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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Nov 28. 2023

<우리도 사랑한다>(2009)

아홉 번째 구름

 두 가지의 외도가 있다. 탈선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잘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 <우리도 사랑한다>(2009)에는 두 번째의 외도가 있다. 잉에(우슐라 베르너 분)와 베르너(호르스트 레흐베르그 분)는 결혼 30년째인 부부다. 사이는 꽤 좋다. 6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도 사랑을 나눈다. 잉에는 바느질로 날품팔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손님이었던 칼(호르스트 베스트팔 분)과 외도를 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잉에와 칼의 정사를 보여준다. 적나라하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다. 중요한 건 얼굴이다. 잔뜩 상기되어 있는 그 얼굴. 잉에와 칼의 정사는 툭 던져졌을 뿐이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그냥 툭.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말했다. “인간의 본성 속에는 모순되는 것들이 긴밀하게 맺어져 있기에 때때로 사랑이 배신이라는 절망적 형태를 띠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설명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잉에와 베르너의 사랑은 잉에의 배신으로 끝났다. <우리도 사랑한다>는 그 배신에 관한 소고小考다. 정사는 정사일뿐이다. 그것이 노인의 것이라고 유난 떨 필요는 없다. “Man wird nicht älter, eines morgens ist man alt". 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의 <보드카 위스키>(2009)의 대사다. 늙는다는 건 어느 날 아침에 문득 찾아오는 손님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칼이 찾아왔다. 잉에는 손님을 맞았고 베르너를 두고 나왔다. 잉에와 베르너의 사이는 꽤 좋았다. 잉에가 칼을 사랑함으로써 베르너를 배신했던 건 자전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베르너는 기차광이었다. 기차 여행, 기차에 관한 다큐멘터리 보기가 베르너의 취미였다. 기차는 마차보다 몇 배 빠르게 달렸다. 시간이 단축된 만큼 공간도 수축되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 풍경을 단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사람들은 그 풍경을 파노라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파노라마Panorama, 그것은 전체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기차가 보급됨으로써 나라마다 달랐던 시간 감각은 기차 운행을 중심으로 정돈되었다. 기차는 그렇게 시간, 정확성 따위의 상징이 되었다.

 기차는 이성적인 것이다. 베르너는 기차 같았다. 잉에가 외도를 고백했을 때, 베르너는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당신은 충동적이야”.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아”. “애처럼 왜 그래?” 그때마다 잉에도 되풀이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어쩌다 보니…”. 베르너는 해명을 원했고 잉에는 할 수 없었다. 잉에는 “사랑이 식어서 그런 게 아냐”라고 말했다. 그녀가 아는 게 거기까지였다.


 자전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칼은 전거광이었다.  칼이 말했다. “난 자전거 타는 게 좋아요. 걷는 것도 좋아하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아야 하죠”. 자전거의 빠르기는 풍경을 즐기기 알맞다. 자전거 탄 풍경은 파노라마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가 아닌 부분을 바라본다. 감수해야 할 것들은 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때 자전거는 배뚤거린다. 엉덩이도 시큰거린다.

 자전거는 감성적인 것이다. 칼은 자전거 같았다. 낡은 재봉틀과 오래 산 남편이 있는 집이 잉에의 세계였다. 칼이 잉에를 그녀의 세계로부터 자연의 세계로 데려갔다. 칼과 잉에는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 교외를 달렸고, 호숫가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했으며, 야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잉에는 늘 베르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여기 있잖아요. 그것도 같이”. 칼은 말했다.

 잉에가 칼을 사랑함으로써 베르너를 배신했던 건 자전거 때문이었다. 그것은 흔한 욕망일 뿐이다. 결혼은 계약이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부부로서 책임을 다하며, 소속감에서 비롯되는 안정감을 나눠 갖는다. 그런데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있다. 인간은 소속감, 안정감과 동시에 모험, 위험을 소망한다. 아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는 제 엄마가 있는 놀이터에서 유독 즐겁게 논다. 그곳에는 엄마라는 태초의 집이 있고, 온갖 위험이 있다.


 외도는 욕망에 관한 문제다. 어쩌면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옥죄려는 족쇄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욕망하고 내가 누군가를 욕망한다. 모험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그 모험에서 나는 누군가를 욕망하는 나를 출산한다. 그것은 내 안의 타자다. 그래서 외도는 일면 자기 발견의 양태가 될 수 있다. 잉에는 칼과 사랑을 나누고, 젊은 시절 사진을, 제 늙은 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외도를 알게 된 딸에게 말했다. “내 감정만 앞세우는 게 낯설긴 할 거다. 네 기분도 이해는 된다. 전엔 문제도 안 됐으니까. 내 개인적인 꿈들과 바람들 따위는 문제도 안 됐지”.

 그것이 노인의 것이라고 유난 떨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노인의 자기 발견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자기 발견의 근원인 외도는 죄다. 그것은 계약 위반이다. 응당한 손해 배상은 가능하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그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를, 그를, 또 나를 알아볼 수가 없다. 그 순간까지 이어져 온 내 평생이 허물어졌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 땅이 저 스스로를 삼켜 버리고 도망치려는 발아래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시몬 드 보부아르, 『위기의 여자』


 미래는 불확실한 것, 과거는 확실한 것이다. 망각이 과거의 확실성에 흠집을 내더라도, 우리는 과거의 파편을 이어 붙임으로써 과거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외도는 과거의 파편을 녹슬게 한다. 모든 것이 산화된다. 어쩌면 미래까지도. 유책자의 눈물 눈물이 아니다. 외도는 일면 자기 발견의 양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외도는 자기 상실의 양태도 될 수 있다.


 베르너는 자기 상실을 겪었다. 잉에가 이별을 통보했고, 베르너는 잉에를 불러앉혔다. 베르너는 이성적이었다. “지난 몇 주 사이 자주 놀랐어. 가끔씩 소녀처럼 보이더군. 이제 그 이유를 알겠어”. 베르너가 말했다. “바랬던 일은 아냐. 그냥 일어난 거지”. 잉에가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베르너가 물었다. “당신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30년간 같이 산 걸 생각해 봐”. 잉에가 답했다. 그녀는 먼저 일어났다. 베르너는 담배를 피웠다.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출발지도, 종착지도 없이 기차는 달리지 않는다. 베르너는 죽었다. 기차가 멈췄다. 잉에는 두 번 다시 그 기차에 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사랑한다>의 원제는 <Wolke 9>이다. 아홉 번째 구름. 그것은 적란운이다. 적란운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그래서 행복한 구름이다. 그래서인지 무한한 행복과 마약, 사정 따위의 오르가슴을 상징하기도 한다. 잉에는 아홉 번째 구름을 밟았다. 그것이 노인의 것이라고 유난 떨 필요는 없다. 노인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적란운은 소나기를 내린다. 잉에는 소나기를 맞으며 온몸으로 울었다. 노인은 떨어질 때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서른도 살지 않았다. 결혼은 먼 일이고 외도도 해본 일이 없다. 언젠가 내가 베르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있다. 떠올랐던 건 박완서의 말이다. “올 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 겨울의 희망도 뭐니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고, 나는 툭 던져졌다. 남겨진 자의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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