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도 아니고...(2)
'카푸치노'는 방문할 때마다 문제를 가져왔다. 상담?을 하다가도 문항은 뜬금없이 늘어났다. 그리고 내 입을 보는 것이다. 할까요? 말까요?...
공학박사이기도 한 그는 회사에서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맡았으며 나름 능력 있는 팀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회사에 쌓아 놓은 업적은 다 소용이 없었다. 문제의 여직원이 어떻게 소문을 냈는지 직원들이 흘깃대며 피한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는 사직서를 받는 거로 대단한 편의를 봐주는 듯했으며, 회사이미지 실추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제가 지금 다른 일로도 송사 중이거든요.
바람을 핀 적이 있어요. 딱 한 번... 작년에... 그래서 아내랑 이혼소송 중이거든요.
그러더니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 사람인지 그간의 사연을 늘어놓았다
장모님을 모시자고 하더라고요. 장모님이 와 계시는 중에 아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지방에서... 머리 좋은 친구라 합격을 했어요. 발령을 받았고요. 저는 꼬박 아내도 없이 장모와 함께 산거죠. 시험준비할 땐 집안일은 나 혼자 다 했습니다. 심지어 아내의 속옷까지 빨아 대령했고요. 딸아이가 하나 있어요. 중학생인데, 애가 똑똑하고 이뻐요. 공부도 잘하고요. 학부모행사며 이것저것 제가 다 했어요.
그런데도 장모는 내가 못마땅했나 봐요. 아내도 구시렁 대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거의 남처럼 지내기 시작했지요. 그즈음에 한 사람을 만났어요. 원래 그럴 맘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거죠. 그걸 안 아내랑 장모는 노발대발 난리가 나고, 아내는 지방에서 교사를... 저는 장모랑 살고 있고... 이상하잖아요. 음식배달이라도 시키면 저한테는 먹어 보란 말을 안 해요. 자기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려요. 그리곤 딸만 부르는 거죠.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아내가 먼저 이혼을 하자고 했어요. 뭐 저도 그다지 미련이 없는지라 그러자고 했는데 제가 유책배우자가 된 거라 영 불리한 거예요. 딸아이는 제가 키우고 싶거든요.
그 사람(아내)은 딸아이에게 정도 없을걸요. 식사도 제가 다 챙기고 아마 딸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겁니다.
지금 이 일까지 들통나면 전적으로 불리해지고 아내는 신이 나겠죠. 제가 딸을 키울 수 있을까요? 변호사는 수임료가 적어서 그런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줘요. 그저 기다리자고만 하고... 저쪽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대책을 세운다면서...
집을 그냥 팔까요? 그 집 사는데 아내가 한 푼도 안 보탰거든요. 그러면서 반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냥 팔아서 줘 버릴까요? 그러면 딸은 나한테 양보할까요? 선생님을 어떻게 보세요? 어느 틈부터 나는 카페 사장이 아닌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어떤 해결책도 내어 준 적이 없다. '카푸치노'는 항상 스스로 정해 놓은 결론이 있었다. 내가 해 준 것이라곤 그저 꾹 참고 들어 준 것뿐이다.
'카푸치노'는 그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상담?을 하다가도 손님이 들어오면 바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상담?을 끝내기 위해선 고객님이 등판을 해야 되는 것이다.
만약 하루 종일 공치는 날이라도 된다면 그의 질문의 꼬리는 날개를 달고 나는 이래저래 축 처지는 하루가 된다.
원서를 낸 곳이 있는데 지방에 있어요. 면접을 보러 오라는데 갈까요? 말까요? 연봉은 많이 깎이지만 회사는 발전가능성이 있어 보이거든요. 괜찮을까요? 그러나 그는 이미 갈 예정이었다.
'카푸치노'는 한때는 성실하고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고, 딸아이를 애지중지하는 그저 평범한 아빠였다. 그러나 한 순간의 판단미쓰는 삶을 통째로 벼랑 끝으로 몰아버렸다.
성추행녀와의 소송은 합의금으로 가닥이 잡혔다. 문제의 그녀는 그 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의 고발이 있었다고 했다. 온 가족이 나서서 한 푼이라도 더 뜯어 내려 혈안이 되어 있다며 상습법 같다고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역시 홀이 비어있을 때 불쑥 들어왔다. 딸아이는 아내가 돌보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집을 팔렸으며 직장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다. 손님들이 바로 들어와 이야기는 짧게 끝이 났다. 카푸치노를 후륵 입안에 털어 넣고 바로 떠났다.
그러다가 몇 개월 잊을만하면 카페 전화로...
선생님이세요? 제가 이번에 프로젝트하나를 맡았는데, 이게 좀... 할까요? 말까요? 프로젝트 내용을 설명하며 전문용어들을 쏟아낸다. 당최 뭔 말인지 한 마디도 모르겠는데 그는 또 내게 까요? 했다. 늘 그렇듯 혼자 말하다가 내 추임새에 감탄하고 끊는다.
나는 그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준 기억이 없다. 다만 답답한 현실에서 미흡한 행동으로 잘못을 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 가는데 나라는 존재가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그리고 더 이상 제2의 '카푸치노'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삶의 문제해결도 어리숙하다. 다른 누구의 인생까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