차 타고 올라가, 응?” 구병은 돈을 가지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그는 소주 세 병을 사 왔다. “이거요, 오늘은 당장 드시지 마시구요. 내일부터 조금씩 아껴서 천천히 드세요”. 조송은 환하게 웃었다. 구병은 대합실로 들어갔다. 앉은자리 뒤로는 금박을 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대야항 고래잡이들’. 커다란 고래 위에 선 남자는 작살을 들고 있었다.


  바다 해海에 바랄 망望.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 조송은 해망인이었다.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렸다. 『노인과 바다』는 나의 첫 소설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노인 산티아고, 소년 마놀린, 그리고 청새치 정도였다. <겨울잠>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야 했다. 내 서재에 더 이상 『노인과 바다』는 없다. 그래도 세상이 좋아졌다. 전자책을 열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노인은 소년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쳤고 소년은 그를 사랑했다”. 그래, 산티아고는 마놀린의 아버지였지. “네가 내 친아들이라면 너를 데리고 멀리 나가 한번 모험을 해 보고 싶구나”. 그래, 산티아고는 마놀린의 아버지는 아니었지. 나는 그렇게 <겨울잠>의 해명을 위한 근거를 긁어모았다. 그런데 어떤 건 취하고 어떤 건 버릴수록 발길이 내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자꾸만 길을 막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처럼 내 삶에 더 이상 없는 사람이었다.


  몇 해 전이었다. 나는 어느 대학가 원룸촌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살던 건물에는 청소, 분리수거 등 잡무를 도맡은 아주머니가 있었다. 집주인은 건물에 살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 아주머니를 집주인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아주머니는 남의 일을 제 일처럼 돌봤다. 아주머니가 오는 시간은 매번 달랐다. 나는 아주머니가 오는 시간을 피해 분리수거를 했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기껏 분리수거를 해놓은 곳을 망치는 최초의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쓰레기를 들고 나왔을 때 어쩌다가 아주머니가 있으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그 건물에 살던 몇 달간을 아주머니와 대면한 일이 없었다.


  내가 아주머니를 알게 된 건 일 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장마철이었는데, 그날은 재수 없게 집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은 당장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수업이 있었으므로 그 말을 믿고 집을 나섰다. 이래저래 한나절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방 한 켠에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계시지, 다리 아프게”. 내가 말했다. “아이고, 바닥이 편해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집주인의 전화에 부리나케 달려왔고, 물이 흥건했던 바닥을 싹 훔쳤으며, 물 떨어지는 자리에 고무다라를 대어 놓았다고 말했다. 기술자가 올 때까지는 집에 있어달라고 해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끼니도 못 챙겼을 터였다. 마침 냉장고에 선물 받은 도넛이 있었다. 열 개 들이였는데 그대로 있었다. 우유 한 컵을 따라서 함께 아주머니에게 권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커피를 사 올 테니 편하게 드시라고 말했다. 커피 두 잔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방에 없었다. 도넛은 절반쯤 사라져 있었다.  


  아주머니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그 뒤로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하루는 건물 바깥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리어카에 폐지를 잔뜩 쌓아놓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고물상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고물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나는 리어카를 끌었고, 아주머니는 길을 알려주었다. 아주머니는 분리수거를 하는 동안 나온 폐지를 모아다가 고물상에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동네에서는 폐지가 지폐나 다름없어서 경쟁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한눈팔면 도둑고양이들이 다 채간다니까 글씨”. 고물상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머니는 대개 집주인을 욕했다. 쥐뿔도 모르면서 참견하려 든다는 둥, 옆 건물 청소 아줌마는 얼마를 받는다는 둥, 분리수거장에 처마가 없어서 장마철에는 쫄딱 젖은 생쥐꼴이 된다는 둥. 나는 집주인과 개인적 친분이 있었다. 그래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고물상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아주머니는 문득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의 아들은 유학생이었다. 어느 나라였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어쨌든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변변치 않은 살림에서 여태껏 장학금으로 제 용돈까지 대가며 공부한 아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속으로 내 어머니를 떠올렸고, 나를 떠올렸다. 잡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아들과 내가 서너 살 터울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일이 년에 한 번 한국에 들르는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늘어놓았다. 폐지는 지폐였고, 지폐는 밥값이었다.


