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는 안 쓰지만, 삶을 설계해 왔던 방식들
오래전, 남편과 함께 자산 포트폴리오를 설계했다. 그 계획은 올해 차근차근 마무리되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하나의 흐름이 끝나고 있으니, 삶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고 세팅해보려 한다.
이제는 생활의 흐름이 손에 익었다. 얼마를 쓰고, 얼마를 저축할 수 있는지 굳이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감으로 조율이 가능하다. 그만큼 익숙해졌고, 그러다 보니 기록도 관리도 조금씩 느슨해졌다. 문득, 그 경제감각을 만들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 떠올랐다. 외벌이 살림을 꾸리며 매달 남편이 벌어오는 돈이 정말 귀하게 느껴졌다. 가족은 둘인데 한 명의 수입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사실이 나에게 강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살림을 잘 꾸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장을 볼 때마다 100그램당 가격을 비교하고, 최저가를 찾아 헤맸다. 그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했던 시간. 막막함과 책임감 사이에서 나는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갔다. 통장을 나누고, 지출을 기록하고, 저축의 목적을 세우며 조금씩 나만의 질서를 만들어갔다. 그 시절의 나는 서툴렀지만, 분명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살림과 육아를 중심에 두고 살아왔지만, 그 안에는 경제 공부와 작은 투자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삶을 설계하는 감각이 자라났다. 그 이야기들은 앞으로 차근히 풀어볼 예정이다.
나는 안정 속에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업주부라는 역할 안에서도,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가고 싶었다. 살림도, 소비도, 배움도 현명하게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 그런 모습이야말로 내가 오래도록 동경해 온 것이다. 꼼꼼하고 철저한 계획형 인간은 아니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방향을 잡고 사는 방식은 나와 잘 맞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통장을 정리하는 일부터다.