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 더치페이? 아니면?
세상엔 규칙이란 없다. 우리는 무언가 이루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토마스 A. 에디슨-
큰언니는 사과 한 개를 공평하게 다섯으로 나눠먹으라는 퀘스트를 받았다. 국민학교5학년 큰언니의 오른손에 쥐어진 칼이 약한 힘으로 가느다란 다섯 개의 경계를 만들었다. 모든 시선이 사과 윗 꼭지 부분에서 갈라지는 갈레를 확인하려 머리통 다섯 개가 모여졌다. 푸르등등 인도사과는 윗중심에서 아랫중심까지 한 면씩 갈라지며 홀라당 내 자빠졌다. 한 개의 사과는 1/5 씩 조각나서는 소중한 한 조각으로 재 탄생되었다.
첫 세뱃돈은 6원이었다. 아버지는 5원짜리 위에 1원짜리를 포개서 나란히 다섯 쌍을 놓아두고 임금님 같은 자세로 나란히 선 다섯의 새배를 받으셨다. 그리고는
"옛다, 이건 니꺼고"
를 다섯 번 반복하셨다.
크림빵 한 개 값도 안 되는 6원은 점빵(지금의 편의점)에서 아주 쉽게 홀라당 탕진됐다. 돌처럼 단단한 눈알 사탕은 생각보다 빨리 녹아버렸고 내 재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작은언니는 전 재산을 날린 내 앞에서 몇 날에 거쳐 자랑질을 해댔다. 부자언니주머니 속에 짤랑대는 6원 때문에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재산은 가지고 있을 때만 가치가 있었다.
대학동창 일곱 친구들은 단짝꿍이 되어 몰려다녔다. 명동, 종로, 이대입구 등등 맛나고 맛난 곳 천지였다. 세상은 넓었고, 돈 쓸데는 널렸으나 우리의 지갑은 어이없이 얇았다. 전공과목보다 더 소중했던 그날의 식사메뉴와 먹거리들... 당장 닥친 시험보다 더 소중했다. 등교와 함께 오늘의 메뉴에 대한 각자의 브리핑이 시작되고, 그 밥에 그타령인 메뉴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타깃이 결정되면 우르르 몰려 갔다. 일곱이라는 작지 않은 우리는 입구에서 습관처럼 기웃대며 수용가능여부를 가늠했다.
어떻게든 자리는 만들어졌다.
먹고 싶은 것과 지출 허용치와의 간극에서 배가 7개의 산으로 흩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Y가 있었다.
용돈 받기 전과 후도 지출의 품격엮시 Y는 흔들리는 바람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닻을 올렸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그녀에게 어느 누구도 토를 달거나 하지 않았다.
주문이 끝나면 Y의 시간이다.
하얀 메모지를 숫자로 가득 채워서는 낱개가 더해 큰 하나를 만든다.
모인 것들이 7로 나누어 몫을 통보했다.
부족한 자투리 잔돈은 내가 낼께. 내가 내가... 따위의 도발행동은 허용되지 않았다.
잔챙이 잔돈이 생길라치면 껌이나 사탕등으로 둔갑시켜 어떻게든 나머지가 0이 되게 했다. 이월은 없었다. 착복도 없었다.
사탕을 으깨 나눠 혀 속에서 바슥거리며 조각껌을 씹으며 재미있어 깔깔댔던 기억이 있다. 이 야무진 경리대장 덕분에 나머지 여섯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과 동시에 교환교수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남겨진 우리의 나누기는 너무 쉽게 붕괴되었다, 아무나 그날그날 되는대로 계산을 했다. 1/N을 담당할만한 능력이 그 녀 외에는 없었음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나름의 해결책으로 매월 조금씩 모아보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이 다였다. 조금씩 모았어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우리는 넉넉해서 식사비로 고민하지 않는다. 비싸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선호했던 젊은 시절은 사라지고 식탁의 품격도 겸손해졌다. 나름의 1/N의 완성이다.
부부가 동반하는 골프모임이 있다. 이십 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간만에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우리보다 10년은 젊었다. 그런데 이 부부, 술을 한 방울도 못 했다. 반면에 나머지 남편들은 골프 하는 이유가 뒷풀이 술판이라고 할 만큼 주당들이다. 어쩌나 이 험한 조직에 발을 들인 부부는 성격 좋게 끝까지 자리하는 매너를 보였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1/N 해야 하는 그 부부가 나는 영 불편한 거다. 그래서 남편에게 식사계산방법을 개선해 보자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핸디를 주자는 거였다.
"에이, 각박하게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내가 내가 계산할게 ' 지갑먼저열기 대회라도 있으면 우승하고도 남을 그는 내가 이상하다는 거였다. 또 그들도 원치 않을 거라는 거였다. 그러나 그들은 운동 후 약속으로 식사참여가 줄더니 결국 탈퇴하고 말았다.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모임이 있다. 테니스모임이었으나 요즘엔 남편들끼리 가끔 모여 스크린 골프를 즐긴다. 남편이 게임 후 결제담당이다. 모임 중 가장 나이가 어린것이 그 이유다. 게임으로 따낸 돈을 모으고, 모자란 만큼 각출해서 식사비와 게임비를 충당한다. 늘 애매하게 액수가 부족했다. 그럴 때면 기꺼이 남편 지갑에서 충당됐다.
정산하고 몇 천 원이 남는 날이 생겼다. 제대로 나눠지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남편에게 G사장은 그냥 넣어 두라했다. 그것이 화근이 됐다.
"남은 돈은 돌려줘야지 계산을 왜 그렇게 해요?"
S여사였다. 가뜩이나 큰 그녀의 목소리는 화가 나 격앙된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민망함에 웃으며 천 원짜리를 한 장씩 나눠줬다고 했다. 그나마 남편의 몫은 없었다. 그러나 생각할 수록 불쾌감이 커졌다.