  나는 아주머니를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그건 흔해 빠진 호칭일 뿐이었다. 그래도 누가 빵을 사 오는 날엔 몇 개를 골라 아주머니에게 가져갔다.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다가 금방 해치워버렸다. 일하던 헬스장이 폐업해 그동안 쌓였던 분실물을 정리할 때는 아주머니가 입을 만한 옷도 몇 벌 챙겼다. 작업복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내 호의가 동정, 연민 따위의 거북한 감정은 아닐까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아주머니의 아들은 의사가 될 터였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옷을 가져갔을 때, 아주머니도 무언가를 가져왔다. 두꺼운 국어사전이었다. 일전에 아주머니가 내 전공을 물어봤을 때 나는 옛글을 읽는다고 두루뭉술하게 답했었다. 아주머니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 내가 아주 번득번득 닦아놨거든? 우리 아들도 영어 사전을 끼고 살았다니께”. 나는 사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군데군데 갈색 얼룩이 져 있었다. 코팅된 겉면에는 정말 먼지 한 톨이 없었다.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어디에서 주웠을까.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고물상에 갔더라면 얼마나 받을 수 있었을까.


  선물을 받은 며칠 뒤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건물에 들를 테니 식사나 같이 하자는 연락이었다. 반나절쯤 뒤에 나는 집주인을 만났다. 집주인은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 듣다가, 물 흐르듯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가 사전을 주셨어요”.


  “사전? 무슨 사전?”


  “국어사전이요. 두꺼운 국어사전.”


  “응? 왜요?”


  “글쎄요. 공부하는 아들 생각이 나셨겠죠”.


  “아들? 아줌마가 그래요? 공부한다고?”


  “네, 유학생이라고”.


  “그래요? 아닐 텐데?”


  집주인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의사인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아들은 몇 년째 아주머니와의 왕래가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나마도 옆 건물 청소아줌마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집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 그날 나는 비싼 밥을 먹었고, 집주인의 돈 벌 궁리를 들었으며, 내 것을 얼버무렸다. 사실 나는 아주머니를, 아주머니의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졌고, 아주머니는 없었다. 어떤 남자가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껄렁껄렁한 남자였다. 남자는 음식물이 잔뜩 담긴 배달 용기를 그대로 분리수거함에 던지고 있었다. 그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남자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나는 남자를 붙잡고 제대로 된 분리수거를 부탁했다. 남자는 내게 분리수거하시는 분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바닥에 짓이겨 가족들 앞에 던져 놓는 상상을 했다. 그의 얼굴을 쳐들어도 가족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할 때, 잘못 배달된 물건이라고 다시 끌고 나가는 상상.


  나는 기어이 적당한 모욕이라도 주고 말았다. 나는 감정의 폭이 넓지 않고, 타인의 일에 별 관심이 없으며, 도덕이 가지는 강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나는 ‘어머님’을, ‘어머님’의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아들은 ‘어머님’의 끼니를 챙겼나. ‘어머님’의 아들은 ‘어머님’의 리어카를 끌었나. ‘어머님’의 아들은 유학생이었나. 그런데 몇 년 전 ‘어머님’의 아들이 겨울잠에 들었나. ‘어머님’은 아들이 겨울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나. ‘아들’은 흔해 빠진 호칭이 아니었나. ‘어머님’도 그랬나.


  그날 뒤로도 ‘어머님’은 나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나도 아주머니를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님’도, ‘아들’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얼마간 ‘어머님’을 모시다가 내 어머니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어머니에게도 ‘아들’이 있었나.


  <겨울잠>의 해명은 실패했다. 아쉬울 건 없다. 돌이켜보면 성공했던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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