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꼭 대오(大悟)를 해야 하나요
번뇌 망상 속에
살다간 사람,
살고 있는 사람,
살고 있을 사람,
중생이라고 하대(下待)하는 건 아니지요?
독야청청(獨也靑靑)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외로움,
굳이 에베레스트산엘 가야 하는지요
저는 142미터 비봉산에서 살 게요
아비규환(阿鼻叫喚) 진흙 바닥에서
해탈한 연꽃의 우아함, 청정함이여
땅바닥을 기다 기다 쥐꼬리만한 꽃 피운 중생은
봄까치꽃, 냉이, 주름잎, 유럽점도나물, 꽃마리, 봄맞이,
제비꽃, 괭이밥, 애기똥풀이었습니다
‘서글픔이 황홀’로 핀 중생이구나!
스님, 경산(絅山)은 ‘서글픔과 황홀은 한몸이다’라 했습니다
밥 잘 못 먹기도 하고
똥 잘 못 싸기도 하고
잠 잘 못 자기도 하는 세간(世間)에
정각(正覺)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그래도 혹시 틈나면
대오는 한 번 잠깐 할 게요
*정진규의 시 「서글펐다」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