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왔다.
어느 날
내 인생을 구원해 주겠다며 나선 이들이 있다. 그것도 떼로 나타나서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며 비단길로 인도하시겠단다. 이 친절하기 그지없는 분들이 불편하다.
대부분 중년여성들이며 단정하고 서글한 인상에 언변이 좋다. 무리 지어 다닌다. 그래서 얼핏 보면 평범한 고객 그 이상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 무리의 중년여성들이 들어왔다.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여기 사라다빵 맛있다고 소문 듣고 왔다"
아니 벌써? 과한 칭찬은 걸러들어야 하거늘 눈치 없이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장님 인테리어 전공하셨어요?"
"어쩜 구석구석 센스 있으시다."
"여행도 많이 다니시나 보다. 그쵸 그쵸?"
"어머 어머! 요리도 전공하셨나 보다. 너무 맛있는데요!"
전문가솜씨에 참견을 얹은 카페 내부인테리어와 특별할 것 없는 엄마표 3000원짜리 사라다빵도 요리라며 극찬하신다.
두 번째 방문
"어머!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재방문으로 이어진 고객님 맞이에 반가움에 한 옥타브 올려서는 신지도 않은 버선발 마중이다.
너무너무 좋아서 재방문하셨단다. 새로운 고객까지 모시고 왔다. 선한 인상의 동반자도 인정하겠다며 끄덕인다.
지난 방문 때 확보된 내 정보가 하나씩 꺼내어진다.
여기 사장님은... 여기 사장님은 그렇데... 저렇대...
오! 진짜? 그래? 어머나! 그렇구나! 세상에!!
특별할 것 없는 내 프로필이 어퍼크레스 된 보답으로 사심 듬뿍 서비스가 나간다. 그들은 한 번 더 엄지 척한다.
홀에는 다른 고객들도 그들도 각자의 대화에 열중했고 나는 나대로 이리저리 분주했다. 피크타임이 끝나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중이다. 내 카페는 서쪽을 향해 창이 나 있다. 해 질 녘이면 해가 안쪽까지 들어온다. 블라인드를 내려 고객들께 가는 빛의 양을 조절할 타임, 그 무렵이면 발길이 뜸해지고 고객들도 하나 둘 돌아갈 채비들을 한다. 어느덧 들릴 듯 말 듯 그들의 속삭임만 조금거렸다.
쌓인 설거지로 분주할 때였다.
"사장니임... 바쁘신가요?
"아뇨 아뇨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셔요?"
부리나케 수돗물을 잠그고 고무장갑을 벗어 홀 쪽으로 나가보았다. 픽업대위에 뭔가 잔뜩 올려져 있다.
"잠깐만 말씀 좀 전해 드려도 될까요?"
"..."
단체사진이 1면을 차지하고 있는 신문 한 뭉치, 기도문인듯한 글이 인쇄되어 있는 X베너등이다. 내 시선이 널려있는 물건들에 향하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이어 갔다. 단체사진에는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밝게 웃고 있었다.
자신들은 세계적으로 봉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들이 속한 단체는 건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파 중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곁눈길로 넌지시 당신은 운이 좋아서 우리를 만난 거야 하는 뉘앙스도 풍긴다. 쉼표 없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내용은 천국으로 인도해 줄 수 있으니 동참하자는 것 같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멍해져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설득이 되었다 싶었는지 베너를 집어든다.
'행복은... 이러... 저러...'
"좋은 글이죠? 더 많은 사람들을 보게 하려면 눈에 잘 띄는 곳이 좋겠죠? 사장니임..."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흠... 여기.. 어떨까요? "
주문받고 결제하고 음료와 디저트가 오고 가는 픽업대를 가리킨다. 그것이 자리하면 메뉴들이 나가거나 반납할 때 몹시 불편할 터인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 번째 방문.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전히 밝고 상냥하다. 십년지기나 되는듯한 표정이 불편하다.
있어야 할 베너가 없음에도 묻지 않는다.
"사장님, 신문은 읽어 보셨어요?"
대뜸 숙제검사다. 신문내용을 숙지하라 했던 거 같기도 하다.
"저... 죄송하지만... 제 카페에서는 음료만 드시고 가셨으면 해요. 종교 관련대화는 안 하고 싶어요."
나도 내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건조한 내 어투에 눈빛이 잠깐 흔들리는 듯한다. 그러다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세팅된다.
"그러시구나... 맞아요. 알죠 알죠. 그래도 제 말씀 한 번만 짧게 들어 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아니요 아니요!!! 죄송합니다."
조금 더 단호함을 얹어 본다.
"사장님 이해하고말고요. 하지만 왜곡된 성경말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제발... 그만 듣고 싶습니다. 저는 카페에서 음료만 팔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들이 두고 갔던 물건들을 픽업대에 올려놨다.
"이거 다 가져가셔요."
