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도 아니고...(1)
40대 후반 정도? 남자들 나이는 가늠이 안 된다. 하긴 여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하고 '목사님이 안 계시네요.'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며 창가자리로 앉았다. 보통은 주방을 등지고 앉는데 나를 바라보는 방향이다.
아! 00 교회 목사님 찾아오셨군요.
약속하신 건가요?
신도는 아닌데 상담차 왔어요. 그런데 30분 후에나 돌아오신다네요.
마른 몸에 안경을 쓴 인상이 예민해 보이기도 하지만 웃는 모습은 선했다.
사실 저는 천주교신자인데요. 신부님께 상담드리긴 좀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목사님께 털어내면 방법이 있을까 해서...
급 폭발하려는 궁금증을 애써 눌러본다. 고객과의 대화에서의 지나친 관심은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독백처럼 술술 강약 없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내놓았기 때문이다. 홀이 비어 심심하던 차였다.
제가요..
회사를 다니거든요.
아 네.
신입여직원이 들어왔어요. 내 밑으로...
환영회식자리를 가졌었고, 둘만 2차로 맥주집을 갔어요. 걔가 먼저 가자고 하더라고요. 할 말이 있나 따라나섰죠. 회사에 대한 또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어요. 분위기가 좋았어요. 성격도 서글하니 직원이 맘에 들었어요. 제가 계산했고요.
그런데 편의점에서 맥주로 마무리를 하재요. 이번에는 자신이 내겠다고...
뭐 그러자고 했죠. 2차를 내가 계산해서 부담스러웠나 보다 제 멋대로 추측했습니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근처 공원으로 이동해서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나눴고요. 꺄륵꺄륵 웃으며 제 어깨에 고개를 기대는데 스스럼없는 거예요. 나도 분위기에 취해서는 자연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렸어요. 바라보더니 그냥 웃더라고요.
흠... 생각지도 못한 그의 고백에 충격을 받았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썼다.
키스를 하려고 젖히는데 표정이 돌변하더니 집에 가야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그걸 원하는 줄 알았거든요.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시부렁거리는 거니?' 답답한 건지 무지한 건지 아니면 남자라는 생물이 그런 건지 알 수 없는지라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상사가 저를 부르더니 성희롱으로 고발되었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녀는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요. 어이가 없어서 그날의 사정얘기를 했지요. 걔가 먼저 끼를 부렸는데 오히려 피해자는 나 아니냐 해 봤자 소용이 없었어요. 요즘은 손끝만 스쳐도 성희롱으로 고발되는 세상인데 경솔했다는 겁니다. 억울해도 회사에서는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아... 저런...
고발까지 당했으니 회사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고 알아서 잘 합의하라는 겁니다.
어떡해야 할지... 진짜 걔가 꼬리를 먼저 쳐서는 나를 좋아하나 그랬거든요. 그래서 목사님을 만나 상담하다 보면 어찌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까 답답한 마음에...
예상조차 해 보지 못한 내용에 당황한 데다 그의 답답한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서 이 대화를 끝 내고 싶었다.
일단... 선생님은 확실하게 잘 못하신 거잖아요.
그렇죠...의외로 순순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놓으심 어떨까요? 아주 최악의... 그래놓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도 타격감이 적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만...
마구 던진 내 한마디에
아...! 눈이 동그래지며 격하게 감탄을 한다.
혹시 어떤 일을 하셨던 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쩌면 그렇게 한 마디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신 거죠? 한다.
나는 시계로 눈을 돌리며 목사님이 돌아오셨을 시간이라고 확인시켰다. 그제야 본인의 목적을 인지하고는 카페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