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산책
견주 곁에는 느슨한 리드줄에 메여 여유롭게 노즈워킹하는 보더콜리 두 마리가 있었다.
"몇 살 쯤이면 저렇게 얌전해지나요?
"처음부터죠. 얘들(보더콜리)은 영리해서 교육시켰더니 금방 알아들었어요."
9살이라고 했던가? 견주가 리드하는 대로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 부러웠다.
한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산책예절이 습득되지 않은 코리는 아직은 먼 미래다.
산책 시작 전, 리드줄을 채우기 전까지는 얌전하게 앉아있다. 목에 걸리는 순간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겅중겅중 난리부르스다. 처음에는 이 광경이 신기하고 놀랍더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고리를 내 손에 물어다 준다. 잡으려면 획! 다시 물어 채간다. 다시 물고 온다. 내가 잡고 놓지 않으니 반대편을 물고 늘어진다. 으릉으릉... 터그놀이라는 뜻이다. 줄을 놔 버린다. 다시 내게 물어다 준다. 잡으면 다시 물어서는 Z자형으로 휙휙 달아난다. 나 잡아봐라~~~ 그 짓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대문밖으로 나선다.
"안된다고 하세요. 단호해야 해요."
15살 갈색푸들과 산책 나온 어르신은 나의 방관적인 태도가 문제라 생각하셨다. 한 수 가르쳐주시겠다 직접 나섰다.
"안돼엣!... 안쥬와 앗!"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코리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근엄하게 얼른다. 그러나 녀석의 시선은 갈색푸들에 꽂혀 있다. 육중한 궁둥이를 들어 올리고 막춤으로 어필 중이다.
"지치면 안 돼요. 절대로. 꾸준하게 매일..."
80넘은 애견고수는 심각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지침을 내리신다. 노루망뎅이궁뎅이 발길질에 차일까 염려됐다. 꾸벅 인사로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발로 탁탁 바닥을 치면 된다는 거야. 이렇게"
퇴근한 남편이 발바닥을 거실바닥에 탁탁 내리쳤다. 우리 부부는 코리를 입양한 후 녀석이 의젓해지는 각종 기법들을 써치해 공유한다. 유튜브에서 건져온 거라는 그것은 소파에서 그루밍하던 고양이 두 마리를 순간 사라지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휴일, 함께 산책 나간 남편의 발바닥은 "안돼에엣!!!" 낮고 굵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격조 있게 탁탁! 바닥에 내리 꽂혔다.
그때마다 잠시잠깐 주춤? 정지? 갸우뚱? 올려다본다. 그러나 다시 입이 헤벌쩍 벌려지고, 혓바닥을 있는 데로 꺼내놓고는 눈동자가 0.1초 단위로 움직인다.
다음날 길 건너 맞은편에서 오던 몰티즈견주가 코리를 발견하자마자 자신의 발바닥을 땅바닥에 내리친다. 작은 몰티즈는 움찔하며 주인의 표정을 살핀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것 자체가 빌런 인가 싶어 다른 길로 방향을 돌렸다.
산책길에는 다양한 견종들과)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뛰는 사람들... 찝쩍대고 흥분할 거리가 득실거린다. 앞 뒤 옆을 살피느라 긴장에 제곱을 하고도 더블곱을 해야 한다
시간을 앞당겼다. 만나지 말자. 마주치지도 말자.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만 골라 둘만의 산책을 즐겨보기로 마음먹는다.
출발시간을 오전 8시에서 6시로 변경했다. 5시 30분 기상! 평소라면 딥슬립중일터 늦잠 자던 호사는 이제 내 인생에서 굿바이다. 새롭게 리 셑팅되는데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이른 아침 도로는 한산하다. 그러나 섣부르게 안심하면 절대로 안된다.
잠깐 방심하다 도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오토바이를 녀석이 먼저 발견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배달라이더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급발진하려는 녀석을 본능적으로 내쪽으로 당겼다. "안돼!", "까까줄까?" 따위의 사탕발림은 이제 소용없다. 어떻게든 반대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20킬로 넘는 몸무게로 있는 힘을 다해 돌진하려는 녀석을 제어하는 것은 무리다.