"우리 사장님,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시구나. 음료만 팔고 싶으시구나아... "
"음료만 드시고 가셨으면 해요. 종교관련해서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자영업자 관련 커뮤니티에는 이들에 대한 불만과 해결책을 묻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한가한 곳만 골라가며 포교를 한다. 종교가 있던 없던 상관하지 않는다.-나 엮시도 종교가 있다 했지만 씨도 안 먹혔다.-
말을 섞지 말 것! 상대 말 것! 그 외 황당하고 민망한 댓글들이 많지만 생략한다.
카페운영 5년 차가 되어간다.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생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도 분명 고객이다. 무작정 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장님 잠시... 제가 숙제가 있어서요. 삼분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삼분이면 되는 거죠?"
"지인짜 3분..."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인다.
휴대폰을 펼쳤다. 타이머에 3분을 입력했다.
"자... 시작하시면 됩니다"
잠시 당황한다. 그러다가 부리나케 랩구사하듯 빠르게 내뿜어진다. 9876543210... 10개의 숫자들이 빠르게 변환되고 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한 설득은 제한시간 3분. 그녀에게는 턱없이 짧고 내게는 길었던 시간 3분... 띵띠리딩띵띵...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일행들 입에서도 아... 짧은 탄성 비슷한 것이 토해진다. 나름 보람 있었을 그들과 고객서비스차원에서 할애한 3분의 기적은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발길을 하지 않게도 하는 효과가 있었다.
...
사장님 숙제가 있어서요. 조금만 도와주시면 되그든요? 또 숙제? 몇 번의 방문동안 조용히 차만 드시고 가셨다. 이제 막 전도활동을 시작하셨다며 도와달라 신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능란한 눈빛이 아직은 없다.
A4크기의 인쇄물, 구성이 다른 두 장이다. 체크할 항목도 많다. 그냥 해 드리자. 처음이라잖아.
네 개의 다른 색 안에 있는 문항을 체크해야 하는 한 장이 내 앞에 놓인다.
"사장님 테이블에 편하게 앉아서 하셔요."
"아뇨 전 손님 테이블엔 앉지 않습니다."
있지도 않은 원칙이 급조된다. 픽업대에 버티고 서서 대응하기로 한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는 순간 이 대화는 종결된다.
색깔마다 점수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은 색을 다 선택할걸 뒤늦은 후회를 했다.
"4 더하기 음.. 이건 3이니까 7... 그리고 4 하면 11... 점수가 ㅇㅇ이니까 어디 보자. 옳지 여기 있네."
"사장님은 이러저러한 성격에 저러 이러한 성향이 있어서 ****이라고 하네요."
또 다른 한 장은 4지선다. 다른 일행의 과제다. 다 해 드리자 뭐 까짓 거. 그러나, 아... 객관식문항. 진짜 하기 싫다. 이 또한 문항 숫자가 합산될 것이다. 채점이 시작된다. "사장님은 ㅇ나무형인데 이렇고 저렇다네요."
아 네...
끝이 아니다.
1분 정도 성경 관련 설명을 하게 해 달란다. 초보는 맞으시겠지요? 괜히 초짜인척 하는 건 아니신지...
1분, 3분 단위로 접근하는 것이 매뉴얼에 있나 보다.
타이머 작동됨을 알려드렸다.
1분 부른 것에 잠깐 후회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시작버튼은 눌러졌다.
"에... 마태복음 *장*절 말씀이... 에... 땡데르뎅땡땡!!! 제한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타이머를 종료시키고 계속하도록 둔다.
여호수아.. 하나님이... 성경말씀이... 하나님이 남자가 아닌 여자.... 등등
더듬거리느라 제대로 전달 못 한 점을 사과하신다. 전도를 이제 시작하는지라 많이 서툴다고도 하신다. 다음에는 차만 드시라는 내 권유에 그럼요 그럼요 그러신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지도할 때 일이다. 방과 후 학원수업, 특히 여름날은 졸리고 집중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때 내 필살기는 초재기였다.
자! 초재기할 거야.
에이, 그냥 공부하면 안 돼요?
투덜대면서도 자세를 고쳐 앉는다.
다들 눈 감고! 고요하다. 소란때문에 들리지도 않던 옆교실의 강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저 은은한 소음을 이겨내 보는거야!
1분!
아이들은 눈을 감고 60을 센다. 2분도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시간은 1분=60초이다. 짧고 굵게! 딱 1분! 적막감에 들숨날숨이 초침처럼 딸각댄다. 정확하게 1분이 되는 시점에 손을 드는 친구가 위너이다. 승리자에겐 사탕이나 초콜릿이 주어진다. 이 작은 보상은 두세 번 만에 승부욕을 자극하고, 다섯 번 정도면 거의 모두가 1분에 팔을 번쩍든다.
카페를 하면서 초재기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것도 구원받기 거절용으로 말이다.
초재기 효과일까?
요즘 방문이 뜸하다. 아니 아니 퉤 퉤 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