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병원에서 사춘기 억제주사를 권고받은 케이스, 과연?
세종에 사는 10살 10개월 여자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처음 진료 보러 온 이유는 환절기라서 콧물이 자주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7월 초 알레르기 유니캡 검사에서 IgE 311.1
weed 2 mold 4 나왔던 환아로, 면역치료 대상자는 아니어서
일단 생활습관 교육 및 알러지 약 복용하며 경과관찰 중이던 환아였습니다.
(성장 및 수면 관련해서, 알레르기, 특히 비염은 매우 중요한 방해요인입니다. 저는 비염 치료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평소대로 진료를 보고, 알레르기약 처방해 주고, 인사를 하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말씀하십니다.
"선생님, 사실... 저희 아이가 3달 전부터 월경을 해요."
"아 그런가요? 음... 올해 초등학교 5학년 된 거죠?
"네, 4학년 끝날 때쯤 초경을 한 건데, 사실 너무 놀라서 원장님한테 올 생각을 못하고 일단 서울에 SS병원 교수님 출신 유명한 성장클리닉으로 진료를 다녀왔거든요."
"잘하셨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뼈사진 찍자마자 피검사도 하기 전에 일단 사춘기 억제주사랑 키 크는 주사 같이 맞아야 된다고 하셨어요.
피검사 결과 나오고도 진료 봤는데 결과 설명도 잘 안 해주고...
주사치료부터 일단 하라고 하시는데... 고민돼서요. 죄송해요. 여기서 여쭤봐서."
"아니에요, 음... 결과지가 저한테 없어서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운데... 어머님 일단 성장판 사진 먼저 한번 찍고 오시겠어요? 제가 뼈나이 보면서 다시 설명드려볼게요."
"어머님, 지금 뼈나이는 12살~12살 6개월 정도 되어 보여요. 자기 나이보다 1년 반정도 빠른 거예요.
그리고 작년 7월 초에 진료 보면서 측정했던 키랑 비교하면, 지금 10개월 동안 143.2 -> 150.5cm,
7.3cm 컸어요. 1년으로 환산하면 1년 동안 8.8cm 컸습니다. 여자 아이들에게서 이 정도면 지금 급성장기에 돌입한 거고, 앞으로 급성장기는 6개월 정도 남았어요. 그 뒤로는 이미 초경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키 크는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 겁니다."
"어때요? 그러면 그 서울 성장클리닉 원장님 말씀대로 사춘기 억제주사랑 성장호르몬 주사 둘 다 맞아야 되는 건가요?"
"의료진 판단은 다 다를 수 있어요. 진료보신 원장님도 이유가 있으셨을 거예요. 다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제 은사님이신 소아내분비 원로 교수님께 배웠을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의 저도, 지금 억제주사를 맞으면, 오히려 남아있는 급성장 시기를 놓칠 거라서 억제주사는 추천드리지 않아요."
"그러면 어떡하죠?"
"음... 어머니, 혈액검사 하신 지 얼마나 된 거죠?"
"그때 초경 터지자마자 예약해서 갔으니까, 이제 검사한 지 3개월 되려고 해요."
"어머니, 그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내일 가져오시면 제가 다시 상담해 드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혈액검사한 지 기간이 좀 되어서, 괜찮으시면 오늘 한번 더 혈액검사 해보고 결과 들으시면 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떠세요?"
"검사해주세요. 피 검사 하고 결과 들으러 올게요."
E2 22.1
IGF-1 391.3
FSH 3.4
LH 3.1
그 외 다른 이상소견은 없었습니다.
"일단 혈액검사상에서 명확하게 사춘기 시작 소견, 정확히 초경 시기쯤의 호르몬 수치가 나왔어요. 성장호르몬은 같은 나이 여자 아이 평균치 정도로 수치 나쁘지 않습니다."
"치료해야 될까요?"
"일단 초경시기로 봤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말이면 물론 빠르긴 하지만, 지켜볼 정도는 될 거 같아요. 아이가 주변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법만 잘 알려주시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혈액 검사 소견까지 봤을 때,
저는 여전히 사춘기 억제주사 치료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 억제주사를 잘못 맞으면, 그나마 남아있는 급성장시기를 억눌러버려서 오히려 키가 더 안 클 수 있습니다.
억제주사는 맞는 시기가 중요한데, 지금은 잘못 억제하면 오히려 손해 보는 시기예요.
만약에 실제 나이와 뼈나이가 똑같이 1년 6개월 정도 차이나는 상황에서, 1년 정도 더 빨리 오셨다면, 치료를 해보는 쪽으로 저도 고려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키 크는 주사는요?"
"성장호르몬 치료는 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지금 OO이 키가 150.5cm니까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 100명 중에 80번째 (82 percentile) 정도로 큰 편이에요.
아버님 키가 178, 어머님 키가 166 이니까, 부모님께 물려받은 키는 165~166cm 정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뼈나이와 호르몬수치로 예측되는 키는 안타깝게도 157~158cm 정도입니다.
성장호르몬 분비 수치가 정상이긴 하지만, 여기서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로 추가 성장호르몬을 얹어주면, 좀 더 크는 걸 기대해 볼 수 있어요."
"얼마나 더 클까요?"
"만약에 치료를 하게 되면, 현재 성장판 정도를 봤을 때 2~3년 정도 치료 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이 경우면 지금 예측키보다 5cm 정도 더 크는 걸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162~163cm를 목표로 치료하는 거예요."
"저희 부부한테 물려받은 키 165cm까지는 어려울까요? ㅜㅜ"
"쉽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물론 성장호르몬 치료도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반응이 적은 사람도, 반응이 매우 좋아서 예측키보다 10cm 이상 크는 사람도 있지만,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아닌 경우에 지금 뼈나이에서 평균적으로 기대하는 성장은 +5cm 정도가 평균적이에요."
"그렇군요..."
"결국 OO이 본인이 158cm 정도 키로 성인이 되었을 때,
너무 아쉬워하고 힘들어할 거 같으면 성장호르몬 치료를 적극적으로 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단 생활습관 안에서 노력하면서 열심히 해보는 거예요. 잘 자고,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일찍 자고, 스마트폰 줄이고. OO아 네 생각은 어때?"
"... 저 일단은 주사치료 안 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잘 자고 잘 먹어볼게요..."
"원장님 일단 주사치료는 안 하고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네, 그러면 일단 예약날짜 잡아드릴 테니 성장판 추세랑 키 크는 추세 보러 오세요. 주사 치료는 고민해 보시고, 일단 생활습관 잘해보자 OO아! 생각보다 진짜 중요해. 숨어있는 키 1cm를 찾아주는 게 운동이랑 먹는 거랑 잠자는 거야. 진짜로. 파이팅 해보자!!"
간혹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권고받으시고, 상담을 요청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료진마다 판단은 다를 수 있으나,
무분별하게 고가의 주사치료 먼저 권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현재 상황에 맞게 필요한 치료만 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아이의 상태는 성조숙증(사춘기) 억제주사는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초경시기가 빠르긴 하지만,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므로, 대처법만 잘 알려주고 정서적으로 잘 케어가 된다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잘 가져가서 숨은 키 1cm를 찾아주고,
만약 조금 더 키가 크고 싶다면 성장호르몬 주사치료를 고려해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소아내분비를 세부전공한 전문가 의사에게 진료 보시고, 설명을 잘해주시는 의료진에게 진료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