억지로 끌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져버렸다. 하마터면 손목에 칭칭 동여맨 리드줄을 놓칠 뻔했다. 신호를 기다리던 자동차와 그 밖의 행인들... 벗겨져 내동댕이 쳐진 오른쪽 운동화 한 짝... 창피해할 틈도 없다. 리드줄을 움켜쥐고 주저앉아 교통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면서 대기 중이던 오토바이는 제갈길로 떠났다. 그러나 녀석은 미련이 많이 남아있다.
발목을 살살 돌려본다. 괜찮다. 신발을 찾아 신고, 끈도 단단히 다시 묶었다. 미련이 많이 남아 삐쩍대는 녀석을 반대방향으로 이끌었다. 오는 내내 씩씩 헥헥 호흡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이 전쟁 같은 산책을 어찌할꼬...
그리고 무사하게 며칠이 지나갔다.
도로 쪽 지름길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을 정해 돌아오는 중이었다.
외나무다리에서 원수(오토바이)를 맞닥뜨리는 일이 생겨버렸다. 산책로와 이어져 있는 곳은 오토바이가 지날 수 없는 곳이다. 얼마 전에도 아파트에서 산책로로 나오는 이 운전자와 만났었다. 그때는 좁지만 비켜갈 수 있는 다른 도로가 있었다. 펄떡대며 흥분하는 코리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지나쳤다.
그런데 두 사람 겨우 비껴 지나갈 만큼 나무로 된 좁은 구름다리... 거기서 마주칠 줄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단 코리를 가장자리로 바짝 붙여두고 꼭 안았다. 후딱 지나가주면 된다. 그런데 이분, 달래 보겠다 시동을 켜놓고 멈춘다. 그리고는 미안해 괜찮아...
"그냥 먼저 지나가 주실래요?"
내 말은 먹히질 않고 계속 서있다. 부릉대는 엔진소리에 더 예민해진 코리는 완전 이성을 잃은 것 같다. 그제야 상황을 감지했는지 다리를 올려 출발하려던 순간 녀석이 훅! 달려들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오토바이에서 발을 떼고, 이러다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사람을 물거나 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을 안다시피 반대방향으로 끌어냈다. 오토바이를 마주치지 않으려 오토바이가 없으리라 확신한 곳에서 더 위험하게 맞닥뜨리다니...
집 근처 골목길까지도 헥헥 가쁜 숨을 토해낸다. 놀랬을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놀랬는지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어 있다. 앞서가는 뒷 발바닥이 이상하다. 빨갛다. 걸을 때마다 빨간 흔적을 남긴다. 오른쪽 뒷 발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 실랑이하는 중 생긴 상처인 모양이다.
뒷 발 달랑거리던 며느리발톱부근이 찢어졌지만 다행스럽게 아주 큰 상처는 아니었다. 소독하고 지혈제를 마구 도포, 약을 바르고 반창고로 칭칭 감았다.
녀석도 지쳤는지 이내 누워 버린다. 나도 소파에 앉아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제야 오토바이 운전자 생각이 났다. 괜찮으시겠지?
몇 번의 사고위험을 겪고 나니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리드줄부터 허리에 칭칭 감았다. 이제 녀석은 내 몸통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1미터 정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급발진해도 50킬로 넘는 나를 끌고 가기엔 무리일 것이다. 물론 늘 비상 깜박이를 켜둔다. 이 좋은 방법을 이제야 채득하다니... 걱정하는 남편을 향해서는 아무일 없음으로 안심시킨다. 말려도 듣지 않는 아내를 위해서 세상에서 제일 튼튼할 것 같은 허리에 차는 리드줄을 주문해 주었다. 허리에 색이 달린 이 허리줄은 정말 신박한 아이템이다. 아이템발 죽인다.
코리가 내 집에 온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중이다. 남편은 퇴근해서 산책 겸 놀아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이 루틴을 지킬것이다.
새벽 다섯 시면 나를 깨우고는 빨랑빨랑 엉? 엉? 채근한다.
앉아 기다려! 하나, 둘, 셋... 열 가자!
이제 혼자 하는 산책은 재미없어 못 하겠다.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자꾸보고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무덤덤해지겠지.
민폐견에서 벗어나보자!!! 코리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