치사하게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있어.
늘 S여사가 문제야. 엉? 목소리도 너무 크고... 자기 남편에게도 함부로 하고...
에이! 이제 그만 나갈까 봐...
왜 그러지?
- 손해 보는 쪽을 택하겠다.-
이 신념의 사내는 단 돈 몇 천 원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심을 받아버렸다.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 품격의 사내는 그날 화가 머릿 끝까지 치밀었다. 애먼 마누라 앞에서만 툴툴거렸다.
하필 그날, 자신의 남편보다 드라이버거리가 더 나가는 S여사는 역시나 잘해서는 돈을 쓸어버렸고, 게임비에 식사까지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나가지 않았다
반대로, 내 남편은 작정하고 안 풀린 날이었다. OB에 해저드에 페널티 종합선물세트를 받고도 부족해서 잔돈을 인마이포켓 하려한다는 의심까지 받은 것이다. 운수사나운 날이다.
그녀는 호탕한 성격에 잘 웃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나는 그런 성격이 좋다. 그러나 그 날은 그녀가 너무했다. 우리가 어디 원데이 투데이 만난 사람들이던가?
남편의 불쾌함은 쉬 가라 앉지 않았으나 그녀의 출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S여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남편 K교수의 파킨스 투병으로 그녀와 함께라야만 모임이 가능했던 것이다. 케리어 백 두 개를 양손에 불끈 들고 들어서는 그녀 주변엔 늘 아우라를 동반했다. 이제는 기꺼운 마음이 되어 부부를 참석을 감사해 했다.
떨리는 손목으로 드라이버 이제는 100M를 던지는 남편대신 S여사는 180M 비거리로 내기에서 돈을 쓸어?담았다. 여전히 호탕하게 웃었고, 멋진 이 여성은 남성들 중 중심축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있잖아 난 너무 불편해.
M은 진한 에스프레소를 단박에 홀짝 넘기고는 작정한 듯 나를 향해 고쳐 앉는다. 그녀는 성당봉사와 성지 순례를 함께하는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식사비며 음료비를 낸다. 봉사 후 꿀맛같은 뒷풀이는 한 사람때문에 불편해지고 있었다.
자신 계산차례가 되는 날이면 주문하는 것마다 태클을 걸었다. 왜 그런 걸 시키느냐? 먹어봤는데 별로다. 내 차례에만 왜 비싼 것들을 시키지?...
그러다 다른 차례가 되면 달라졌다. 아메리카노만 마시다가 바닐라 라테를 시켜서는 반 이상을 남기고, 큰 용량의 음식을 시켜서 밑반찬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후 남은 것을 싸간다고도 했다.
집이 몇 채며 재산이며 자랑자랑하는 사람이거든.
경제적으로 힘든 것 아니냐는 내 물음에 입을 삐죽인다.
더치페이로 바꿔. 그럼 되잖아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고도 했다. 더 이상의 참견은 무의미했다.
나는 재미 삼아 주식투자를 한다. 통닭 한 마리? 정도의 소득이면 되겠지 했다.
명목상으로 분산투자라는 것을 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해서 그렇게 했다
값이 떨어지면 산다.
오르면 다시 판다.
한 두 종목에 몰빵 하지 말라 해서 그렇게 했다.
분산투자는 내리는 종목과 오르는 것이 같이 있다. 오르는 것을 팔고 내리는 것을 사면 된다. 심리적으로 안정됨은 있다. 그러나 내 나누기는 결론적으로 마이너스다.
왜냐하면 모든 종목을 1/N 해서 투자한 것이 아니라, 떨어질 종목만 신기하게 초이스 해서는 비중을 높였던 것이다. 그중 내가 투자한 바이오주만 -70%, 가상화폐거래 관련주는 이 좋은 시기에 상폐될 위기다. 그 두 가지는 내 포트의 반 이상이 담겨있고, 한국의 주식시장은 지금 바닥을 기는 중이니 벌어봤자 잔풀이다. 선무당이 칼춤추다 제 발바닥만 아파졌다. 일확천금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아니다 기대했었나보다. 그래서 망했나보다.
있지 있지? 카카오 샀는데 20프로 넘게 오르고 있어 팔까?
HLB테라퓨릭스 샀거든 막 오르는데 팔까?
난 5%만 되면 무조건 팔 생각이었거든?
다행스럽게도 카카오는 내가 팔자 다시 떨어져서 입꼬리를 올라갔다. 그러나 HLB테라퓨릭스는 28%에 매도했건만, 300% 이상 오르고는 200%내외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득을 봤음에도 가슴이 쓰라린다.
재미를 봤으면 한 턱을 내야 하는 거 아냐? 자랑만 하고 사람이 왜 그래?
이익 볼 때만 입이 열리는 내게 남편이 빈정댄다.
(그게 있지. 나... 사실은 반 이상은 50% 이상 마이너스야... 원금 회복하려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될 수도 있어. 괜찮겠어?)
분명 시작은 단순했다. 계획도 명료했다. 결과는 뻔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그런데 변덕스러운 화살표의 방정맞은 춤사위에 나같은 주린이는 배가 주렸다.
삼십 년 전 거금 삼백만 원으로 삼백 원을 만든 전적이 있다. 이미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겪었다. 친구는 같은시기 비슷한 금액으로 신약개발주에 투자해서 집을 넓혀 갔다. 그러나 내 것은 회사가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1/N을 계획하고 있다.
본전을 찾는 날이 온다면 말이지
진짜로 1/N 해서 말이지...
치킨 한 마리면 되거든...
어쩌다 글이 주식투자실패담으로 흘러버렸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